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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세계 경제 위기의 대응기구 ‘G20보다 유엔’



‘위기 주범’들이 주도한 G20 대표성 없고
최대 피해자인 약소국 배제는 후안무치

▲ 스티글리츠 보고서-세계 경제의 대안을 말하다…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 동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열흘 남짓 앞둬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당면한 범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거의 유일한 경제기구로 자처하는 G20의 중재자 역할로 들떠있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 유엔총회 전문가위원회 의장을 비롯한 세계적인 석학그룹은 G20이 세계경제의 대표 자격이 없을뿐더러 중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G20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5%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대표성이나 정치적으로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경제를 망친 주범인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주도하는 G20이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가장 큰 피해자가 된 약소국과 개발도상국을 배제한 것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후안무치하다고 이들은 따끔한 매를 들이댄다. 이 때문에 세계적 차원에서 요구되는 제도적 장치의 개혁이 G7, G8, G10, G20 등 무엇이든 임의로 뽑은 그룹에 의해 결정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번 위기 대응 기구는 지구상의 192개국(G192) 모두의 대표를 아울러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세계 모든 나라를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으면서 정당성을 갖춘 국제기구는 뭘까. 석학그룹은 유엔밖에 없다고 본다. 유엔은 가난한 나라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고, 형평성과 정의에 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G20을 유엔으로 흡수하자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위기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직면한 여러 거대한 위기 가운데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가 불거지자 제63차 유엔총회 의장인 미겔 데스코토 브로크만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20여명의 세계 석학들로 유엔총회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해 말 현실적이고 공감을 얻을 만한 대안을 담은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들은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정신이며 현실이 되었다는 전제 아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더욱 민주적이며, 더 공정하고,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모색했다. 그 결과물로 금융·통화·국제기구·세계체제·거시경제와 미시경제의 문제 등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기후·에너지·식량 문제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경제의 수많은 오류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지난 25년간 유행했던 신자유주의와 시장근본주의라 불리는 잘못된 이념, 이론적 전제, 정책적 실패, 제도적 장치의 결함, 규제 실패 등 체제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실패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여긴다. 이에 따라 진정한 위기의 극복은 단순히 금융이나 경제지표의 호전이 아닌 체제 전체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세계 경제가 해결해야 할 주제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 글로벌 위기, 세계적 비대칭성의 존재, 혁신 문제 등 8가지를 들었다. 아울러 세계 경제개혁의 기본 원칙도 내놓았다. 시장과 정부 사이의 균형 회복, 장기적 전망에 조응하는 단기 행동, 분배적 여파에 대한 평가, 세계 불균형과 비대칭성의 심화 회피,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경계가 그것이다.

대안체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글로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구현할 수 있는 세계 정치경제 체제이다.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라면 이에 걸맞은 민주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권능을 지닌 세계경제협력이사회의 창설을 제안한다. 이들도 전문가위원회와 G20의 활동이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점과 G20 등 소수 그룹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는다. G20도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비판을 의식한 때문인지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개도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언급하기 시작하긴 했다.

본문에 수십 번 등장하는 ‘거시경제’라는 용어가 거의 시종일관 ‘겨시경제’라는 오자로 나오는데도 교열과정에서 바로잡히지 않은 게 약간 눈에 거슬린다. 박형준 옮김.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