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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더 큰 문제는 인사철학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 추락은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 여론조사 때마다 유권자들은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사람을 잘 못쓰는 것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인사청문회 단계에서 역대 최다 낙마를 기록한 일과 더불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워싱턴 스캔들이 이를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박대통령은 대다수가 기용에 반대한 윤 전대변인의 참담한 말로를 겪고 난 뒤에야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여론주도층은 박 대통령이 흔쾌하게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걸 여전히 미심쩍게 지켜본다. 새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과 대변인 임명부터 시험무대가 될 게 틀림없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에 신뢰를 주지 못했다. 사람 보는 눈을 의미하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은 최고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이다. 지인지감은 하루아침에 키우거나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이렇게 비유했다. “세상에는 백락(伯樂·중국 주나라 때 말 감식을 잘한 사람)이 있고 그런 다음에 천리마가 있다. 천리마는 늘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지는 않다.” 인재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백락의 눈을 가진 지도자는 찾기 힘들다는 뜻이렷다.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은 누구도 완벽하지는 못하다. 해서 탁월한 인재의 추천과 인물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지도자의 그릇이 늘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른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천하의 재사 제갈량을 얻은 유비도 사마휘(司馬徽)라는 백락 같은 지인지감의 소유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람 감식안이 남달라 수경 선생(水鏡先生)이란 별칭을 얻은 사마휘 덕분에 유비는 둘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다던 천하의 기재 제갈량과 방통(龐統)을 모두 손에 넣었다. 사마휘는 초야에 묻혀 있던 제갈량을 “주나라 800년 기초를 닦은 강태공, 한나라 400년의 기업을 일으킨 장자방에 비할 만하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사마휘 같은 지인지감의 소유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인 만큼 박 대통령은 다양한 분야로부터 추천을 받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찍어 내려 보내는 상의하달식 인사시스템을 고집한다면 앞으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청와대가 검증을 한층 더 꼼꼼하게 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평판까지 감안하겠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내려오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인사위원회를 활성화시키겠다지만 대통령에게 복수로 추천하는 상향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검증팀을 늘리고 인사위원회 구성원을 보강하더라도 최종 결과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대통령 몫이다. 검증팀과 인사위원회가 ‘부적격’이라는 의견을 과감하게 내더라도 대통령이 그걸 의미 있게 받아주느냐가 문제다. 대통령이 몇몇 고위 관계자들과 사전조율한 뒤 공식 인사위원회에 부칠 경우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는 조성되기 힘들다.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인사위원회는 큰 의미가 없다.


  인사위원회를 활성화할 경우 위원 모두가 적격 여부 심사서류에 서명을 해 남기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 그만큼 책임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오늘날 헌법에 해당하는 ‘경국대전’에 인사 추천자에게 연대 책임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지 않은가. 지금보다 체계적이고 생산적인 인사시스템은 대통령의 실질적인 인사철학 변화에 달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릇을 구하느냐다. 지금의 인사기준 대로라면 재승박덕하거나 외면적 충성심만 강한 인물이 발탁되기 쉽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처럼 재능이나 충성심 못지않게 덕성을 먼저 보겠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미국 인사시스템처럼 다면 평가를 하면 덕성의 짝퉁 여부도 어렵잖게 가려질 것이다. 자신의 뜻과 말만 충실히 이행하는 스타일의 인물이 아니라 최고의 동량지재(棟梁之材)를 구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인사개혁의 관건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