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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정은에게 필요한 또 다른 ICB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라는 표현을 넘어선다. 김정은은 미사일 시험 발사 모습을 현장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참관한다. 미사일 발사가 성공할 때마다 박장대소하는 그의 모습이 방송 화면으로 전 세계에 전해진다.

 

   이 같은 ICBM 집착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미국 본토 타격 능력까지 갖춰야만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북한의 ICBM급 ‘화성-15형’ 발사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ICBM 프로그램을 막을 수 있는 시한이 3개월가량 남았다고 보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지만 김정은에게 정작 요긴한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니라 ‘또 다른 ICBM’이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ICBM 말이다. 3차 산업혁명인 정보통신기술에서도 뒤진 북한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맞추는 고도의 경제발전을 추동해 낼 능력이 있느냐는 회의론이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추진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위해서도 또 다른 ICBM의 필요성을 느낄 개연성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가 아닌 북한에서 또 다른 ICBM의 발전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지만, 다른 견해도 나온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신작 ‘호모 데우스’에서 북한이 모든 차량이 자율 주행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북한이 김정은의 말 한 번으로 하루아침에 4차 산업혁명의 중심 무대로 바뀔 수 있다는 상상이 그것이다. 이는 북한이 촉발하고 있는 한반도 긴장 상태를 감안하면 공상에 가깝지만, 발상의 전환이 뒤따르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도로 발달한 북한의 로켓 발사능력은 ‘또 다른 ICBM’의 첫 번째인 사물인터넷 산업과 결합시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초연결사회를 구현하는 사물인테넷은 우주산업을 도외시하고는 육성하기가 쉽지 않다. 2020년까지 가장 크게 성장할 분야로도 사물인터넷이 손꼽힌다. 로켓 핵심기술을 자체 개발한 북한은 위성 응용산업을 주도적으로 발전시킬 여지도 많다.

                                                                                     


 북한은 경제강국건설을 목표로 초기단계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는 풍문이 들린다. 우리말 용어에 집착하는 북한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구름계산봉사’라 일컫는다. 국제 사회의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이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의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지만,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한 기술능력을 고려하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클라우드는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고속도로’로 불리고 있어 북한도 피할 수 없는 분야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은 알파고가 인간 이세돌에게 압승하는 장면을 연출해 세계를 놀라게 하는 바람에 북한도 다방면에서 필수불가결한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의 모바일 산업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지난 주 발표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가 북한과 이동통신 합작사업을 하고 있는 이집트 오라스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북한의 휴대폰 가입자 수는 전체 인구의 6분의 1 정도인 4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추세를 종합해 보면 북한도 궁극적으로 ‘또 다른 ICBM’의 발전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직면한다. 사물인터넷이 수집한 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모바일로 서비스하는 게 4차 산업혁명시대의 모델이다. 김정은 체제가 또 다른 ICBM을 통해 경제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한층 촘촘해진 국제 제재를 풀어야 가능하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발상의 전환을 이뤄야하는 까닭은 구소련에서 찾으면 된다. 소련은 핵무기를 장착하는 ICBM이 없어 해체되는 운명을 맞은 것이 아니다. 미국과 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 군비경쟁을 벌이다 발생한 체제 모순 때문에 소련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북한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