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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누가 세상 만들었나” VS “지나친 대중 영합주의”

입력 : 2007-07-27 15:45:10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김영사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면 가장 불편하고 짜증스러워할 사람들은 종교계 지도자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신도들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기독교와 가톨릭 교계 인사들일 게다. 독실한 신앙인일수록 그 강도는 정비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잖아도 도발적인 글쓰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무신론자로 손꼽혀온 영국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종교인들의 반감은 이미 만성화한 상태다. 문제의 과학전사(科學戰士) 도킨스가 펴낸 최신작 ‘만들어진 신(원제 The God Delusion)’은 종교에 대한 선전포고문이나 다름없다. 특히 ‘지적 설계’라는 새로운 방어무기를 장만한 창조론에 깊은 신뢰감을 가졌다는 기독교와 가톨릭교계 지도자들에 대한 도전장이다. 그만큼 논쟁적인 저작이 될 수밖에 없다. 종교를 비판하는 책의 출간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통렬하고 파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흔치 않다. 가위 과학과 종교의 대충돌로 봐도 좋겠다.

그는 모든 책에서 그렇듯이 여기서도 결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독자의 구미를 사로잡기 위한 수사학의 전주곡부터 강렬하다. 그는 들어가는 글에서 존 레논의 노랫말처럼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이라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무신론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현실적인 열망이고 용감한 행위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썼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스티븐 굴드와 더불어 찰스 다윈 이후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평가 받는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 등 일련의 진화론 베스트셀러 저서를 통해 종교계에 도전장을 낸 지 오래다. 그에게 ‘진화생물학의 마키아벨리’란 별명을 붙여줘도 좋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웬만큼 책을 읽는 독자가 그를 모른다면 수준을 의심받아도 하소연할 길이 없을 정도다.

‘만들어진 신’이 지난해 9월 첫 출간된 뒤 10개월째 영미권에서 베스트셀러 상단을 지키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대중적인 과학전도가 여전히 먹혀들고 있음을 방증한다. 옥스퍼드 대학이 그에게 ‘과학의 대중적 이해’ 교수라는 특별한 경칭을 부여한 것 역시 이런 능력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특장인 대중적인 인기와 학술논쟁을 교묘하게 접합하는 기술이 이 책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로 몇 가지 논리적이고 과학적 근거를 내세운다. 먼저 신의 우주창조설을 뒷받침하는 지적 설계론의 허점을 파고 든다. 가장 진화된 존재인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맨 나중에 출현할 수밖에 없어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적 설계자 가설은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한다.

신의 존재 여부는 현재진행형 가설이며 논증의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것을 두 번째 이유로 제시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 제시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이야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능(全能)과 전지(全知)가 상호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는 논리학자들의 견해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는 신이 전지하다면 자신이 전능을 발휘해 역사의 경로에 개입하고 어떻게 바꿀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 눈으로 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간증하지만 환각에 불과하다는 증거를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들이댄다.

신이 없는 거의 확실한 이유로 그는 자연선택이론을 든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이론적 무기는 자연선택을 통한 다윈의 진화라는 견해다.

과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종교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종교가 주는 위안 때문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의 교육체계에 따른 무의식적인 수용과 대안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진실과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습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구상에서 신이 사라진다면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심리적 위안을 찾을 대안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인간 스스로 도덕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변호한다. 그는 도리어 종교의 부작용으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악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는다. 상당수의 전쟁이 종교에서 비롯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이스라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실험에서 대량학살을 비난하거나 용납하는 견해 차이를 빚어내는 것이 바로 종교였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이 책에 대한 기독교계와 학계의 반격도 만만찮다. 도킨스와 같은 옥스퍼드대의 앨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신적 권위에 대한 부정과 무신론의 근본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도킨스의 착각(The Dawkins Delusion)’이란 책에서 “도킨스는 학자적인 기본 절차를 무시하고 중상·비방으로 일관해 학자가 지켜야 할 금도를 저버렸다”고 반박한다. 교계와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도 도킨스가 지나치게 대중에 영합한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저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연결고리인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가 이 책에서도 강조된다. 이한음 옮김.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