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나라는 역사를 감추지 않는다. 항상 오점을 직시하고 그것을 바로잡는다.” 누가 한 말 같은가? 진보 역사학자, 아니면 좌파 정치지도자? 놀랍게도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삼은 신보수주의자(네오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명언이다. 부시는 지난해 9월 워싱턴 내셔널 몰에 문을 연 흑인역사문화박물관 개관식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나란히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박물관은 진실을 위한 우리의 헌신을 보여준다는 한 마디도 덧붙였다. 흑인역사박물관은 노예 제도와 흑인 차별의 진면목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미국의 치부나 다름없다.

 

 부시의 말은 역사 왜곡에 혈안이 된 일본 정부에 그대로 전해주면 안성맞춤이다. 사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친일·독재의 실상을 윤색하고 아버지 박정희를 미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해가 갈수록 역사 왜곡에 집요함을 더해 가고 있는 일본 극우정권은 지난 주 한층 무서운 마각을 드러냈다. 24일 공개된 일본 고교 역사·사회과목 교과서 검정 결과,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책이 대폭 늘어나 80%에 이르렀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은폐·축소한 일본 교과서는 여기에 더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을 줄이고 왜곡하기 시작했다. 201512월 한일 두 나라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처음으로 반영됐지만, 다수의 교과서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사실만 부각했다.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은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베 정권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 국면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위안부 합의부터 들먹였다. ‘불가역적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도 손대지 못한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했다. 이런 수준의 합의라면 앞선 정부들이 하지 못할 까닭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일본의 역사왜곡을 도와준 꼴이 됐다. 더 큰 문제는 가해자인 일본의 아베 총리와 각료들이 피해자인 한국인들을 조롱하는 데도 한국정부가 입을 다물고 있는 점이다. 진정한 사과와 책임 없는 이상한 합의 탓에 일본이 사실을 왜곡해도 한국 정부가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은 한국 외교 관계자들이다. 이준규 주일 한국대사는 25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의 차기 정권이 위안부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발언을 또다시 해 비난을 자초했다. 이 대사는 부산 위안부 소녀상도 이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일본 편을 들었다.

                                                                                  

      

   국민 여론과 거꾸로 가는 행태다. 지난달 한국갤럽 여론 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재협상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재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은 2016158%, 2016963%에서 2017270%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부산 소녀상 역시 78%그대로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찬성 여론과 맞먹는 수준이다. 국민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에는 이준규 대사 임명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점이 감안됐으리라는 의구심도 작용했다.

 

 잘못된 위안부 합의는 온갖 파문을 낳고 있다. “위안부 합의 무효!”를 외치며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던 대학생이 지난주 검찰로부터 징역 16개월을 구형받은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숙명여대생 김샘(25) 씨는 시위를 벌이고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지킨 혐의로 한 달에 네 번 재판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저항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용수 할머니(90)는 지난 25일 제주 평화나비 콘서트에서 한일위안부 합의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진정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알량한 10억 엔의 돈이 아닌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원한다는 강렬한 목소리가 담겼다.

 

 오는 510일 탄생할 차기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해야 마땅하다. 차기 정권으로서는 이미 합의한 걸 되돌리려면 외교적 난관이 없지 않겠지만, 피해자도, 국민도 원하지 않는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는 없는 게 낫다. 정부 차원의 백서를 당초 계획대로 만들고 일본이 재협상에 불응하면 유엔을 비롯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홍보·외교전을 펼쳐나가는 길을 선택하는 게 옳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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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