‘박근혜 정부에서는 물에 빠져 죽고, 문재인 정부선 불에 타서 죽고...’ ‘박근혜는 물로 망하고, 문재인은 불로 망할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 이어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터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악의 섞인 메시지까지 유포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 달여 사이에 수십 명이 애꿎은 목숨을 잃었으니 참담하고 애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는 건 이해하고 남는다.
세종병원 화재사건에서는 정치인 지도자들의 ‘네 탓 공방’이 어느 때보다 꼴불견으로 떠올랐다. 내 탓이나 예방책 제시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에만 함몰된 정치인들이 도드라진다. 가장 먼저 현장을 방문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감정을 촉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큰 사과를 하고 청와대 내각이 총사퇴를 해야 한다. 북한 현송월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야당 정치인이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 가운데 하나지만, 본질을 벗어난 김정적 발언은 반발과 역효과를 낳기 쉽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정부여당에 네 탓만 했을 뿐 거짓말로 자기 책임을 부인한 일은 신뢰를 떨어뜨릴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홍 대표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에도 “제가 (경남) 지사를 하는 4년4개월 동안 경남에서 건물이나 사람이나 불난 일이 한 번도 없다”라고 발뺌해 언론의 사실확인 대상이 됐다. 이번에도 자제하기는커녕 또 다른 거짓말을 지어내 비판을 자초했다. “(경남 지사 때) 화재가 있었지만 사망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그렇지만 소방청의 전국 화재 현황통계 확인 결과, 외려 경남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화재 피해가 났다. 그가 지사에서 물러나기 전 1년 동안 경남지역에서는 총 3820건의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 서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건수다. 이 기간 경남지역의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104건이며, 30명이 숨지고 74명이 다쳤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반격에 나선 것도 옳지 않다. 추미애 대표는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면 이 직전의 이곳의 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누구였는지도 한번 봐야겠다”고 홍 대표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표창원 의원은 “한나라당과 국토교통부의 (6층 이상 건물의 불연재사용 의무화 법안)반대로 화재 참사가 커졌다”고 과거 탓을 키웠다. ‘야권 책임론’을 들고 나온 건 잇단 대형 사고로 확산하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줄여보려는 고육책이지만, 남탓하는 습관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나마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정답에 가까운 해법을 제시했다. “이번 참사를 정치적 싸움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국회와 대통령, 행정부가 힘을 합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6층짜리 의료시설인 세종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인명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입원한 병원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큰 재난 사고가 터지면 일회성 대책으로 부족한 부분만 보완하는 대증요법이 대부분이었다.
낚싯배와 유조선 충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타워크레인 전복, 포항제철소 질소가스 누출 사고처럼 장소만 다를 뿐 대형사고가 빈발하는 현상을 이대로 두고 보면 안 된다.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떨다 흐지부지되는 일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정부는 모든 안전 시스템을 송두리째 재점검한다는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처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체계적이고 실천 가능한 매뉴얼을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도 검토해 볼만하다. 이번 사고에서도 보듯이 정부의 노력만으로 대형재난 예방은 불가능하다. 안전 점검은 빈틈없이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규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면 엄중하게 처벌하는 관행을 세워야 한다.
경찰과 소방대원을 비롯한 안전 인력 확충과 열악한 환경 개선 노력도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시민의식이 변해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특정 정권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에 깔려 있는 안전 불감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참사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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