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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침통한 노동의 미래 신통한 대안도 없다

입력 : 2008-08-08 17:23:35수정 : 2008-08-08 17:23:39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현대판 버전들은 노동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풍자한다. 개미가 여름 내내 땀을 흘리며 일하는 동안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가 겨울에 음반을 내고 콘서트도 열어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개정판은 지식사회의 단면을 반영한다.

반면에 일을 많이 한 개미가 허리를 다쳐 입원했다는 풍유는 과로 방어와 휴식의 중요성을 파고든다.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가 겨울에도 개미를 찾아가 구걸하지 않고 국가의 복지수당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끝맺음은 북유럽 노동자들과 비교할 때 등단하곤 한다.

이처럼 익살과 해학의 소재가 되는 노동은 기실 더없이 신성하게 다뤄지는 명제다. 피렌체의 성 안토니오가 남긴 잠언의 물결은 넓고 길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경합을 벌여 사고 되파는 상품이 아니다. 노동은 인간의 품위이다. 노동자가 존중 받고 보호받아야 하듯이, 노동 자체도 존중 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성 안토니오의 정신은 1914년 미국 클레이턴법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영됐다. 1944년엔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필라델피아 선언으로 투영됐다.

그렇지만 노동의 현실과 미래는 희망을 구가할 계제가 아니다. 첨단기술이 낳은 노동의 세계화와 디지털화, 작업의 자동화, 기업의 리엔지니어링은 고실업과 노동의 비인간화를 재촉하고 있다. 서비스 분야의 노동력마저 기계가 대체하면서 노동유목민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완전고용사회의 신화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가 됐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다. 우울한 노동사회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전 지구적 현상이다. 국내에서도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음습한 비정규직 사회가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위험사회론’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생각의 나무)에서 이같이 음울한 노동의 미래를 성찰했다. 이미 새천년이 시작되기 전의 일이다. 제목만 보면 노동의 장밋빛 앞날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비관적인 미래상을 그려놓고 나름대로 대안을 모색한다.

벡은 완전 고용이란 용어가 박제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미래의 구조적 환경을 옛날로 되돌릴 수 없다고 못 박는다. 2%대의 실업률, 정규노동, 직업을 통한 안정이라는 환상은 고용 없는 성장과 필연적으로 자리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상황이 순환적 경제 위기가 아니라 기술적 발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일터에서 마냥 몰아내기만 했다.

노동의 침통한 미래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로마클럽 보고서 ‘노동의 미래’, 토머스 말론의 ‘노동의 미래’ 등에서도 한결같다. 어두운 목소리의 크기와 대안 제시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벡은 잉여노동을 시민운동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요구하는 노동력으로 전환할 것을 재촉한다. 필요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저절로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닌 만큼 정치적 해결책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벡은 공적인 분야에 효과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시민들에게 시민수당을 주고 이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시민노동 모델을 내놓았다. 빌 게이츠와 테레사 수녀의 결합에 비견할 수 있는 기업가적 요소와 공공복리를 위한 노동의 결합이 그것이다.

이런 해결책이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긴 하다. 더구나 서구적 조건과 한국적 여건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성과 위주, 성장제일주의가 지배적인 한국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영영 노동유목민 타령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처럼 휴가를 즐기는 계절이기에 실업자·비정규직 노동자의 고단한 삶과 노동의 미래를 새삼 떠올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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