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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코아비타시옹

1997-06-03

변화에 대한 인간심리는 언제나 양면성을 지닌다. 상당수의 산업심리학자들은 「인간성은 변화를 싫어한다」는 걸 통설로 내세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창조물 가운데 인간만큼 새 것을 좋아하는 동물은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프랑스 총선에서 좌파 연합이 집권 우파를 꺾고 승리를 거머쥔 것은 변화를 갈구하는 유권자 심리의 산물이다. 결국 제5공화국 들어 세번째의 코아비타시옹(좌우 동거 정부)이 불가피해졌다.지난 86년 우파의 총리로 입각해 집권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견제했던 시라크 대통령이 이번에는 형편이 뒤바뀌었다. 사회당소속 총리가 될 리오넬 조스팽 제1서기(당수)의 견제를 받게 된 것이다. 돌고 도는 역사의 아이러니로만 표현하기엔 부족한 느낌을 준다. 「변하면 변할수록 옛 모습을 닮아간다」는 프랑스 격언이 이래서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우파 대통령에 좌파 총리라는 엉거주춤한 정부 형태는 좋게 말해 좌·우익의 균형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프랑스인들의 「선택의 딜레마」가 작용한 거나 다름없다. 사실 좌파, 우파라는 말의 비조부터 프랑스다.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공회에서 부유한 부르좌를 대변했던 지롱드파와 소시민층과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삼았던 자코뱅파는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 앉았다. 이때의 자리 위치가 이념의 이름을 갈라 놓은 것이다. 이렇듯 프랑스 정치에서 좌우 동거의 역사는 태생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프랑스 총선 결과는 지구촌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좌파인 노동당의 승리 여세가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까지 미쳤다는 분석이 정설이다. 이란 대선에서 변화와 개방의 깃발을 높이 든 진보 인사가 당선된 것도 마찬가지다. 변화의 도미노현상을 예단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리네 정치권에서 나라밖의 정치적 변화를 보는 눈은 「자기 논에 물대기」식이다. 여당은 참신한 인물로의 세대교체만 부각시키는 반면 야당은 정당간 수평적 정권교체의 의미를 늘상 앞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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