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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佛원로작가의 직관·유머 흐르는 산문 입력 : 2008-04-25 17:21:25ㅣ수정 : 2008-04-25 17:21:31 소설 이외에 잡문을 일절 쓰지 않았음은 물론 후학들에게도 늘 그걸 당부하곤 했던 황순원의 눈으로 보면 아들 동규는 불효자나 다름없다. 시인 황동규는 시보다 산문이 더 쓰기 좋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황동규는 실제로 아버지와 다른 문학을 하고 싶어 산문을 쓴다고 했다. 황순원의 시각으로는 ‘루쉰의 잡문은 문학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긍정한 중국 원로학자 우엔량쥔도 도무지 마뜩치 않을 게 틀림없다. 쉽고도 재미있는 산문은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시인 황인숙은 쓰고 싶지 않은 잡문을 생계 때문에 쓰는 시인의 비애를 산문 아닌 짧은 시로 읊었다. “마감 닥친 쪽글.. 더보기
사회의 순결 짓밟는 ‘뇌물’ 입력 : 2008-04-18 17:25:11ㅣ수정 : 2008-04-18 17:25:16 ‘20년간 80억냥 뇌물 갈취, 집 2000여채, 논밭 1억6000만평, 개인 금고 10곳, 전당포 10곳.’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의 권신이자 뇌물수수의 지존이라 할 만한 ‘화신(和)’이 평생 동안 뇌물로 일군 재산 명세서다. ‘화신’의 수뢰 총액은 청나라 전체의 10년 세금을 능가하는 거액이다. 화신은 가히 ‘탐관오리의 화신’이다. 화신이 죽고 나자 가경제(嘉慶帝)가 배불리 먹고 살았다는 희화적인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인민일보(人民日報)가 2006년 1월 발표한 지난 1000년 동안의 중국 부자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게 화신이다. 특유의 관시(關係)문화를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지금도 뇌물이 경제의 발.. 더보기
기부, 희생 아닌 ‘창의적 이기주의’ 입력 : 2008-04-11 17:41:57ㅣ수정 : 2008-04-11 17:42:48 과부의 두 렙돈과 빈자일등(貧者一燈). 지난 주말 신분을 밝히길 거부한 60대 할머니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연세대에 찾아와 1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상의 편린이다. 예수가 부자들의 많은 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마가복음의 ‘말씀’과 부자의 만 등보다 가난한 사람의 한 등이 낫다는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의 ‘법언’은 맥을 같이 한다. 두 일화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해석도 있긴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작은 정성이 한결 값지다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60대 할머니가 기부한 돈은 ‘과부의 두 렙돈’이나 ‘빈자일등’에 비유할 .. 더보기
일관된 평화를 갈구하다 입력 : 2008-04-04 17:12:14ㅣ수정 : 2008-04-04 17:13:31 평화는 무조건 다 좋은 것인가? 이 물음이 한없이 절절할 때가 있다. 힘 센 ‘갑’은 총칼을 휘둘러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약한 ‘을’은 언제나 말로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 경우엔 심리적 유혹이 다가오곤 한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나 미국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이는 죽는 순간까지 유혹을 뿌리쳤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하긴 고대 로마의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정의로운 전쟁보다 나쁜 평화를 더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키케로의 명언은 오늘날 평화주의자들이 가장 즐기는 말의 하나가 됐다. 노르웨이의 평화학 창시자 요한 갈퉁도 평화를 위해 무력과 전.. 더보기
‘소명있는 직업정치인’ 보고싶다 입력 : 2008-03-28 17:05:38ㅣ수정 : 2008-03-28 17:06:4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에게도 어렵기 그지없는 물리학보다 더 어려운 게 있었나 보다.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정치는 아인슈타인에게 적성이 맞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가 실토했듯이 아무나 쉬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 통일의 첫 위업을 달성한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정치는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웬만한 각오가 없으면 멀찍이 떨어져 있는 편이 낫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대표적인 ‘비정규직’이라고 애교서린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겪어본 이들은 국회의원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한결같이 고백하는 걸 보면 마약성분이 들.. 더보기
빼앗긴 티베트에 봄은 오는가 입력 : 2008-03-21 17:33:26ㅣ수정 : 2008-03-21 17:34:17 Keyword Link | x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라마는 1959년 노르불링카 궁을 버리고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망명길에 오르며 처절한 한마디를 토해냈다. “그릇은 깨질지 몰라도 거기에 담긴 정신은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다.” 당시 민중 봉기가 실패로 끝난 뒤 인도의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 정부가 세워진 지 내년이면 어느덧 반세기를 맞는다. 티베트인들에게 조국 독립운동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절규한 시인 이상화의 애원처럼 너무나 절절한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끔찍한 유혈 사태까지 불러온 티베트인들의 시위가 처음엔 자유를 갈구하는 외침이었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기화로 짓밟.. 더보기
평등한 자유 속에 약자 위한 차등을 입력 : 2008-03-14 16:35:20ㅣ수정 : 2008-03-14 16:35:57 사회 정의와 법질서의 관계는 평등과 자유의 관계만큼이나 논쟁적이다. 정의는 흔히 평등의 가치로 여겨진다. 해서 이념 논쟁을 즐기는 이들은 ‘진보·좌파=정의, 보수·우파=질서’라는 단순명쾌한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하지만 이항대립적 관계로만 인식하기엔 너무 복잡미묘하다. 정의와 질서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한다고 해야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때로는 충돌하고, 선후를 가려야 할 경우도 존재한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삼성 떡값’ 로비 대상자 발표를 둘러싸고 갈등국면이 조성되는 것도 정의가 먼저냐 질서가 우선이냐의 논란이 본질이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거쳐야 할 아픔과 통과의례.. 더보기
이태준의 옛집서 맛본 ‘수필의 진수’ 입력 : 2008-03-07 17:11:58ㅣ수정 : 2008-03-07 17:12:22 번잡한 일상을 뒤로 하고, 풍진과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땐 이곳을 홀연히 찾아간다. 혼자서도 좋고, 두 셋이서도 괜찮다. ‘시에는 정지용, 소설에는 이태준’이라는 그 한마디로 평가가 끝나는 상허(尙虛) 이태준의 옛집 ‘수연산방(壽硯山房)’이다. 단아한 기품과 약간의 호사를 지닌 전형적인 이 ‘조선 기와집’을 정지용 시인이 질투할 정도였다니 새삼 덧붙일 말이 없겠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직접 집자해 팠다는 문향루(聞香樓)란 현판이 낯익은 듯 반긴다. 1946년 월북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살았던 서울 성북동의 이 고택 중에서도 생시에 글을 썼던 사랑방에 앉아 그가 바라보았을 북악산 자락을 올려다보면 .. 더보기
인간성의 생태적 복원 역설 입력 : 2008-02-29 16:55:17ㅣ수정 : 2008-02-29 16:55:29 2004년 3월9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재판이 열렸을 때였다. 송교수는 최후 진술에서 세계적인 석학의 탁월한 비유를 들며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위험사회니 보험사회니 하는 말처럼 위험이 항시적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이 둔화하기 때문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생태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조금씩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면 이 개구리는 끓는 물 속에서 그만 죽습니다. 그러나 끓는 물에 개구리를 바로 집어넣으면 이 개구리는 펄쩍 뛰어 밖으로 .. 더보기
‘도덕경’ 풀어 ‘생명’을 이야기 하다 입력 : 2008-02-22 16:42:21ㅣ수정 : 2008-02-22 16:42:26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년이 지나지 않은 책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던가. 예외 없이 실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구한 세월에 걸쳐 검증된 고전만 탐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그렇다면 2500년 넘게 숙성된 노자(老子)의 ‘도덕경’은 무라카미의 마음을 얻고도 넘친다. 하지만 ‘도덕경’이야말로 주석과 해설이 올바르지 않으면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다. 게다가 ‘무위자연’에서 노니는 대범무쌍한 이야기여서 따분하리란 선입견이 지배하기 십상이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주석서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겠다. 중국에서만 1500권이 넘는 주석서가 쓰였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길을 따라 노자 곁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