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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폴 포트의 투항

1997-06-20

 캄보디아를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킬링 필드」를 맨먼저 떠올린다. 크메르 루주에 의해 적화된 1975년, 수천명의 시체들이 널브러진 살육장을 목도하고 붙잡혔다가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 디스 프란. 먼저 빠져나간 동료 뉴욕 타임스지 기자 시드니 센버그와 그가 재회의 기쁨으로 힘차게 포옹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존 레넌의 「생각하세요」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킬링 필드」는 그곳에서 3년간 억류됐다가 탈출한 디스 프란이 쓴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데다 그의 역을 맡은 행 느고르도 캄보디아 억류생활끝에 탈출한 경험이 있어 영화의 생동감을 더해준다.「킬링 필드」의 악명높은 실제 주인공은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인 것이나 다름없다. 월남 패망직후 정권을 장악한 폴 포트는 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2백여만명의 동족을 무참히 살육, 인류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아직도 「킬링 필드」시대의 공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훈 할머니의 참극도 「킬링 필드」때문에 깊어졌는지 모른다. 권력에서 물러난 뒤에도 내전을 지휘해 온 폴 포트가 마침내 투항했다니 삶의 무상을 새삼스레 느끼게 한다. 아직 미스터리가 남아있는 그의 투항을 둘러싸고도 캄보디아판 합종연횡설까지 나돈다.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와 훈센 제2총리가 「이상한 연정」을 꾸려가고 있는 캄보디아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폴 포트의 세력을 서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에서 그의 투항이 비롯됐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퍼져 있다. 이 때문에 그를 법정에 세워 처벌하지 않고 사면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역사라도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킬링 필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데 캄보디아의 비극이 있다. 1, 2총리 세력간의 총격전으로 새로운 내전위기에 빠져들고 있어서다. 북한을 생지옥으로 만든 김정일도 폴 포트의 인생역정에서 느끼는 바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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