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의 발명/린 헌트 엮음 조한욱 옮김 책세상 (1996년)

 

 잘 하는 것도 많지만 달갑잖은 세계 1위를 많이 보유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자살률, 저출산율, 고령화진행률, 이혼율,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수에서 모두 세계 정상을 달린다. 여기에 추가해야 할 게 ‘포르노그라피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라는 불명예다. 2년여 전의 보도이지만 영국 BBC방송이 발행하는 잡지 <포커스>는 한국을 1인당 포르노그라피에 지출하는 비용이 가장 많은 국가 1위에 올려놓았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가지 죄악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고 있는지 국가별 순위를 매긴 결과다. 한국은 색욕, 식욕, 탐욕, 나태, 분노, 시기, 오만 가운데 색욕 부분 1위에 등극한 것이다.


  포르노그라피는 인간 본능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관음의 욕구가 배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얻어낸 부산물의 하나다. 사진,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스마트폰의 발명이 현대인들의 무한 욕구를 부추긴다. 첨단 매체가 등장하기 전에는 어땠을까. 린 헌트 미국 펜실베니아대 석좌교수를 비롯한 9명의 역사학자·문화사가들은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원제 The invention of pornography)에서 그 기원을 풀어내 준다. ‘외설성과 현대성의 기원, 1500∼1800’이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지은이들은 르네상스 시대와 프랑스 혁명기를 거치는 동안 유럽의 관음문화를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헌트는 “근세 초의 포르노그라피는 자유사상과 이단, 과학과 자연철학, 절대주의적 정치권력에 대한 공격 등 현대문화 발생기의 가장 중요한 성격을 보여준다”고 책의 의미를 설명한다.

                                                                                         


 1991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열린, 같은 이름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던 논문을 정리해 엮은 책이어서 외설성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16∼18세기 도색화 50여 점을 곁들인데다 당시의 야한 문학작품을 소개하면서 노골적인 표현이나 성적 용어를 그대로 인용한 경우도 더러 있긴 하다. 하지만 21세기의 시각에서 보면 한참 낡은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당시 프르노그라피는 그림, 삽화, 소설, 시 같은 것에 한정돼 있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의 포르노그라피가 대부분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세계 민주주의의 싹이 된 프랑스 혁명에도 포르노그라피가 막중한 역할을 했다고 대표저자 격인 헌트는 분석한다. 음란 저작물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주요 원인은 아니겠지만,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그라피가 만연돼 있는 상황에서 한층 광범한 사회 위기의 전조를 읽었다고 그는 단언한다.


 

 공격의 대상이 된 중심인물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루이 16세의 왕비 앙투아네트의 성적 비행을 열거한 포르노 팸플릿은 왕위 계승자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토록 해 왕권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혁명파들은 “왕비가 낳은 아이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의 포르노그라피를 통해 왕권실추에 결정타를 가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시동생인 다르투아백작 폴리냑공작부인과 집단혼음을 하는 내용을 그린 ‘취한 오스트리아여인’은 당국의 집중단속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왕비가 시종과 정사를 벌이는 포르노그라피는 왕비의 육체에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으며, 따라서 국가권력에 접근할 수 있다는 환상을 일으켜 민주주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1740년대와 1790년대 사이에 프랑스의 포르노그라피는 더욱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군주제에 대한 비판이 신랄해져 포르노그라피 팸플릿은 성직자, 궁정, 심지어 국왕 루이 15세까지 공격을 감행했다. 헌트는 그런 점 때문에 ‘포르노그라피와 혁명은 불편한 동침자’로 묘사한다.
                                                               

                                                              <원서>

 프랑스 혁명과 포르노그라피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이 책은 전한다. 주도적인 혁명가 가운데 최소한 두 사람-미라보와 생쥐스트-은 혁명 이전에 포르노그라피를 쓴 일이 있었고, 사드 후작으로 대표되는 주도적 포르노그라피 작가 중 여러 사람은 혁명에 직접 참여했다. 정치적 동기를 지니고 있던 포르노그라피는 앙시엥 레짐의 정통성을 침해함으로써 혁명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됐다. 1789년 언론이 자유를 얻은 이후 혁명정부는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다. 정치적 포르노그라피는 16세기의 아레티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나긴 계보를 지니고 있고, 프랑스 앙시엥 레짐의 마지막 몇 십년간 최고조에 달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에서 뿐만 아니라 서구의 다른 지역에서도 포르노그라피의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의 근세 초 유럽에서 포르노그라피는 흔히 성의 충격을 이용해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헌트는 진단한다. 헌트는 포르노그라피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작가, 예술가, 판화가들의 진영과 첩자, 경찰, 성직자, 국가관리 진영 사이의 충돌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정치적·문화적 의미는 그것이 사고와 표현, 통제의 범주로 등장하게 된 사실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발명’이란 책 제목을 붙인 듯하다.


  포르노그라피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특이하고 역설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16, 17세기의 포르노그라피는 대체로 기질상 자유사상을 가진 도시귀족이었던 남성 엘리트 독자들을 위해 쓰였다. 쓴 사람도 대부분 남성이었다. 18세기에는 포르노그래피의 주제가 민주주의적 담론에 침투함으로써 독자층이 확대되었고, 프랑스 혁명에 의해 더 큰 자극을 받으며 전개되었다.


 루이 14세의 치세기간 포르노그라피와 음란물은 교회와 국가의 권위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난이 심했던 루이 14세 말년에, 신교도들과 종교적 광신도들이 감옥을 채웠을 때 포르노그라피는 대안적 왕국이나 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교회와 국가의 기존 권위의 부패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더욱 빈번했다. 로버트 단튼 같은 학자들은 근세 초 프랑스에서 정치, 포르노그라피, 철학이 이른바 ‘세속적 삼위일체’를 이루며 존재했다고 본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야 포르노그라피는 서서히 성적 자극이라는 기능만을 근거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대표 저자 린 헌트>

 프랑스의 전통이 유럽의 포르노그라피 소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데 비해, 18세기의 영국에는 20세기의 독자들이 노골적으로 포르노그라피라고 인정할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랜돌프 트럼백 뉴욕시립대 교수는 설명한다. 옥스퍼드영어사전에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라는 단어가 최초로 수록된 게 1857년의 일이다.

 

  다만 20세기 장르의 선구자로 평가받을만한 존 클렐런드의 <패니 힐>은 사실상 유일하게 확고한 포르노그라피의 사례라고 한다. 정식 제목이 <쾌락의 여성의 회고록>인 <패니 힐>은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고 가장 많이 읽힌 포르노그라피 소설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은 서술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기법을 사용해 대단한 성적 흥분을 이끌어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클렐런드는 기독교적 금욕주의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성적 쾌락을 정당화시키려 했다. 이 작품의 목적은 뚜렷하게 정치적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외려 풍자적이지도 해학적이지도 않은 맥락 속에서 독자들을 성적으로 도발시키려는 목적을 일차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과 달리 이웃나라 네덜란드는 포르노그라피의 정치화나 종교적 무기화가 없었던 게 특이하다.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철학자나 정치적 작가들이 서부 유럽의 대다수 국가보다 큰 자유를 누렸다. 이 때문에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포르노그라피 같은 수단을 쓰지 않아도 됐다고 위트레히트 대학의 베이난트 W. 메인하르트 교수는 분석하고 있다. 생생하고 포르노그라피적으로 대단히 발전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림의 성격과 비교할 때 네덜란드 그림은 단조롭고 정숙하기까지 하다. 서적의 삽화도 마찬가지로 온건했다. 정치적·철학적 논의에서 포르노그라피가 배제됐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에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네덜란드 공화국의 정치적·사회적·종교적 구조다. 네덜란드에는 교리나 도덕에 관한 특별한 권한을 지니는 궁정, 국왕, 특권 귀족, 국가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18세기 영국에서도 고도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자생적인 포르노그라피의 분출을 막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생적인 포르노그라피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이후, 대중 정치가 출현한 시기다. 이는 포르노그라피와 민주주의 사이의 상관관계를 시사해준다.


 

   최초의 현대적인 포르노그라피 작품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공인된 것은 16세기 이탈리아 작가인 피에트로 아레티노(1492-1557)의 소설 <논리>다. 나이 들고 경험 많은 창녀와 젊고 순진한 창녀가 성행위에 관해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논리>는 17세기 포르노그라피 산문의 전범이 됐다.


 

 ‘포르노그라프’라는 단어는 원래 매춘에 관련된 저작을 지칭하며, 1769년 브르타뉴의 레스티프가 처음 사용했다고 헌트 교수는 전한다. 1806년에 이르러 이 용어는 사회 질서에 혼란을 초래하고 미풍양속을 위반하는 저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같은 해 금서사전을 편찬한 프랑스인은 포르노그라피를 종교적·정치적 이유에 대립되는 도덕적 이유로 억압되는 책의 범주라고 정의했다. 영국의 경우 19세기 후반까지 포르노그라피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포르노그라피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들어서야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포르노그라피는 원래 그리스어의 매춘부(porne)와 글쓰기(graphos)에서 유래된 단어로 ‘매춘부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포르노그라피는 그리스인이 창출한 하나의 훌륭한 문학형 시인 셈이다. 포르노그라피란 말은 실제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면서 그 경계 또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가변한다. 포터 스튜어트 미국 연방대법관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외설에 대한 정의를 내릴 생각도 없으며 그것이 지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면 안다.” 1964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음란한 하드코어 포르노그라피의 판단기준을 딱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던 때 했던 명언이다.

 

  근세 초기에도 포르노그라피라고 여긴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경계선도 정치적으로 설정됐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경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외설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18세기의 정의는 현대의 정의와 현저하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모호했다고 뤼시엔느 프라미에-마쥐르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는 설명한다. <백과전서>에서 ‘외설적’이라는 단어는 “정숙한 것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었다고 한다.


 

 <언어의 폭력>을 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 저항작가는 J. M. 코에체는 에로틱 문화현상 가운데 외설물과 포르노그라피를 구분한다. 외설물은 사회의 도덕감각을 도발함으로써 그 반동력을 상품화하는 주변현상에 불과한 것이어서 도덕적 판단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포르노그라피는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기존의 터부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를 가진 행위다. 그 예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든다. 그렇지만 시장에 나온 포르노그라피는 단순한 외설물로 타락하는 경향을 지닌다. 포르노그라피가 정치적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욕망의 충족을 약속해 주기만 해야지 욕망을 충족시키려 나서서는 안 된다고 코에체는 선을 긋는다.


 

 포르노그라피의 정치화에서 확실한 경계선을 그은 사람은 사드 후작이었다고 한다. 사드는 현대 포르노그라피의 거의 모든 주제를 예행 연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포르노그라피의 효과를 목록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전공이었다. 강간, 근친 상간, 존속 살해, 신성 모독, 남색과 여성 동성애, 어린이 추행, 그리고 거의 모든 형태의 가공할 고문과 살해가 사드 저서의 성적 도발과 관련이 있었다. 사디즘(가학성 변태성욕)이란 용어는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그는 포르노그라피가 지니는 정치적·사회적 전복 가능성을 극한까지 몰아갔고, 그로 말미암아 비정치적 장르의 현대 포르노그라피를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

 

  포르노그라피의 확산에는 인쇄술의 발달이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영상물의 발전이 또 다른 도약 단계를 만들어 준 것에 비견될 만큼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접할 수 있게 되고, 검열과 통제의 필요성이 촉발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포르노그라피는 처음부터 정치적 비판은 물론 새로운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었다. 포르노그라피는 16세기에 최초로 출현했고, 인쇄문화와 동시에 발전했다. 포르노그라피가 인쇄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였던 소설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설을 출판하지 않았던 국가에서는 포르노그라피도 거의 출현하지 않았다. <패니 힐>은 감상적 소설과 포르노그라피의 혼합형이다.


 

  또 다른 저자인 과학사가 마거릿 C. 제이콥은 포르노그라피의 영감은 처음 자연주의적인 성격에서 출발해 철저하게 물질주의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자연주의는 성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간 성욕은 자연발생적이라는 관점을 제시해 포르노그라피를 자연철학에 뿌리를 두게 했다. 물질주의 철학의 등장 이후 포르노그라피에서는 자유사상을 지닌 창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며, 그들은 단순한 쾌락의 제공자가 아니라 스스로 성적 쾌락을 즐기는 존재로 나타나게 된다. 계몽사상가 디드로는 포르노그라피를 썼고, 그것 때문에 1749년 투옥되기도 했다. 18세기의 문학과 화화에서 에로틱 요소가 부활한 것은 계몽주의의 자연관에 기인한 것이다. 그 논리는 이렇다. 성욕은 자연적인 것이다. 성욕의 억제는 인위적이며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열정은 이 세계에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성적 계몽주의는 계몽사상 자체의 일부다.

 

  포르노그라피는 대체로 남성 저자에 의해 만들어져 남성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여성의 육체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남성중심주의의 산물이다. 관음증과 여성의 물건화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형제애는 사회 평준화라는 의미에서 민주적이었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 대부분 남성들만을 위한 평준화였다.


 

  포르노그라피가 반드시 정치적 비판이나 전복을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이윤을 챙기기에 편리한 매체이기도 했다. 정치적 포르노그라피의 정점은 1790년이었고, 그 이후 새로운 작품의 숫자는 1793년 이후 급격히 감소한다.

 

 사드와 브르타뉴의 레스티프처럼 잘 알려진 작가들을 제외하면 포르노그라피 작품을 누가 썼고 출판했으며 배포했는지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창녀는 포르노그라피의 역사에서 특별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라고 캐스린 노버그 UCLA교수는 평가한다. 최초의 포르노그라피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아레티노의 <논리>는 두 명의 창녀가 나누는 대화이다. 가장 중요하고 지속력 있는 포르노그라피 텍스트 중 하나인 <패니 힐>의 여주인공도 창녀다. 창녀는 포르노그라피 세계의 극치인 사드 후작의 세계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의 가장 긴 소설 <쥘리에트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창녀의 방탕함이다. 르네상스부터 프랑수 혁명에 이르기까지 창녀들은 외설 문학을 채우고 있다. <방황하는 창녀>에서 <패니 힐>까지, <마르고>에서 <쥘리에트>에 이르기까지 창녀의 수다 자체가 서구 포르노그라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 시대의 성의 정치학은 포르노그라피 작가가 창녀를 희생자로 그리는가 아니면, 약탈자로 그리는가에 따라 명확하게 나타난다고 노버그는 주장한다. ‘자유사상의 창녀’와 ‘정숙한 창녀’ 개념이 그것이다. 정숙한 창녀는 1760년경에 태어났다. 최대의 옹호자는 브르타뉴의 레스티프이다. 레스티프와 그 후의 많은 작가들에게 창녀는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다. 그녀는 불운한 희생자이고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가난한 노동계급의 자식이며, 몸은 병들었고 때로는 마음까지 병들었으며 남성과 사회의 가학증을 견뎌야 하는 운명이다. 자유사상의 창녀는 물질주의적 철학에 빠져 있고 감각적 쾌락, 특히 다양한 쾌락에 편안함을 느끼던 로코코 시대의 산물이다. 정숙한 창녀와 달리 그녀는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알지 못하며 검열관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자신의 직업을 비하시키지 않는다. 자유사상의 창녀는 18세기의 다양한 문학 작품에 등장한다. 자유사상의 창녀는 남성의 성욕을 반영하는 것이며, 남성의 육욕을 드러내주는 거울이다.
                                                               

                                             린 헌트의 다른 저작 <인권의 발명>

 

 이 책은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이자 일종의 미시사다. 포르노그라피가 지니는 다층위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책이다. 우선 포르노그라피의 외설성이 현대성의 기원 가운데 하나라는 가설을 입증하는 의미가 크다. 이 책의 특징은 포르노그라피의 내용 분석이 아니라, 만들어져 확산되고 해석되며 검열되는 방식에 비중을 둔 점이다. 당시의 성풍속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까치)나 파울 프리샤우어의 <세계풍속사>(까치)와 달리 포르노그라피가 형성된 역사와 개념에 대한 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 점이 다르다. 당시의 생생한 포르노그라피 도판을 풍부하게 수록한 공통점은 엿보인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도출한 개념과 문학비평을 활용해 포르노그라피의 언어가 지니는 외설성의 문제를 고찰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철학·문학적 측면에서 포르노그라피에 접근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현대 포르노그라피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포르노그라피 논쟁에 충실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줄만하다.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발간하는 격주간지 <기획회의> 332호(2012년11월20일자)에 실린 것을 많이 늘려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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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 목민심서 영역본(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버클리대 출판부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정약용의 최대 역작 ‘목민심서’는 한국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한 여론 조사에서 한국 국민 필독서 1위로 뽑힌 적이 있다.
‘목민심서’는 한마디로 지방행정의 지침서다.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행정관이 지녀야할 마음가짐과 지켜야 할 준칙, 덕목을 담고 있다. 정약용은 민생을 중심에 둔 정치제도의 개혁과 지방행정의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지에서 이 책을 썼다.
풍부한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당시의 실상과 관행을 파고들며, 구체적이고 분석적으로 병폐의 원인을 찾고 치유책을 제시한다. 그의 따뜻한 애민 정신, 청렴하고 검소한 선비의 자세, 자세하고 치밀한 행정 방안, 치열한 자기 수양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약용이 가장 강조하는 공직자의 덕목은 ‘청렴’이다.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本務)요, 모든 선(善)의 근원이요, 덕(德)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 부를 탐하는 수장은 그 아랫사람들까지 물들여 하나같이 축재만을 일삼게 되며, 이는 곧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도적떼와 같은 존재다.”

청렴한 정치가로 존경받는 베트남의 최고 지도자 호치민은 생전에 ‘목민심서’를 침대 머리맡에 놓고 애독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뜻 깊은 ‘목민심서’가 지난해 말 영어로 출간돼 전 세계적으로 읽힐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번역자인 최병현 호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목민심서’가 플라톤의 ‘공화국’과 견줄 수 있는 대단한 고전”이라며 “번역본 출간을 계기로 세계적인 텍스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12권으로 이뤄진 원본의 분량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압축해 1권으로 냈다. 그래도 전체 66만 단어, 1170쪽에 달할 만큼 책이 두껍다. 번역에만 7년이 걸렸으며,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 출판하는 데 3년이 더 필요했을 정도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최 교수가 2003년 버클리대에서 출간한 유성룡의 ‘징비록’(The Book of Corrections) 영역본은 미국의 미시간대, 볼스테이트대,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등에서 동양사·한국사 강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최 교수는 ‘한국고전 영역을 위한 고전용어 대사전’ (Glossary for the English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편찬 작업도 진행 중이다.
 

■ 미슐랭 그린 가이드(Michelin Green Guide) 한국 편

‘론리 플래닛’이 세계적인 으뜸 여행안내서라면, ‘미슐랭 가이드’는 ‘미식가들의 성서’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맛집·여행 안내서인 ‘미슐랭 가이드’는 고급 식당을 소개하는 ‘레드 가이드’와 사회·역사·문화·여행지·맛집을 두루 안내하는 ‘그린 가이드’로 나뉜다.

‘미슐랭 그린 가이드’의 한국편이 올 봄 프랑스에서 발간됐다.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을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르나르 델마스 미슐랭 동아시아 총괄사장은 지난 5월17일 한국관광공사에서 열린 출간기념식에서 “미슐랭은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여행자가 좋은 인상을 갖도록 한다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의 관광지 가운데 별점 3개(★★★)의 만점을 준 곳은 서울의 경복궁·창덕궁·북촌 한옥마을, 경북 경주의 불국사·석굴암·하회마을·양동마을, 경남 합천의 해인사, 제주의 성산일출봉 등 23곳이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송광사·순천만도 별점 3개를 받았다. 의외로 별점 3개를 받은 명소도 있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도립공원, 고창의 고인돌박물관 등이 그렇다. 델마스 사장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적인 것에 더 주목한다”면서 이곳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미슐랭은 한국 여행지 중에서 모두 110곳에 별점을 주고 있다. 이 가운데 시장이 많다는 게 눈길을 끈다. 부산 자갈치시장이 별점 2개를, 대구 약령한약재 시장과 서문시장도 별점 1개를 받았다.
별점은 없지만, 서울 광장시장, 경동 약령시장, 장안평 중고차시장, 답십리 중고차시장, 기타 벼룩시장 등 다양한 형태와 주제의 시장이 가볼 만한 곳으로 등장한다. 서양인들은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쉬엄쉬엄 구경할 수 있는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 이태원과 명동은 미슐랭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찜질방을 ‘한국의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한 것도 흥미롭다. ‘한국 나눔 문화의 결정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이 책은 또 한국의 경제 상황, 한류, 음주 문화, 개고기 식습관 등 다양한 한국 문화를 객관적으로 소개한다.
별점 없이 소개된 한국 식당도 새삼 주목을 받았다. 성북동 돼지갈비, 청진동 해장국 등 107군데 식당이 그런 곳이다. 미슐랭은 올 11월에 이 책의 영문판을 펴내고 레드 시리즈 발간 작업에도 곧 착수할 예정이다.
 

■ 송광사 새벽예불 CD(echoes of the great pines)--31번지 프로덕션

“몇 년 전 송광사 새벽 예불을 직접 보고 들었는데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에 CD를 사서 들었는데 역시 일품이다.” 한 한국 의사의 얘기다. “환상적이다!(Sounds fantastic!)” 사운드미러 대표이며 여러 차례 그래미상을 받은 세계 정상급의 레코딩 엔지니어인 존 뉴튼(John Newton)의 찬사다. 천년고찰로, 한국의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승보 종찰(僧寶宗刹) 송광사의 새벽 예불을 한국 최초로 DSD 5.0 채널 서라운드 방식으로 현장에서 녹음한 음반을 들은 소감은 이처럼 강렬하다.

새벽 예불은 사찰의 의식 가운데 가장 경건하며 웅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송광사 예불은 남다르다. 예불의 중심에 소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광사 예불은 어느 사찰의 그것보다 ‘음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송광사 새벽예불 CD’는 여러 가지 면에서 뜻 깊다. 예불을 담은 음반은 이미 여러 종이 시중에 나와 있다. 소리의 품격이 탁월한 것으로 이름 높은 송광사의 예불 역시 두 차례나 음반으로 출시됐다. 그럼에도 새로 나온 이 음반이 관심을 모으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 음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음악 CD 제작을 위한 녹음은 보통 PCM (pulse code modulation)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송광사 새벽예불 CD’는 한 차원 높은 DSD 방식으로 녹음됐다.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예불의 현장 한가운데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CD는 새벽 산사의 예불 소리를 여러분의 거실로 청아한 원음 그대로 옮겨다줄 것이다. 만물을 깨우는 이른 새벽의 예불 소리에 잠길 때, 이 CD에 실린 음반 해설처럼, 성불이 가까이 있음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운전 중인 차 안에서 듣는다면 복잡한 교통상황에 짜증을 느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 은은하게 영혼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예불을 녹음하고 음반화 작업을 총괄한 황병준 사운드미러 코리아 대표는 2008년 그래미 최우수 녹음기술상을 수상한 그레차니노프의 합창 음악 ‘수난 주간’의 녹음에 참여했던 국내 최고의 레코딩 엔지니어 가운데 한 사람이다. 황 대표는 “이 CD로 그래미상 녹음기술상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제목과 해설을 모두 영어로 병기하고 한국 발매와 동시에 미국에 이 CD를 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 영문판 2011년 가을호에 실린 것입니다.>

Kim Hak-soon/Journalist

English Translation of Abridged Classic of Joseon Scholar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 Written by Jeong Yak-yong, Translated by Choi Byeong-hyeon, Berkeley University Press, 1174 pages, $95.00 (hardcover)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 (Mongmin simseo), the masterwork of the Joseon Dynasty scholar Jeong Yak-yong, has long been considered one of Korea’s greatest classic texts. Indeed, in a public opinion poll it was ranked as the No. 1 “must-read” book for all Koreans. In a word, this book serves as a guide to local governance that discusses the rules, regulations, and virtues essential to governing the public, as well as the mindset required of those in positions of authority.

In writing this work, Jeong sought to promote the improvement of local government in particular and reform of the political system overall, through an increased focus on public welfare. With the application of logic and truth, Jeong digs deep into the issues and customs of his day, and after identifying the specific source of an ill, he suggests a remedy. His love for the Korean people, his integrity and humility as a scholar, and the detailed and exhaustive nature of his administrative recommendations — the intensity of Jeong’s efforts for self-cultivation is evident on every page.

The single most important virtue for a public official, according to Jeong, is “integrity.” He writes: “Integrity is the duty of the governor, the source of good, and the backbone of virtue; without integrity, one cannot govern properly. A leader who covets wealth will soon affect those under him, and soon everyone will work solely toward accumulating wealth. This is nothing more than sucking the very lifeblood of the people, which renders them no different from common thieves.”

It is said that Ho Chi Minh, the Vietnamese leader who was widely admired for his forthrightness, kept a copy of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 at his bedside.

With the publication of the first English translation late last year,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 can now be read worldwide by English readers. Translator Choi Byeong-hyeon, professor of 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at Honam University, has long felt that the book was “a true classic, on the same level as Plato’s ‘Republic.’” Choi is pleased with the publication: “Now that Jeong’s work has been published in English, it can take its rightful place as a world-class text.”

Because the original text spanned 12 full volumes, it was necessary for Choi to abridge the enormous work into a single book. That said, the book still amounts to some 66,000 words on 1,174 pages. The overall project took a full decade, with seven years spent on translation and another three on editing, refinement, and publication.

Professor Choi’s English translation of Yu Seong-ryong’s “The Book of Corrections” (Jingbirok), which was published by Berkeley in 2003, has been used as a textbook for Asian studies and Korean studies courses at Michigan University, Ball State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Among other projects, Professor Choi is currently compiling a “Glossary for the English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Korea’s Natural Wonders Earn Michelin Star Ratings
‘Korea Green Guide’ Published by Michelin, 450 pages, 25 euros

If the “Lonely Planet” series is regarded as the universal go-to travel guide, the “Michelin Guide” can be thought of as the Bible for gourmands and foodies. The globally acknowledged Michelin Guides include a Red Guide for information on fine dining, and a Green Guide for a general range of information on everything from culture and society to history, local attractions, and restaurants.

This spring, a Korea edition of the Michelin Green Guide was published in France, marking the first time for the Michelin series to feature Korea. In May, at a Korea Tourism Organization book launch, Bernard Delmas, the head of Michelin’s East Asia division, explained: “Michelin operates on the principle that if we provide interesting and valuable information, our readers will have a good experience.”

The Michelin Green Guide awarded its highest rating of three stars (★★★) to 23 destinations across Korea. The cited attractions include Seoul’s Gyeongbok Palace, Changdeok Palace, and Bukchon Hanok Village; North Gyeongsang Province’s Bulguk Temple, Seokguram, Hahoe Village, and Yangdong Village; South Gyeongsang Province’s Haein Temple; and Jeju Island’s Seongsan Sunrise Peak. South Jeolla Province’s Seonam Temple, Songgwang Temple, and Suncheon Bay also received three stars.

There are also surprise destinations that earned a three-star rating, such as South Jeolla Province’s Maisan Independence Park and Gochang Dolmen Museum. The reason for these high ratings, according to Delmas, was: “Foreigners who travel to Korea are especially interested in things that are uniquely Korean.”

Michelin has awarded star ratings to 110 destinations throughout Korea, including a large number of traditional markets. For example, the Busan Jagalchi Market was given two stars, and the Daegu Chinese Medicine Market and Seomun Market each received a one-star rating. And while they may not have been awarded any stars, Seoul’s Gwangjang Market, various herbal medicine and used car markets, miscellaneous flea markets, and a wide array of other markets are also listed as places worth a visit. Westerners enjoy outings that combine a leisurely walk with a more laid-back pace of sightseeing. So this might be why certain popular tourist destinations, like Itaewon or Myeong-dong in Seoul, did not make the cut.

The fact that jjimjilbang, or Korean dry sauna, has been mentioned as a worthwhile and uniquely Korean experience may also come as a surprise. The guide explains that these places “epitomize the Korean culture of sharing.” The Michelin Guide also objectively presents diverse information about Korea, including facts about the country’s economy, drinking culture, and consumption of dog meat.

Michelin plans to release an English edition of this guide in November 2011, in addition to the publication of a companion Red Guide on Korea.

Music Beyond Music: Cutting-edge Recording Technology Meets Tradition
‘Echoes of the Great Pines’ (CD) 31st Productions, 15,000 won

“A few years ago I had the opportunity to attend an early morning service at Songgwang Temple. At the time I thought the temple music made Beethoven’s Fifth Symphony pale in comparison. When the CD came out, I bought it immediately, and I was not disappointed.” These are the words of a Korean doctor. “Sounds fantastic!” was the reaction of John Newton, a world-class recording engineer, CEO of Sound Mirror, and winner of numerous Grammy awards.

Along with being more than a thousand years old, Songgwang Temple is one of Korea’s three greatest Buddhist temples — and now, for the first time ever in Korea, DSD 5.0 channel surround-sound technology has been utilized to record the music of the temple’s dawn services.

It is well known that the dawn service is the most reverential and grand in scope and scale among the various rites and services that make up temple life. And Songgwang Temple’s morning service is particularly renowned for its unique sounds. Above all else, the temple’s service can be described as “musical.”

“Echoes of the Great Pines” is a significant achievement on several fronts. There are, of course, a number of existing albums of Buddhist services available for purchase. The services of Songgwang Temple as well, widely known for their exceptional beautiful musicality, have already been recorded and made available on two occasions. Yet this new release is still drawing a great deal of attention. More than anything, this particular release is set apart by the noticeable advancement of its technical sound quality. Usually, recordings for a CD format employ PCM (pulse code modulation) technology; however, “Echoes of the Great Pines” was produced with DSD technology, which is a step above PCM.

Close your eyes as you listen, and it’s almost as if you’ve been transported to the dawn service at the temple. This CD will bring the sound of each chant, each syllable, into your living room, ringing every bit as clear as the original. Lose yourself in these voices that wake all of creation at each daybreak, and, as suggested in the album’s liner notes, you might actually feel closer to nirvana. Listen as you drive, and let it calm your soul, dissipating the frustration of a tedious traffic jam.

The recording and production of this album was overseen by Hwang Byeong-joon, head of Sound Mirror Korea and one of the country’s foremost recording engineers. Indeed, Hwang was part of the team behind “Grechaninov: Passion Week,” which was awarded the Grammy for Best Engineered Classical Album in 2008. Hwang has declared that “Echoes of the Great Pines” will be a contender for yet another engineering Grammy. As such, everything from the title to the liner notes has been rendered in English. The album has been released simultaneously in Korea and th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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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 한국의 초상화(영문판 제목·Great Korean Portraits)--조선미/돌베개
                                                    


 조선시대 사람들은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래야만 대상 인물의 외형과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초상화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조상이나 선현 그 자체로 여겼다. 전란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초상화와 신주를 가장 먼저 챙기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이 있어서다. 조선의 초상화에서는 렘브란트나 반 고흐의 자화상,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상 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내적 정서나 개별적 성정이 표출되지 않는다.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 겸 박물관장이 쓴 이 책(Great Korean Portraits)은 고분벽화로 유명한 고구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초상화의 이같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왕, 사대부, 공신, 여인, 승려 등을 그린 74점의 한국 걸작 초상화를 역사적·회화적 관점에서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서 형식, 표현기법, 대상 인물의 삶까지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한국의 미술사 박사 1호인데다 40년 가까이 초상화를 천착해 와 ‘초상화 연구의 일인자’로 불린다.

 저자는 “중국 초상화가 인물의 지위와 신분을 돋보이게 하고, 일본의 경우 개인의 특징을 잘 잡아내 변형하거나 강조한 것과 달리 조선의 초상화는 묘사의 사실성에서 두 나라의 초상화를 압도한다”고 설명한다.

 배경 없는 화면에 인물 한 사람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것도 조선 초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부와 권력,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시립동자나 시녀 등을 삽입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화와 달리 조선 초상화는 인물의 사회적 신분이나 교양, 기호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나 도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에 대한 과장이나 변형을 통해 개성과 미학을 표현하는 것은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도 흡사하지만 조선시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문판은 코리아 헤럴드 주필을 역임한 언론인 이경희씨가 맛깔스럽게 번역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 우리나무의 세계 1,2--박상진/김영사

                                                                           

                  
나무에도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나무에는 사람들의 애환도 담겼다. 수백 년, 운이 좋으면 천년도 넘게 사는 나무는 스스로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단순히 한국의 나무에 관한 생태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탁월한 인문서가 되는 것도 바로 감흥 깊은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임학자로 출발했던 지은이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나무 문화재 연구의 한국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섰기에 이같은 역작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1000종이 넘는 한국나무 가운데 242종을 골라 ‘꽃이 아름다운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약으로 쓰이는 나무’ ‘정원수로 가꾸는 나무’ ‘가로수로 심는 나무’ 등 쓰임새별로 나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은이가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4대 역사서를 비롯해 고전소설, 선비들의 문집, 시가집, 근ㆍ현대 문학작품 등 나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찾아내 꼼꼼히 정리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란 기생과 매화로 맺어진 사랑 이야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퇴계에게 반해 전전긍긍하던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희면서도 푸른빛이 도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매화에 감복한 퇴계는 결국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후 퇴계는 그녀가 선물한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 퇴계의 마지막 유언도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것이었다. 한국 1000원권 지폐에도 퇴계의 얼굴과 함께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의 저명한 화가 김홍도, 신윤복, 정선의 작품 소재가 된 나무,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김소월, 유치환 시의 주인공이 된 나무 이야기도 나온다. 700여장의 나무 사진과 50여장의 옛 그림 같은 시각 자료도 풍성하다. 지은이의 앞선 저작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 <궁궐의 우리나무> <우리문화재 나무 답사기> 등을 함께 읽으면 한층 유익할 것 같다.

■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현대문학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었던 박완서는 몇 가지 별명을 지녔다. ‘영원한 현역’이라는 별명은 80세를 일기로 지난 1월22일 타계할 때까지 쉴 새 없이 열정적으로 작품을 써온 그에게 근사하게 어울린다. 1970년 불혹의 나이(40세)로 늦깎이 등단을 한 그는 40년간 끊임없이 치유와 위로의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문단의 어머니’이란 별칭도 나이를 잊은 창작열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란 별명은 인간의 속내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데 능했고, 이를 명쾌하고 거침없는 서사로 표현하는 데 일가견을 가진 그였기 붙여진 듯하다.

 지금은 북한 땅으로 변한 개성 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비극의 역사를 실향의 한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체험으로 내면화해 사랑과 화해, 용서의 서사로 승화시켰다.

 지난해 여름 마지막으로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도 작가 자신의 잊을 수 없는 비극적 체험을 빼놓지 않고 담았다. 그는 “6·25전쟁의 경험이 없었으면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전쟁 경험을 줄기차게 우려먹었고, 앞으로도 할 말이 얼마든지 더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곤 한다.”고 고백한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학문의 길로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회고담에서 이 책의 제목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을 이 책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이 책은 한겨레신문이 뽑은 2010년 올해의 책(국내 부문) 10권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는 등단작인 <나목>에서 시작해 <휘청거리는 오후> <아주 오래된 농담>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등의 소설집과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호미> 등 주옥같은 산문집을 남겼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 영문판 2011년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Kim Hak-soon Journalist

Ancient Portraits Provide Glimpses of Korea’s History and Culture
‘Great Korean Portraits’ Cho Sun-mie, Dolbegae Publishers, 352 pages, 50,000 won ($45)

Artists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painted portraits with the belief that the incorrect depiction of even a single strand of hair would end up making the subject a different person. They adhered to such rigorous attention to detail so that they might capture not only the outward appearance but also the inner spirit of the subject.

Koreans in those days regarded portraits of their ancestors or the sages as their physical manifestations deserving veneration rather than mere artworks. As such, in times of war or natural catastrophe, they would save their family portraits and ancestral tablets before anything else. Joseon portrait paintings, however, did not attempt to reveal the subject’s psychological state or individual temperament as in the self-portraits of Rembrandt and Van Gogh, or the portrait of Tokugawa Ieyasu, the 17th-century Japanese shogun.

Written by Cho Sun-mie, professor of art at Sungkyunkwan University, “Great Korean Portraits” explores these characteristics of Korean portraits, focusing on the period between the Goguryeo Kingdom (37 B.C.-A.D. 668), when portraits were produced in abundance in tomb murals, and the Joseon Dynasty. Subtitled “Immortal Images of the Noble and the Brave,” this English edition, an edited version of “Korean Portrait Painting: An Art of Forms and Images” (2009), is designed for general readers as well as Korean Studies researchers.

The original Korean edition presents portraits of 74 historical figures, including kings, the literati, meritorious retainers, women, and monks. It discusses style, expressive techniques, and even the lives of the subjects, and offers comparisons to Chinese and Japanese portraits from various perspectives. This English edition features the portraits of 50 individuals of historical and artistic importance selected from the original book. The content has been edited to give readers a glimpse of Korean history and culture through the portraits and related stories.

The first art historian to earn a Ph.D. in Korea, the author has studied portraits for nearly 40 years and is recognized as a pioneer in the field. “While Chinese portraits emphasized the subject’s social position or status and Japanese portraits tended to stress or distort the subject’s personal traits, Joseon portraits surpassed their contemporary counterparts in terms of realistic representation,” she said.

According to the author, the empty background is also a distinctive feature of Joseon portraits. Unlike the Chinese and Japanese practice of adding servant boys or maids in the background of a portrait to reveal the subject’s wealth, power, and dignity, Joseon painters used no such device to reflect the person’s social status, refinement, or tastes. In addition, the aesthetic distortions and alterations that Chinese, Japanese and even European portrait painters utilized to express individuality are not found in Korean portraits of the Joseon period.

“Great Korean Portraits” has been edited and translated into English by Lee Kyong-hee, former editor-in-chief of The Korea Herald. Thanks to her meticulous editing and practical translation, general readers as well as professionals will be able to readily enjoy this book.

A Scientist’s Cultural Account of Trees: ‘There Is a Story Hidden in Every Tree’
‘The World of Korean Trees’ (Vol. 1, 2) Park Sang-jin, Gimmyoung Publishers, 608 pages (Vol. 1), 572 pages (Vol. 2), 30,000 won

Trees bear witness to a country’s history and culture. Trees share people’s joys and sorrows. Trees, which live for hundreds or even thousands of years, have sometimes played a leading role in folktales. What makes this book an excellent work of the humanities rather than simply an ecological treatise is the inspiring storytelling that forms its framework. This colossal book on trees as cultural resources has been written by one of the foremost authorities in the field: Park Sang-jin, a dendrologist and professor emeritus of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he author has selected 242 trees, out of the more than 1,000 native Korean species, and classified them into such categories as trees with beautiful flowers, fruit-bearing trees, trees with medicinal efficacy, garden trees, and roadside trees. The interesting accounts that he tells about these trees are the result of his painstaking research, which included analyses of information related to trees from various sources encompassing the four major works of historical literature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History of Goryeo,” and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 as well as classical novels, literary anthologies, poetry collections, and works of modern and contemporary literature.

A love story about the prominent Confucian scholar Yi Hwang (1501-1570) and a professional entertainer named Duhyang is centered around a plum tree. Yi’s love for plum blossoms was so extraordinary that he wrote 91 poems on the subject, which he compiled into an anthology. According to the story, Duhyang fell in love with Yi when he was the magistrate of Danyang and presented him with a rare plum tree with bluish-white flowers. Yi was so deeply moved by the beautiful tree that this opened his heart to Duhyang. Later, the tree was transplanted at Dosan Academy, a Confucian school dedicated to Yi, and it is even mentioned in his last words: “Go and water the plum tree.” Today, the Korean 1,000-won note depicts images of Yi Hwang and the plum tree at Dosan Academy.

This book also introduces the trees that have inspired renowned Joseon artists, such as Kim Hong-do, Shin Yun-bok and Jeong Seon, and other trees that appear in the 20th-century poetry of Kim Sowol and Yu Chi-hwan. The book is rich in visual content, including some 700 photographs and almost 50 old paintings of trees. Those interested in further reading on the subject would find the author’s previous books useful: “The Secret of the Woodblocks of the Tripitaka Koreana,” “Trees Carved with History: Trees Speak of Thousand Years of Life,” and “Trees in Korean Palaces: My Exploration of Trees as Cultural Heritage.”

The Last Collection of Essays Bequeathed by ‘The Storyteller of Our Time’
‘The Road Not Taken is More Beautiful’ Park Wan-suh, Hyundae Munhak (Modern Literature), 268 pages, 12,000 won

Park Wan-suh, a masterful contemporary Korean writer, is known by several nicknames. One is “active-duty writer,” apt for a novelist who never lost her passion for writing until her death at the age of 80, in January 2011. Park was 40 years old when she made her belated literary debut in 1970. Over the next 40 years she produced numerous works that have provided healing and consolation for both herself and her readers. Park was “the mother of the literary scene,” who provided an example to younger writers with her unwavering dedication to her work. She also had keen insight into the human condition and described people in a clear and unreserved style for which she was known as “the storyteller of our time.”

Born in the vicinity of Gaeseong (Kaesong, North Korea), Park lived through the tragic war that underlies the modern history of Korea. Her personal experiences of the war and her sorrow over the loss of her hometown and deaths of her family members found expression as stories of love, reconciliation, and forgiveness.

A collection of essays published in the summer of 2010, “The Road Not Taken is More Beautiful” is Park’s final work, in which she once again describes her unforgettable experiences of the tragic war. She confesses: “I have consistently written about the Korean War — to the extent that I sometimes think I wouldn’t have become a novelist had I not lived through the war. But I feel I still have more to say about it.” Her remark that she might probably have taken the path of an academic had the war never occurred enables us to guess what she means by the book’s title, especially in relation to Robert Frost’s classic poem: “The Road Not Taken.” In this book, she expresses her last hope to readers: “I hope never to lose my resilience of mind until the day God decides to take me out of this world, because I still wish to write more good works and to be loved and needed in this life.”

Park’s last book generated such a positive response that it was listed as one of the 10 greatest books of 2010 by The Hankyoreh newspaper. Starting with her debut novel, “The Naked Tree,” Park produced a wide range of works including novels and short-story collections — “A Faltering Afternoon,” “A Very Old Joke,” “The Loneliness of You,” “Who Ate Up All the Singa?” and “Kindhearted Bok-hee” — and collections of essays — “Applause for the Back Marker,” “Why I Am Infuriated Only by the Small Stuff,” and “A 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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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언제부턴가 중국과 인도는 한 묶음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할 나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2005년 <이코노미스트>에서 중국과 인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친디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한 이래 하나의 흐름이 돼 버렸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세계경제전선에서는 한층 피부로 실감하는 이름이 친디아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두 나라를 합치면 무려 24억 명에 이르는데다 한 세대 안에 세계 교역량의 40%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고 보면 그러고도 남을 법하다. 이제 용과 코끼리로 상징되는 두 나라를 제대로 모르면 지구촌에서 못난이 신세가 되고 만다.

                                                          

 
 자연히 두 나라를 비교분석해 보여주는 책들도 다양하게 출현한다. 타룬 칸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쓴 <24억 기업가들이 온다>(세종서적)는 그런 부류의 책 가운데 하나지만 독특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두 나라의 일반적인 모습과 정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다른 저작들과 달리 직접 취재한 사회·문화적 현장과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흥미로운 경제·산업적 측면을 해부하고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인도계 미국인인 지은이는 다른 서양학자들과 달리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한결 폭넓은 전문성을 보여준다. 칸나 교수는 지난해 한국 대기업이 서울에서 주최한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강연자로 참석하는 등 한국 기업들에게 자문도 해왔다.

 지은이는 두 나라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감흥 깊게 분석하면서 두 나라의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인도 시스템은 잡음이 있되 편견 없는 정보를 생성한다. 중국 시스템은 잡음이 없되 편견 있는 정보를 생성한다. 한 나라의 강점은 다른 한 나라의 약점이다.” “질서, 조화, 계급이 중국이라는 국가의 변함없는 목표가 된 반면, 인도에는 다원주의, 반대, 토론이라는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다. 중국의 치국술은 언제나 질서, 조화, 계급을 지향해왔다. 중국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려는 나라라면 질서, 조화, 계급의 이면은 경직, 검열, 국가 통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속적으로 화교들을 환영함으로써 중국은 자국 경제를 밀어올린 반면, 자국 교민들에 대한 인도의 반대감정 병존은 심지어 역겨움마저 부추기면서 자국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차이점은 이것이다. 지난 세기에 걸쳐 중국은 화교들을 국가라는 구조의 일부, 국가의 현대화와 경제성장을 거들기 위해 활력을 불어넣어야할 자원으로 간주해왔다.(마오쩌둥 시대는 예외이다.)”

 “중국과 달리, 독립 이후 인도는 외부 세계의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외국인 투자를 반기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중국을 세계에 개방하는 동안, 인도는 코카콜라와 IBM을 인도에서 내쫓았다. 중국과 달리 인도는 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그 자신의 실수 또는 중국으로부터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저자는 조국인 인도의 아킬레스건을 사정없이 건드리면서도 은연중에 중국 못지않은 강점을 내세워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 연민의 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인도사람들은 오스카상 시상식의 자리 하나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석 하나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여긴다. 미술품 경매업체 크리스티의 예술품 경매에 참여하는 것을 백악관 국빈만찬에 참석하는 것만큼이나 귀하게 여긴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중국에서 대단히 이례적이다. 중국의 영화 제작자들과 예술가들은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으며, 문화 대사로서보다는 정부 선전의 대변자로서 봉사한다. 인도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은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니다. 실제로 그것이 그들의 정당성의 원천이다.”

 “중국의 경우 바통이 총리로부터 장군에게, 그리고 당 간부에게 전달된다. 팀으로서의 인도는 국제적으로 각광받는 영화감독인 미라 나이리로부터 영적 강자인 디팍 초프라에게, 그리고 학문의 양심인 아마르티아 센,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황제인 아짐 프렘지에게 바통을 전달한다. 오렌지색 법복 차림의 비베카난다나, 왕성한 집필양을 보여주는 초프라에 해당하는 중국 사람은 없다.”

 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중국과 인도 두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선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없을 것이다. 떠오르는 두 나라가 지나친 경쟁의식을 떨쳐버리고 서로 도와 미래의 길을 열어라.
                                                    


<책 속의 한두 줄>

▲어떤 회의론자는 중국과 인도의 관계를 가리켜 바람결에 들리는 휘파람소리에 불과할 뿐, 다가오는 질풍노도를 가리키는 숨길 수 없는 징표는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이런 회의론은 합리적일지 모르지만 전적으로 잘못 짚은 것이다. 낙관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세계 체제에 미친 충격으로서, 중국과 인도의 세계경제 동시진입과 맞먹는 사례는 그다지 최근이 아닌 역사적 기억 속에서조차 극히 드물다. 1800년대 세계 전체 GDP 가운데 중국과 인도가 치지한 몫은 50%나 되었다. 둘째, 개념적 관점에서 볼 때 상부상조의 가능성이 높다.

▲왜 중국은 도시들을 순식간에 건설하는데 인도는 그렇지 못한가? 중국에서였다면 분명 이주 당했을 사람들이 도시 재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쫓겨나지 않은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역사적으로 인도 법률은 그들의 주거지를 원칙의 문제로 보호해왔다. 대법원 판사인 지반 레디는 개발에 대한 법원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람들이 그것을 ‘분배 정의’라고 부르건,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이라고 부르건 관계없이, 최종적인 진실은 모든 개발의 목적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개발을 위한 개발은 있을 수 없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우선순위들이 뒤집히거나 진정한 관점이 실종되어서는 안 된다.” 그 법률은 천명한다. “모든 개발의 목적은 인간이다.” 푸둥이 순식간에 건설되도록 법률에서 허용한 중국과 달리, 인도는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에 우선순위를 둔다. 정말이지, 쿠프 퍼레이드의 부촌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시 정부에 대고 그 판잣집들을 철거해 달라고 촉구해왔다. 종종 그런 청원에 따라 철거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판잣집들은 늘 다시 세워진다. 부자들은 그들의 정치인들을 내세우고 뇌물을 써서 그 동네를 생선 없는 열반으로 강제로 가꿀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부자들이 좀체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마치마르 마을의 주민들은 열심히 투표한다. 그래서 최상의 경제인(homo-economicus)인 정치가들은 빈민층의 재산권을 지켜줌으로써 그들의 투표에 보답한다.

▲“뭄바이는 결코 상하이가 될 수 없다.” 인도에서 ‘상하이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되었다.

▲중국과 인도가 직면한 또 다른 도전은 강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의 양쯔 강과 인도의 나르마다 강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 나라의 시인들과 작가들에 의해 신격화되어왔다...이 어마어마한 강들의 자연적인 힘을 가두기에 충분히 거대한 댐들을 짓는 계획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각국의 그 의사결정 기질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댐 건설논란에 대응했다. 중국은 명령 권위에 의해, 인도는 민주적 반대에 의해 대응했다.

▲불행하게도 중국의 많은 금융 범죄자들은 수사관들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낼 수 있기 전에 증발한다. 2004년 중국 상무부는 지난 24년 동안 부패한 관리 4,000명이 500억 달러를 들고 도망쳤다고 추정했으며, 공안부는 500명의 중요한 ‘경제범죄용의자들’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고 추정했다. 부패는 지방관리들에게 부여된, 견제 받지 않는 자치권에서 유래한다. 은행원들은 지방의 당 간부들에게 예속되어 있다.(실제로 은행원과 정책 입안자는 종종 같은 사람이다.) 이 바람에 돈을 빼돌리겠다고 작정을 하고 덤비는 은행원들을 제지할 믿을만한 방법이 없다.

▲인도 독립 후 불과 몇 년 뒤인 1954년, 네루는 인도가 사회주의 형태의 사회를 창설하기를 원한다고 선언했다. 네루식 사회주의는 인도 민간 부문의 병폐들 가운데 많은 것들의 원인으로 비판받아왔다.

▲하버드 대학교의 중국법 학자 윌리엄 애퍼드는 서구의 인식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중국인들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책을 훔치는 것은 우아한 범죄다”라는 중국 속담을 가리킨다. 중국의 사제 관계에서 베끼기는 스승에 대한 헌사의 한 형태이다. 
                                                       


▲인구의 70%가 평균 인구 약 1500명인 오지 마을에서 자급자족으로 먹고사는 인도에서 그 영향력은 증폭되었다. 인도의 촌락지역은 독립 이래 계속된 정책당국자들의 전반적인 무관심 때문에 제대로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 촌락 가구들 가운데 89%는 전화가 없으며, 52%는 전기가 없다. 인도의 평균적인 절전 시간은 하루 3시간, 장마기간 중에는 17시간이다. 농촌 인구 가운데 20%는 안전한 음용수에 부분적으로만 접근하거나 아예 접근하지 못한다. 평균적인 마을은 포장도로로부터 1마일 이상 떨어져 있다. 마을 한복판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주민들은 그런 도로에 아예 접근하지도 못한다.

▲“세계 최대 과일 생산국에서 과일 주스 제품을 고작 두세 가지 밖에 구할 수 없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겁니다. 과일은 도로변에서 썩고 있어요. 그런데 그 바로 곁에는 배고픈 어린아이들이 있지요.” 방갈로르의 경우 전체 신선 토마토 재고의 25%가 농장과 산매업자 사이의 어디에선가 썩어 없어진다.

“중국의 잔은 넘치고, 인도는 흘러내린 것을 줍는다.” <이코노미스트>의 2005년 3월호에 실린 이 상당히 전형적인 제목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치하려는 중국과 인도의 노력에 관한 대중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중국의 FDI 550억 달러는 인도의 50억 달러를 수월하게 압도한다.

다국적 기업의 수는 중국에 더 많지만 뿌리 깊은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에 더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교민-국가 관계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어왔다. 중국은 일관되게 화교들을 특별대우해왔다. 이렇게 해서 하이구이, 즉 바다거북들의 지갑(우스개 삼아 이렇게 불리는데 그것은 중국어에서 ‘돌아오다’와 ‘거북’의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이 줄지어 중국으로 오게 되었으며 그 지갑들은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장 이야기와 관련해 중국에 도움을 주었다.

▲1997년 캐나다의 <맥린즈>지는 이처럼 독특한 현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세계의 5700만 화교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강력한 경제를 지배한다.”

▲중국의 화교관리술--1949년 중국인 해외거주자는 1억700만 명이었다. 1978년부터 화교와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중국의 모든 성, 자치구, 지방자치단체에 교무판공실이 설치되었다. 1978~1990년에 중국은 모든 화교들에 대한 차별 없는 공평한 대우를 위해 특색에 따른 배려를 추구하는 50건의 법률과 규정들을 통과시켰다. 거의 모든 공식 성명에서 중국 공산당은 화교를 중국의 일부로 지칭한다.

▲인도의 교민관리술--1970년대가 되자 인도인 이민자들의 면면은 달라졌다. 전문직 엘리트들이 대거 고국을 떠나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떠났다. 인도 언론은 이런 현상을 “두뇌유출”이라고 불렀다. 인도의 뛰어난 도시 지역 중등교육과 의학 및 기술학교를 이용해 개인의 직업적 영달을 꾀하면서 고국에는 아무 것도 되돌려주지 않는다는 비난이 이들을 향해 쏟아졌다. 비거주 인도인(NRI)을 가리켜 “결코 돌아오지 않는 인도인” 혹은 “요구되지 않는 인도인”이라고 빈정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 내내 중국이 화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조직을 잇달아 만드느라 바빴던 반면, 인도는 자국의 해외교민들을 차단했다. 속지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인도에 거주하는 인도인들만을 인도에 기여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은 현대에 들어 국가적 자원을 가장 잘못 관리하는 최악의 사례들이다.

▲(중국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환경미화원들이었다. 먼지를 마시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낀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일했다.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전혀 없었다. 이런 모습은 인도와는 참으로 판이했다. 인도에서는 시 정부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환경미화원들을 고용한다. 이들은 일터에 나타나지 않아도 해고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친노동적 법률과 선거정치 때문에 정부의 어떤 보복위협도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설사 시 정부가 거리 청소 용역을 민간 기업자에게 맡기더라도 부패 때문에 그 용역 계약은 직접 그 일을 하지 않는 친구에게 가기 십상이다.

▲마오쩌둥의 유명한 명언인 “여자가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는 지금도 중국 촌락에서 인기 있는 구호이다. 2002년 현재 15세 이상의 중국인들 가운데 91%가 읽고 쓸 수 있었으며, 같은 연령대 여성의 87%, 남성의 95%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 성인의 식자율은 2002년 60%인데 여성은 48%, 남성의 70%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들은 1947년에 두 건의 거대한 과제와 직면했다. 하나는 약 5억 명에 달하는 촌락사람들을 찢어지는 가난에서 구출할 경제계획을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의 다인종 사회를 반영할 정치적 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반대가 없는 마오쩌둥의 경제 정책들과는 달리, 인도는 이런 과제들을 민주주의 하에서 달성해야만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에는 의회 절차의 고수와 개인 자유의 보호가 요구되었다. 신생 국가의 세 거물들은 이런 사안을 놓고 거듭 충돌했다.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 인도 헌법의 기초자인 빔 라오 암베드카리, 그리고 국가의 아버지인 간디가 그들이었다. 경제-산업 정책의 문제를 놓고 간디와 네루는 상반된 견해를 지녔다. 네루는 소련식 중앙계획과 공업화에 대한 강조를 선호했다. “인도는 촌락들에서 산다”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간디는 촌락 및 소규모 산업 개발을 옹호했으며, 인도의 50만 개 촌락들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촌락 수준의 지배를 추진했으며, 인도 민주주의와 개발의 체계로서 그람 스와라지(촌락공화국)를 꿈꾸었다. 암베드카리는 그람 스와라지라는 개념을 신뢰하지 않았다.

▲후커우(戶口·주민증)와 카스트의 오늘--비록 인도의 초근 대통령인 K. R. 나라야난이 달리트, 즉 불가촉천민이라고 할지라도 신분제도는 여전히 인도의 촌락들에서 단지 상징적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생활의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후커우의 중요성은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중국의 근로대중 가운데 교육 받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후커우는 당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경제적 분권화, 중국의 촌락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식 결핍에 의해 시험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위는 대체로 여전히 도전받지 않고 있다.

▲슬프게도 인도는 네루가 천명했던 다음과 같은 목표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가 화장실을 가지게 되는 날, 나는 우리나라가 발전의 정점에 도달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도는 도시지역에서조차 오수체계에 연결된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인구는 28%에 불과하며, 단지 21%만이 정화조나 침출구덩이에 연결된 화장실을 사용한다. 약 7억5천만 명이 아직도 노천에서 똥을 누거나 비위생적인 양동이 변소를 사용한다.

▲인도 영화산업, 발리우드는 인도가 자국의 연성권력을 수출하는 주된 수단이다. 발리우드의 규모는 할리우드의 그것을 능가한다. 2003년 36억 명이 발리우드 영화 1100편을 보았다. 할리우드 영화 600편을 본 관객은 26억 명이다.

▲중국인들에게 ‘인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인 80%가 영화 산업을 지목했다. 1위와 한참 격차를 둔 2위는 불교였다. 소프트웨어는 3위였다.

▲인도의 주된 연성권력 수출품들 가운데 성공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후보는 인도의 지적 전통이다. 지난 200년에 걸쳐 사람들은 19세기 외교관 찰스 엘리엇 경이 “인도 사상의 확산”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들을 목격했다. 가장 현저한 사례들 중 하나는 스와미 비베카난다였다. 오렌지색 법복차림으로 다니는 승려인 그는,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대회 참석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비베카난다는 자신을 ‘작은 인도’라고 특징지었는데 이는 그가 조국의 철학을 전하는 문화적이고 영적인 대사라는 뜻이었다. 그의 영향은 미국에서 그의 가르침을 계속 실천하는 수십 개 선교 단체들에 의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더 현대에 활동하는 문화대사로는 디팍 초프라가 있다. 인도계 이민자 의사인 초프라는 미국에 거주하는 자가치유자이다. 지난 20년에 걸쳐 초프라는 미국 주류 의학계에서 내적 치유를 전파하고 요가의 복음을 퍼뜨리는 사람으로 떠올랐다.

▲카체리는 힌두어로 ‘법원’이라는 뜻이며, ‘법원 카체리’라는 용어는 ‘법원의 괴롭힘’을 의미한다. 법원 카체리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인도 시민들은 심지어 법을 명백히 준수하고 있을 때조차 정식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1997년 12월, (나의) 아버지는 뉴델리의 인근 도시인 파리다바드의 어느 공장 출입문 근처에서 운전기사가 모는 승용차를 타고 도로 나들목을 내려오고 있었다. 짐을 과적한 삼륜차 한 대가 그분이 탄 차 곁에 다가왔다. 오토바이보다는 크고 경차보다는 작은 이 전형적인 삼륜차는 일반상품이나 식품을 과적하며, 승객을 빼곡히 여섯 명까지 태운다. 아버지의 경우 그 삼륜차가 아버지의 차를 추월하려다 그만 넘어진 것이었다. 삼륜차 승객 중 한 사람은 복합골절을 입었다. 그 삼륜차는 결코 아버지 차와 접촉하지 않았다. 다친 승객은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인도 정부는 정부대로 또 다른 소송을 냈다. 전자의 소송은 보험회사에서 그 부상자에게 4만 루피(약 1천 달러)를 지급하는 선에서 두 달 만에 취하되었다. 정부는 소송과 관련하여 이런 추론을 들이댔다. 자동차 소유자인 아버지는 ‘우월한 자동차’에 타고 있었고, 다른 일방의 자동차는 더 ‘취약’했으며, 아버지는 다치지 않았고 다른 일행은 다쳤기 때문에 자동차 소유자는 그 자체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이한 추론은 단지 법조체계를 통과하는 부조리한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스무 차례의 법원 심리가 넉 달에서 여섯 달 간격으로 열렸는데, 심리 때마다 하찮은 일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의 법원 카체리가 약식 무죄로 종결되기까지 8년이 걸렸다. 경찰관, 병원 직원, 자동차 수리공으로부터 아버지의 승용차는 잘못이 없음을 증언한다는 증언이 채취되었다. 문제의 삼륜차에 탔던 승객들 가운데 한 사람의 증언도 채취되었다.

▲누군가가 지역구 국회의원의 사무실에 불쑥 찾아가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또는 “딸이 결혼하는 데 결혼 자금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면 그 국회의원은, 많은 경우 그 아픈 아내 또는 그 결혼하는 딸을 위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다. 이것이 그 봉건적인 사고방식이다. 그 정치인은 이처럼 일을 성사시키는 전능한 사람이 되며, 그러한 후견인제도를 강화한다. 일반적인 인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가 내 당면한 걱정거리를 처리해 줄 능력이 있는 한, 나는 선거가 끝나면 지역구민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그에게 투표해야 한다.”

▲공산당 당원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부패 또한 늘었다. 중국 공산당의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부패한 당 간부들에 대한 형사처분확률은 거의 무시해도 될 수준이라고 말했다. 2006년에 발간된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패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중국 공산당 당원들 가운데 약 82%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게다가 그 보고서에서 다룬 6년 기간 중, 처벌 받은 사람들 가운데 중국 공산당에서 출당된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중국과 인도의 협력 가능성--“협력은 두 개의 탑과 같습니다.(한 탑은 하드웨어이고, 다른 탑은 소프트웨어입니다) 힘을 합치면 우리(중국과 인도)는 세계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그날 IT산업에 아시아의 세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할 겁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인도 방갈로르에서 했던 연설>

▲중국과 인도는 예전에 서로 관대하게 교역하면서 아이디어와 부를 공유했다. 우리 자녀 세대의 중국과 인도는 또다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 희망과 조심스러운 신뢰가 다시금 만연해 있다. 서구의 발흥 이래 처음으로 아시아계 기업인들은 뉴욕과 런던을 거의 전적으로 무시하고도 수십억 달러짜리 기업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의 무게중심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잇는 다리--GE의 중국 사업은 인도 사업 덕분에 더 잘 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조직 차원의 실험과 점진적이며 거듭된 변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GE 의료 서비스에서 중국의 하드웨어는 인도의 소프트웨어와 결합한다. 최고급 방사선 장비인 프로테우스에 들어가는 719가지 부품은 12개국의 GE 시설에서 개발되었다. 소프트웨어 알고리즘과 스캐너의 발전기 개발은 방갈로르에서 수행되었으며, 최종 조립은 베이징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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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어디 사세요?-부동산에 저당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경향신문 특별취재팀 | 사계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 오두막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로 지은 집의 전형이다. 그의 집짓기 명세서를 보면 건축비가 불과 28달러 12.5센트밖에 들지 않았다. 당시 인근 하버드대 1년 기숙사비가 30달러였다니 단박에 알 만하다. 14㎡(약 4.2평)의 오두막에는 나무 침대와 의자, 벽난로, 창가의 책상이 전부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 같은 풍경화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 있었기에 화가 밀레가 탄생했을지 모릅니다”라는 카피가 흐른다. “집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말로 화룡점정한다. 국내의 한 고급 아파트 광고다. 또 다른 고급 아파트의 광고 카피는 한층 노골적인 명품 브랜드 전략을 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집은 이 광고 카피처럼 신분의 척도다. ‘좋은 집이란 육체와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작가 조정래의 집에 대한 지론 따위와는 그리 상관없는 듯하다. 더구나 혼자 1083채를 소유한 부동산 갑부와 2년에 한번씩 이삿짐을 싸야 하는 무주택자에게 집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쓴 <어디 사세요?>는 제목만 봐도 소로의 오두막집과 광고에 나오는 아파트를 비교, 연상하게 된다. 지은이들은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이 마치 대학 배치표에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가늠하듯 사회경제적 지위를 함축하는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고 개탄한다. 집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간판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 이후 한국의 집에 관해 재조명한 책이지만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생생한 현장감 덕분에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나온다. 그러면서도 잘 짜여진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이 책의 토대가 된 연재 기획기사에 대한 촌철살인의 객관적 평가가 한마디로 대변해 준다 “특별하지 않은 소재를 특별한 깊이와 넓이로 다뤘다.” 2010년 5월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제27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 심사평이다.
 책에는 집의 사회학·정치학·경제학이 풍성하게, 그것도 골고루 담겼다. 우선 사회적 측면을 보자. 당대의 주택 자산 격차는 후대까지 연결되어 빈부 격차의 대물림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곧바로 입증해 주고 있다. 주택가격에 따른 빈부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진다는 게 첫 번째 사례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집의 평당 가격이 가장 비싼 강남구의 경우 영어 1~2등급 비율이 27.9%로 가장 높았고 그 반대인 중랑구는 같은 등급이 6.5%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둘째는 치안의 양극화다. 임대주택보다 자가소유 주택에서 범죄발생비율이 낮게 나타난다. 셋째, 건강의 차등화다. 무엇보다 병원이 부유한 동네에 훨씬 많다. 서울의 경우 강남구에 전체의 15%가 분포돼 있을 정도다. 집값의 무게가 출산율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실제 조사 결과도 보여준다.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이 서울과 경기도의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정치권과 학계의 가설도 현장 취재로 확인해 준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집 가진 사람, 다주택자, 아파트 거주자가 많고 투표율도 높게 나타났다. 서울 전체를 봐도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 현상은 뚜렷했다. 이른바 ‘부동산 계급투표’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정치의식이 바뀌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라는 전문가의 분석도 곁들여졌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송파구 잠실 7동과 가장 낮은 강남구 논현 1동의 특이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따라잡기 어려운 집값의 경제학은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다. 세계 2위의 집값 상승률,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임대료에 허덕이는 오늘의 한국인은 2010년 현재 평균적으로 서울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하려면 약 14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소득을 꼬박 모아야 한다. 2010년 8월 현재 서울 강남구에 집을 장만하려면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5.9년어치를 모아야 한다. 유엔 산하기관인 인간정주위원회의 권고치를 서너 배 웃돌고 있다.
 세입자와 주택 보유자를 불문하고 연간 읍·면·동의 경계를 넘어 이사하는 비율인 17.8%라는 숫자는 4.3%인 일본의 네 배에 달한다. 속칭 ‘88만원 세대’는 고시촌 쪽방으로 몰리고, 저소득층 집단인 임대 아파트 주민은 기피대상이 되었다. 재개발지역에서는 원주민들을 세입자로 내쫓고 투기꾼과 건설사 배만 불린 주택 개발정책과 분양제도는 전두환 정권 이래 모든 정권이 그랬다. 광고주인 건설업자 눈치보기로 말미암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언론의 왜곡 보도 실상도 예외 없이 꼬집는다.
 이 책은 단순히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경험적 사례를 통해 한국 실정에 맞는 주택정책을 제안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과 세심한 소통을 거쳐 개발을 추진하는 독일, 거품 붕괴 이후 집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보유에서 임대로’ 크게 바뀐 일본을 실감나게 소개한다.
                                                   

 지은이들은 소유가 아니라 임대주택도 괜찮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우리도 공공 임대주택 비율을 늘려 집값과 임대료의 지나친 상승을 막고 서민 주거를 안정시켜야할 때가 됐다는 걸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촉구한다. 주택 금융도 20년 동안 원리금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외국식 모기지 방식으로 전환돼야 하고 도시개발도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 사회의 큰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들의 소망대로라면 ‘평범한 사람들이 집 문제로 마음고생 덜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될 게 틀림없다. 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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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O 허시먼 | 웅진지식하우스

“복지도 결국 생산과 연결돼야 하는데 과잉복지가 되다보니 일 안하고 술 마시고 알코올 중독이 되곤 한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지난달 하순 일괄적인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반대의사를 피력할 당시 덧붙인 말이다. 북유럽 복지국가 형태는 역동적인 성장과 낮은 실업률 등 그동안의 눈부신 경제적 성공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글로벌 보수진영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기실 이 정도는 약과다. 신자유주의의 정신적 지주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복지국가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프랑스 혁명 직후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 정신이 공안위원회의 독재로, 나중에는 나폴레옹 독재로 바뀌자 ‘자유를 추구하는 시도는 전제정치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역효과론이 거의 강제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의 명저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이 대표적이다.

보통선거권이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진보적 비판자의 한 사람인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조차 다수와 다수의 지배를 혹평했다. “다수는 옳지 않다! 올바른 사람들은 나와 같이 고립된 몇몇 개인들로 존재할 뿐이다! 소수가 언제나 옳다!” <보바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도 보통선거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는 인민과 대중은 언제나 멍청하고 무능하다는 신념 아래 보통선거권을 ‘정치학의 마지막 단어’라는 멋진 수사를 동원해 조롱했다.

세계적인 비주류 경제학자인 앨버트 O 허시먼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원제 The Rhetoric of Reaction)에서 진보적 역사변환 과정마다 이 같은 역효과·무용(無用)·위험이라는 세 가지 반동 명제가 등장하곤 했다고 분석한다.

허시먼이 관찰해낸 세 가지 반동 명제의 수사학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역효과)
“그래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무용)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위험)로 축약된다.
200여년 동안 보수주의의 반동 레토릭은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허시먼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0년대 보수주의자와 신보수주의자들의 정치적 신념이 아닌 담론, 수사법 같은 언어적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변환 국면마다 작동하는 이 같은 ‘반작용 레토릭’의 근원을 밝혀냈다. 모든 작용에는 언제나 그와 반대되는 동등한 반동이 있다는 아이작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을 원용한 것이다. 진보적 정책이나 사상운동을 뒤집거나 비난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논쟁 태도나 전략을 사용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19세기 보통선거권 도입, 20세기 복지국가 수립과정이 주된 분석 대상이다.

역효과 명제는 정치·사회·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자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견해다. ‘문명의 중요한 진보란 거의 예외 없이 그 진보가 일어난 사회를 파괴하는 과정’이라고 한 앨프레드 화이트헤드의 관점과 너무나 흡사하다. 무용 명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그 노력들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논리다. 위험 명제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주장이다.

                                                 


앨버트 O 허시먼은 보수가 지난 200년 동안 ‘그래봐야 너만 힘들어진다’(역효과명제), ‘백날을 해봐라, 아무 일도 안 벌어진다’(무용명제), ‘복지를 얘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위험명제)라는 식으로 혁명과 개혁을 공격했다고 분석해냈다. 사진은 프랑스의 1830년 7월혁명을 주제로 한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변형한 것이다.


지은이는 “역효과론, 무용론, 위험론의 세 카테고리는 단순하지만 완벽하다. 이 틀은 보수가 주장하는 공격의 대부분을 설명해준다. 나 자신도 얼마간 놀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수사학은 자유주의자나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을 공격할 때도 닮은꼴로 등장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탁월한 통찰은 한국 현대사는 물론 오늘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도 전혀 틀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정신이 앞을 향한 진전을 시작한 이후 어떤 이방인의 침입도, 어떤 압제자들의 동맹도, 어떤 편견도 인간을 뒤로 돌아가게 만들 수는 없었다고 결론짓는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 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교훈이다.

저자는 “진보주의자들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회의적이고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대 보수주의자들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인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은 의분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하다”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지은이는 중국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의 바탕이 되기도 한 ‘불균형성장이론’과 ‘터널 효과’라는 분배이론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개발국이 부족한 자원을 유효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도적 발전부문에 집중 투자해 발전 기점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는 그의 불균형성장 모델은 한국 경제개발의 지침으로 활용된 바 있다.

경제학·정치학·역사학·인류학 등 방대한 지식을 버무린 데다 부드럽지 않은 문체여서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이근영 옮김.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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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육종을 창시한 바빌로프의 탐사… 5대륙 거쳐간 길 답사하며 일대기 추적
록펠러의 비리 파헤친 탐사기자 타벨, 거대권력에 홀로 맞선 삶 논픽션 조명

                                                    


▲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게리 폴 나브한 | 아카이브

▲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스티브 와인버그 | 생각비행

 보통사람에겐 낯선 이름인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1887~1943)와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1857~1944)은 공통분모가 별로 없어 보인다. 바빌로프는 러시아의 남성 식량학자이고, 타벨은 미국의 여성 언론인이어서 차이점이 더 많을 정도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치열하게 살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점은 무척 닮았다. 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게리 폴 나브한이 쓴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는 바빌로프가 20세기 초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세계 5대륙을 누비며 식량의 씨앗을 찾아나선, 눈물겨운 일대기다. 그것도 도서관을 뒤져 찾아낸 자료나 관련 인물의 증언만을 바탕으로 구성한 단순 전기가 아니라 바빌로프가 탐사했던 지역을 거의 그대로 답사하면서 생동감 있게 엮은 노작이다. 바빌로프의 전기와 지은이의 여행기를 혼합한 독특한 형식이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왼쪽)·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현대 작물 육종을 창시한 바빌로프는 오늘날 세계 식물유전학자들의 영원한 영웅으로 숭모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스탈린의 정치적 희생양 찾기와 동료 과학자의 질시에 맞서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억울한 죽음으로 마감해야 했다. 지은이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빌로프의 또 다른 영웅적인 모습, 환경과 사회정의를 위해 애쓴 운동가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준다.

바빌로프는 전 세계 작물종자를 수집한 유일한 과학자이자 인류의 새로운 농법을 찾아 115차례의 원정을 감행한 탐험가나 다름없다. 바빌로프의 여정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에서부터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아마존 열대우림에 이르기까지 형언하기 힘들 만큼 험난했다. 바빌로프의 가장 큰 학문적 공헌은 과학 사상 처음으로 발견한 ‘다양성 중심지’ 이론이다. 문화다양성과 작물다양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처음으로 깨달은 과학자이기도 하다. 인류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과업에서 농업생물다양성이 주춧돌에 해당한다고 처음 주장한 이도 바빌로프다. 그는 이런 신념 때문에 목숨까지 잃어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물 육종을 위해 바빌로프가 처음 고안하고 설립한 종자은행이 지구적 대재앙에 대비해 2008년 2월에 이르러 노르웨이 북극 지역에 생긴 사실이다. 여기엔 무려 200만종의 씨앗이 냉동 저장돼 있다. 강경이 옮김. 1만5000원

 


<에티오피아의 한 소녀가 최근 수확한 식량을 보여주고 있다. 바빌로프는 작물의 다양성이 인류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논픽션 작가 스티브 와인버그의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전설적인 공룡 석유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린 여기자 타벨의 치열한 기자정신과 삶을 조명한다. 이 책도 타벨의 전기와 극적 서사를 혼합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돌팔매로 싸우는 다윗 격인 타벨은 미국 재계의 골리앗인 록펠러와 스탠더드 오일의 비리를 파헤치는 폭로기사를 1902년부터 무려 19회에 걸쳐 잡지에 끈질기게 연재한다. 미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록펠러는 폭로기사 이후 ‘악당’으로 추락하고 만다. 뿐만 아니라 한때 미국 전체 정유물량의 95%를 독점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반독점법에 의한 연방대법원의 해산명령에 따라 1911년 해체된다. 그럼에도 훨씬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난다. 록펠러도 타벨의 추적보도 이후 자선사업에 역점을 두는 삶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록펠러가 죽었을 때 그의 사망기사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타벨이 록펠러의 비도덕성을 폭로한 내용이었으며, 타벨이 죽었을 때 부음기사에서 가장 부각된 것도 록펠러였다고 한다.

타벨은 ‘진실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속에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자 전혀 새로운 보도 형태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상찬한다.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란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된 타벨의 폭로기사는 ‘탐사보도’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신윤주·이호은 옮김.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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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주범’들이 주도한 G20 대표성 없고
최대 피해자인 약소국 배제는 후안무치

▲ 스티글리츠 보고서-세계 경제의 대안을 말하다…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 동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열흘 남짓 앞둬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당면한 범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거의 유일한 경제기구로 자처하는 G20의 중재자 역할로 들떠있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 유엔총회 전문가위원회 의장을 비롯한 세계적인 석학그룹은 G20이 세계경제의 대표 자격이 없을뿐더러 중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G20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5%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대표성이나 정치적으로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경제를 망친 주범인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주도하는 G20이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가장 큰 피해자가 된 약소국과 개발도상국을 배제한 것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후안무치하다고 이들은 따끔한 매를 들이댄다. 이 때문에 세계적 차원에서 요구되는 제도적 장치의 개혁이 G7, G8, G10, G20 등 무엇이든 임의로 뽑은 그룹에 의해 결정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번 위기 대응 기구는 지구상의 192개국(G192) 모두의 대표를 아울러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세계 모든 나라를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으면서 정당성을 갖춘 국제기구는 뭘까. 석학그룹은 유엔밖에 없다고 본다. 유엔은 가난한 나라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고, 형평성과 정의에 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G20을 유엔으로 흡수하자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위기가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직면한 여러 거대한 위기 가운데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가 불거지자 제63차 유엔총회 의장인 미겔 데스코토 브로크만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20여명의 세계 석학들로 유엔총회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해 말 현실적이고 공감을 얻을 만한 대안을 담은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들은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정신이며 현실이 되었다는 전제 아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더욱 민주적이며, 더 공정하고,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모색했다. 그 결과물로 금융·통화·국제기구·세계체제·거시경제와 미시경제의 문제 등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기후·에너지·식량 문제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경제의 수많은 오류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지난 25년간 유행했던 신자유주의와 시장근본주의라 불리는 잘못된 이념, 이론적 전제, 정책적 실패, 제도적 장치의 결함, 규제 실패 등 체제의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실패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여긴다. 이에 따라 진정한 위기의 극복은 단순히 금융이나 경제지표의 호전이 아닌 체제 전체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세계 경제가 해결해야 할 주제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 글로벌 위기, 세계적 비대칭성의 존재, 혁신 문제 등 8가지를 들었다. 아울러 세계 경제개혁의 기본 원칙도 내놓았다. 시장과 정부 사이의 균형 회복, 장기적 전망에 조응하는 단기 행동, 분배적 여파에 대한 평가, 세계 불균형과 비대칭성의 심화 회피,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경계가 그것이다.

대안체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글로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구현할 수 있는 세계 정치경제 체제이다.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라면 이에 걸맞은 민주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강력한 권능을 지닌 세계경제협력이사회의 창설을 제안한다. 이들도 전문가위원회와 G20의 활동이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점과 G20 등 소수 그룹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는다. G20도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비판을 의식한 때문인지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개도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언급하기 시작하긴 했다.

본문에 수십 번 등장하는 ‘거시경제’라는 용어가 거의 시종일관 ‘겨시경제’라는 오자로 나오는데도 교열과정에서 바로잡히지 않은 게 약간 눈에 거슬린다. 박형준 옮김.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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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5 21:26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민음사

ㆍ부의 집중과 적자생존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에 종언을 고하고
ㆍ오픈 소스와 협력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 선언
ㆍ인류사 전반을 섭렵하며 거시적 해법 제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여론조사 과정에서 색다른 질문 하나가 추가됐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통령 후보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전통적인 선택지를 놔두고 '공감(empathy)'이라고 대답했다. 놀라운 것은 '공감'을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한 여론에 별다른 반응을 보인 정치학자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공감'이란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적으로 가치관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는 현상인데도 말이다.
'공감'을 자신의 정치철학 핵심으로 삼은 것은 바로 버락 오바마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대외 정책에서부터 대법관 선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공감'이란 말을 앞세운다. 그가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강조한 한마디는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 "나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지난해 4월 '뉴욕 타임스'는 미국 교실에서 일어나는 공감혁명을 1면 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는 공감을 주제로 하는 워크숍과 교과 과정이 실시되고 있는 18개 주의 실태를 전하면서 이런 선구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초기 평가가 매우 고무적이라고 소개했다. 공감 개발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교육자들은 공감 능력을 개발할 때 학업성취도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처럼 '공감'은 정치적 집회나 전문 단체,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될 정도로 친숙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신작 <공감의 시대>(원제 The Empathic Civilization)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공감' 개념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유러피언 드림> <소유의 종말>의 저자인 리프킨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문명이 끝나고 협력과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그로 인한 세계 경제·사회·환경의 변화를 점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온 제러미 리프킨은 세계가 공감과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 AFP연합뉴스


 여성, 동성연애자, 장애인, 흑인 등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고, 타 민족, 타 인종에 대해서도 서로 인정하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는 것은 공감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방증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지은이는 이제 인간적 공감이 인류를 넘어 다른 생물에게까지 확장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애완동물을 동료로 여기는 것은 물론 다른 생물을 벗 삼고 자연에 대해 깊은 친화력을 갖게 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미국 가정의 69%가 개나 고양이를 사람들이 자는 침대에서 재운다는 최근 조사결과만 봐도 그렇다.
 세계경제체제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더불어 분산 자본주의가 인도하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석유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부의 집중과 적자생존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하고, 오픈 소스와 협력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표적인 실례로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인 리눅스와 무료 오픈소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들었다.
고대 신화시대의 구두문화, 농경사회의 문자문화에 이어 인쇄기술이 초래한 1차 산업혁명, 전기통신기술이 촉발한 2차 산업혁명, 21세기 분산 네트워크 혁명과 에너지 제도 혁신이 이끄는 분산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식변화와 경제·사회·정치에 3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파급효과를 예언하고 있다.
공감 의식이 갑자기 확대되는 현상은 지구 곳곳을 황무지로 만들고 많은 인류를 더욱 가난에 빠뜨린 엔트로피 흐름의 증가를 등에 업고 나타난 결과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엔트로피 총량은 계속 증가한다'는 열역학 법칙에 따라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손실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저자는 최근 생물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문명의 명멸 원인을 공감의 물결과 엔트로피의 상호관계에서 찾는다. '공감 뉴런'이라는 별칭이 뒤따르는 '거울신경세포' 이론이 그것이다.
저자는 공감의 확장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며, 범위를 넓혀가는 공감의 연대감은 수많은 사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어준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전 세계적 경제 위기도 20세기의 지정학적 권력투쟁에서 21세기에는 '생물권 정치'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분산에너지 경제체제가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식지가 생태계 안에서 기능하듯, 통치 제도도 다른 통치 제도나 전체 통치 제도로 통합되는 관계의 협력적 네트워크 안에서 생물권과 마찬가지로 상호의존적이고 호혜적으로 작동한다는 게 생물권 정치론이다.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공감 본능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모처럼의 분위기도 흐지부지되어 버릴 공산이 크고, 심지어 조롱이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도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그의 견해가 희망사항이 혼재돼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읽었던 <유러피언 드림>을 넘어서지만 속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유러피언 드림>에서부터 '공감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시사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저작들 가운데 <바이오테크 시대>가 생명과학, <노동의 종말>이 첨단기술의 일자리 박탈 문제, <소유의 종말>이 접속권(Access) 개념, <수소 혁명>이 석유시대의 종말 등 단일 카테고리를 다룬 역작이었다면 <공감의 시대>는 인류사 전반을 섭렵하며 거시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84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경남 옮김. 3만3000원 김학순 대기자 h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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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10-01 21:51:35수정 : 2010-10-01 21:51:36

 

ㆍ40년 경력의 독일 암행기자 흑인·노숙자 삶의 고통 고발

ㆍ스타벅스 ·변호사의 이중성등 ‘멋진 신세계’ 허울도 벗겨내

▲ 언더커버 리포트…귄터 발라프 | 프로네시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독일 뵐리츠 정원의 유람선에서 고교 물리선생처럼 생긴 노신사가 한 흑인 관광객에게 다가갔다. “맥주 두 잔 주세요.” 흑인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맥주 두 잔 달라니까요”라며 채근했다. 그래도 흑인이 꿈쩍 않자 “서비스 안 해요? 노 서비스?”하며 재차 다그쳤다. 흑인은 웨이터 차림도 아니었고 맥주병 같은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흑인은 서 있는 것도 아니었고, 노신사와 똑같이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40여년 경력의 저명한 독일 암행기자 귄터 발라프가 흑인으로 위장 체험을 하면서 겪은 황당한 일이다. 노신사조차 흑인이라면 으레 웨이터일 것이라고 여긴 때문이다.

변장한 발라프가 한 귀금속 가게에 들러 스톱워치 손목시계가 있는지 물어봤다. 젊은 여점원은 처음엔 그런 시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가 진열장에서 그 시계를 발견하고 점원에게 손짓하자 마지못해 보여줬다. 하지만 발라프가 시계를 들여다보려 하자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잠시 후 같은 취재팀의 백인 동료가 들어가 같은 시계를 보여 달라고 할 때 여점원은 “조금 전엔 식은땀이 났다”고 털어놨다.

독일의 암행 전문기자 귄터 발라프가 사업가로 변장한 모습. | 프로네시스 제공


발라프는 이처럼 흑인으로 변장한 채 집 구하기, 등산모임 참가, 캠핑장 예약하기, 주말농장 축제 참여, 축구경기 관람, 술집 출입 등을 하며 1년 동안 독일 사회의 인종차별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그의 흑인체험은 백인인 존 하워드 그리핀이 1959년 흑인으로 분장하고 한 달 동안 미국을 떠돌면서 체험한 뒤 쓴 <블랙 라이크 미>(살림)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의 위장 취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엔 노숙인으로 살아보기다. 그것도 며칠이나 몇 주 정도가 아니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을 오롯이 나는 극한경험이다.

가장 강하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은 30년 전에 헤어졌다가 공원 노숙장에서 극적으로 재회한 부자(父子)를 만난 것이다. 34세의 미샤는 네 살 때 가족이 흩어지는 바람에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는 정육점에서 힘든 노동을 하다 허리 디스크에 걸리게 됐다. 결국 그 때문에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나앉았다. 미샤는 3년 전 한 공원에 자리를 잡기 위해 미리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과 몇 시간 동안 대화를 하다 서로 알아보게 돼 울면서 부둥켜안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소박한 검은색 커플반지를 끼고 여전히 함께 노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귄터 발라프가 흑인, 노숙인, 빵공장 노동자로 변장한 모습(왼쪽부터). | 프로네시스 제공


전화 사기(보이스피싱)에 가까운 콜센터 마케팅도 슬픈 체험이다. 넓은 사무실에는 ‘일하면서 배운다’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아무도 ‘사기를 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귀를 쫑긋 세우세요. 성공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라고요. 성공하는 사람이 옳은 거예요.” 발라프는 독일에만 6000개가 넘는 콜센터를 ‘새로운 시대의 광산’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률이 다른 분야에 비해 두 배나 높다. 대부분 신경쇠약이나 정신의학적 질병, 약물남용, 과로 등의 증상을 겪기 때문이다. 뻔뻔함, 속임수 등 점점 철면피가 되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두 달 이상 버텨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가도 실적 경쟁과 고객 협박이 난무하는 콜센터에 사실상 공범자로 참여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각 지역에 있는 고용지원센터에서는 많은 실업자들을 콜센터로 안내하고 있다. 관청에서는 재원 지원까지 한다.

그는 대형 슈퍼마켓의 납품업체들이 납품단가 때문에 압박을 받고,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극도로 착취당하는 현장도 잠입 취재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냈다. 발라프의 다양한 각종 체험기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을 움직였다.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시설과 업무여건 개선, 법률 개정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처럼 발라프가 선진복지국가인 독일에서 흑인, 노숙인, 하청 노동자, 이주민 등 소외계층이 받고 있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내부고발자의 생생한 제보를 바탕으로 엮은 ‘고객과 직원의 행복한 일터 스타벅스의 모순’ ‘거꾸로 달리는 독일 철도 민영화’ ‘노조 없는 세상 만들기에 앞장선 무서운 변호사들’도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발라프는 선진복지사회의 어두운 내막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 비유한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으로는 골병이 들고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이 소설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발라프는 40여년 전 이 일을 시작할 때 더욱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세상으로 진보하는 걸 기대했지만 그에 대한 회의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목숨을 건 잠행 취재정신은 보통사람은 물론 모든 언론인의 귀감이다. 독일 사회를 고발한 책이지만 한국에 그대로 대입해도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황현숙 옮김.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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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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