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가장 잘 지켜야할 사람이 위법·불법 행위를 많이 하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법은 만든 사람이 더 잘 지켜야한다. 한국은 정반대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벌을 잘 받지 않는 게 법을 만든 국회의원이다. 그 덕분에 ‘방탄국회’란 희한한 말까지 생겨났다. 범법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을 체포하거나 구속을 막는 불체포특권까지 누리기 때문이다.


 국회는 가장 기본적인 국회법부터 상습적으로 위반하고 있다. 기초적인 임무인 원 구성 시한을 정한 국회법을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20대 국회 후반기를 벌써 시작했어야 하지만, 국회의장조차 없어 놀면서 월급(세비)은 꼬박꼬박 챙기는 중이다.

 

  지난 5월 29일로 20대 국회 전반기는 끝났다. 후반기 국회의장단 선출은 전반기 의장단 임기만료일 전 5일에 해야 한다. 이런 국회법을 지키려면 5월 24일까지는 끝냈어야 했다. 18개 상임위원장은 전반기 임기만료일까지 선출해야 한다. 6·13 지방선거를 핑계로 방치했다. 국회의 직무유기다.

                                                                                        


 국회를 기다리고 있는 현안은 산적하다.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밀려 있다. 17일까지 원내교섭단체가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뜻깊은 70주년 제헌절 경축식을 국회의장 없이 치러야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1994년 국회법 개정 이후 지금까지 제때 국회의장이 뽑힌 것은 19대 국회 후반기인 2014년 단 한 번뿐이었다. 그나마 상임위원장까지 원 구성을 마무리하기까지는 한 달 가까이 더 걸렸다.


 지금의 국회 지도부 공백사태는 여야 4개 원내교섭단체별로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입장과 요구가 크게 달라 초래된 일이다. 자신들의 감투싸움일 뿐 유권자와는 상관없다. 스스로 만든 법을 어겨도 무감각해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마냥 늦춰도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 허울뿐인 국회법이다. 늦춘 만큼 불이익이 돌아가게 해야 법이 지켜진다. 세비 반납이 방법의 하나이지만, 벌칙조항을 국회법에 넣는 것도 의원들 몫이어서 제 밥그릇을 차버릴 리 만무하다. 밥그릇 챙기기에 국회를 따를 곳이 없다는 악명이 자자하니 말이다.

 국회법 위반 사례는 열거하기도 어렵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결과를 보면 국회의원들은 국회법 6개 조항을 상시로 위반한다. 소속 정당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투표하도록 한 조항은 당론 투표에 익숙한 국회의원들에게는 아예 의미가 없어졌다. 국회의원의 상임위원회 규정도 상시 위반 대상이다. 국회법은 상임위원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회기가 시작된 뒤 30일 이내에 상임위 이동을 금지했지만, 한때 연평균 250건의 불법 이동이 있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 내용을 비공개하기로 의결하지 않는 한 공개하도록 한 조항도 거의 지키지 않는다. 자신들의 언행이 공개되는 걸 꺼려 소위원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수시로 비공개 회의를 진행한다. 국회 내 모든 회의는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한 조항도 수없이 위반한다. 다양하게 규제하고 있는 국회의원의 품위조항도 언론 보도로 드러났듯이 있으나마나하다. 국회 출석 의무, 회의장 내 질서문란행위 금지, 타인 모욕·사생활에 대한 발언 금지, 발언방해 금지, 회의진행 방해물건 반입 금지, 겸직내용 신고, 소관 상임위원 직무 관련 영리행위 금지가 대표적이다. 국회 안에 윤리위원회가 있으나 장식용에 불과하다.


 예산·결산안 처리 위반은 상습행위로 손꼽히는 종목의 하나다. 국회가 예산안을 12월 2일까지 처리해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으나 국회는 번번이 기한을 넘긴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늘 어겨왔다. 여야의 극한 대립 때문이었다. 강제조항이 필요하다. 예산안 처리 지연은 중앙정부의 예산 공고, 집행계획 수립, 분기별 배정계획 같은 집행 준비에 차질을 빚기 때문에 상당한 부작용과 비효율을 낳는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드러난 여야 실세 의원들의 쪽지예산 행태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쪽지예산’ 부탁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 위반임에도 그렇다.


 국정감사도 기간을 지키지 않는 사례도 다반사다. 헌법 61조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기국회 집회일 이전에 감사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 감사를 실시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어길 때가 잦다. 고위공직자 임명동의안 처리 시한(제출한 날로부터 20일 이내) 역시 무시하기 일쑤다. 인사청문 시한이 인사청문회법에 규정돼 있으나 수시로 어긴다. 총선 선거구 획정안도 법정 시한을 지킨 적이 거의 없다. 이를 어겼을 때 제재 장치나 처벌조항을 넣지 않은 것은 입법권을 지닌 국회의원들의 낮은 준법정신 때문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선거법 위반처럼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일까지도 몰래 어기는 국회의원들 역시 적지 않다. 법치의 전범이 돼야 할 국회의원들이 나라의 최고 규범인 헌법부터 국회법까지 상습적으로 유린하면서 유권자에게 법 준수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 힘없는 서민들은 법을 어기면 엄한 처벌을 피해갈 수 없다. 자기가 만든 법을 어기는 국회의원은 더욱 엄중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고대 중국의 상앙은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