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05-08
 
 영국왕이었던 헨리 3세는 국민들의 근검절약을 위해 「검소령」이란 걸 내린 적이 있다. 이 검소령의 뼈대는 의상에 황금이나 보석을 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처음엔 왕의 말발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왕은 궁리끝에 「매춘부나 도둑놈은 이 법령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단서를 붙여 다시 공포했다. 그러자 다음 날부터 보석과 황금이 런던시민들의 치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얼마뒤 왕이 프랑스왕족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게 됐다. 영국법령을 알 리 없는 왕비는 갖가지 보석으로 몸단장을 하고 궁전에 나타났다. 헨리 3세는 자신이 공포한 법령을 설명했으나 왕비는 말을 듣지 않았다. 왕은 그 다음날 당장 검소령을 폐지하고 말았다. 왕비부터 법령을 지키지 않아 「매춘부」가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그런 일화를 가진 영국에서 새로 탄생한 재상과 그 가족의 검소하고 소박한 일상생활이 잔잔한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신문을 받아든 독자들은 토니 블레어 신임총리의 자녀들이 이삿짐을 나르는 사진을 보고 느낀 바가 적지 않았을 법하다. 영국총리 관저에는 가정부도 두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삼는다. 그 때문인지 며칠전 새 퍼스트 레이디인 세리 부스여사가 축하화분을 전하기 위해 아침 일찍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듣고 잠옷바람으로 나오려던 모습이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혀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블레어총리에겐 노동당 당수시절의 흥미있는 얘기도 전해진다. 내무장관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8살이던 막내딸 캐트린이 받았다. 이 녀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빠는 설거지중이니 나중에 전화하세요』. 손수 노동을 하는 그가 과연 노동당 당수답다는 평을 들을 만도 하다. 하기야 러시아의 역대 통치자가운데 가장 존경받고 있는 표트르 대제는 의자와 식기 등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쓸정도였다. 블레어가 금세기 최연소 영국총리에 취임한 사실보다 근검하는 그의 생활이 우리국민의 눈을 더욱 번쩍뜨이게 하는 것은 모범적인 지도자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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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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