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꽃>
‘이름 모를 꽃’이란 제목의 이 시를 쓴 김영배 시인은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나 김정한 선생 같은 분이 살아 계셨다면 혼쭐이 날법하다. <그리움은 이름 모를 꽃으로 피어나고>라는 시집을 낸 9명의 바다시 동인들도 분명 마찬가지리라. 단편소설 <이름 모를 꽃>(소설문학)을 남긴 고 선우휘 선생이나 시집 <이름 모를 꽃>(형설출판사)을 펴낸 이영성 시인도 예외는 아닐 게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딨노. 시인이라면 낱낱이 찾아서 붙여주어야지.” 부산을 대표하는 토박이 문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김정한 선생(1908~1996)이 제자 시인 최영철에게 꾸짖으며 했다던 말이다. 대학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이해웅 시인도 똑같은 닦달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새, 이런 식으로 쓰면 크게 야단을 치셨지요. 작가는 꽃이름 풀이름을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고.” 우리말 사전과 식물도감을 손수 만든 리얼리스트 김정한 선생은 이처럼 생전에 젊은 작가들이 ‘이름 모를 꽃’ 같은 표현을 쓰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동리 선생이 소설가 문순태의 소설 습작을 읽다가 ‘들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대목에서 원고를 집어던졌다는 일화는 후배 문인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이름 모를 꽃이 어디 있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 선생은 들꽃 이름을 알기 위해 농부들에게 묻고 메모해서 소설을 쓰고, 패랭이꽃이라는 꽃 이름 역시 그렇게 알게 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작품 속에 풀, 나무와 꽃들을 더욱 진지하게 담는 것은 문화의 깊이를 더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렷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도 <우리말 살려쓰기>(아리랑나라)란 책에 이런 고언을 남겨 놓았다.
안도현 시인은 서른다섯이 되도록 ‘애기똥풀꽃’도 모르고 시를 썼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실제로 수년전에 한 문학잡지에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시,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생태학의 터전을 마련한 1세대 생태학자 김준민 선생은 교양과학입문서 <들풀에서 줍는 과학>(지성사)에 이렇게 회고했다. “어릴 적에, 초반 긴 페이지에 걸쳐 나무와 꽃이름을 열거해가던 어느 소설의 묘사부분을 읽으면서 이름도 희한한 외국 식물들이 도통 어떻게 생겼을지 몰라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가는 어떻게 그리 많은 식물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늘 신기하였다.”
‘이름 모를 꽃’만 만발한 우리 현실을 딱하게 여긴 ‘야생화 전도사’ 김태정 박사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꽃 백가지 1, 2>(현암사)를 통해 몰상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꽃을 소개한 1권은 철따라 피는 100가지를 골라 생생한 컬러 화보와 더불어 꽃의 생태와 쓰임새, 숨은 이야기까지 감흥 깊게 들려주고 있다. 높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을 담은 2권은 지은이가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란 별명에 걸맞게 40여 년간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전국 곳곳의 산을 직접 답사한 결과물이다.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에 얽힌 얘기를 보자.
우리는 꽃이름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꽃이 지구의 생태계에 어떤 혁명적 기여를 해왔는지 제대로 모른다. 미국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1907~1977)는 역작 <광대한 여행>(강)에서 놀라운 사실을 전해준다.
미국의 저명한 식물학자 윌리엄 C. 버거는 <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바이북스)에서 한층 전문적인 연구결과를 들려준다.
코넬대 생물학자 칼 니클라스 코넬대 교수는 “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손을 퍼뜨리고, 피나 뇌가 없어도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며, 근육이 없이도 살아 움직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며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세상을 먹여 살리는 생명체이다.”라고 예찬한다.
올 겨울 동장군의 위세는 유난스러웠다. 겨울이 길고 모질면 봄꽃이 더 화려하게 핀다는 속설이 맞는다면 올봄에 대한 기대가 커질 듯하다.
이제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김춘수 시인의 명시 ‘꽃’을 떠올려 보자.
모든 꽃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진정한 존재가 인정되고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이름 모를 꽃’으로만 여겨지던 꽃도 새롭게 느껴질 게 틀림없다. 시인의 말처럼 꽃을 만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꽃이 풍성하게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담벼락에 기대어 핀 꽃/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너의 혈통을 알 수가 없구나/ 노란 꽃잎이 꼭 개나리를 닮았지만/ 다소곳한 얼굴이/ 찬바람에 얼어 있구나/ 늙어 백발이 되는 꽃이 있구나/ 목숨이 다하여/ 떨어져서 흙에 누워도/ 여전히 꽃이란 이름을 간직한/ 꽃이 있구나’
‘이름 모를 꽃’이란 제목의 이 시를 쓴 김영배 시인은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나 김정한 선생 같은 분이 살아 계셨다면 혼쭐이 날법하다. <그리움은 이름 모를 꽃으로 피어나고>라는 시집을 낸 9명의 바다시 동인들도 분명 마찬가지리라. 단편소설 <이름 모를 꽃>(소설문학)을 남긴 고 선우휘 선생이나 시집 <이름 모를 꽃>(형설출판사)을 펴낸 이영성 시인도 예외는 아닐 게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딨노. 시인이라면 낱낱이 찾아서 붙여주어야지.” 부산을 대표하는 토박이 문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김정한 선생(1908~1996)이 제자 시인 최영철에게 꾸짖으며 했다던 말이다. 대학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이해웅 시인도 똑같은 닦달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새, 이런 식으로 쓰면 크게 야단을 치셨지요. 작가는 꽃이름 풀이름을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고.” 우리말 사전과 식물도감을 손수 만든 리얼리스트 김정한 선생은 이처럼 생전에 젊은 작가들이 ‘이름 모를 꽃’ 같은 표현을 쓰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동리 선생이 소설가 문순태의 소설 습작을 읽다가 ‘들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대목에서 원고를 집어던졌다는 일화는 후배 문인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이름 모를 꽃이 어디 있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 선생은 들꽃 이름을 알기 위해 농부들에게 묻고 메모해서 소설을 쓰고, 패랭이꽃이라는 꽃 이름 역시 그렇게 알게 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작품 속에 풀, 나무와 꽃들을 더욱 진지하게 담는 것은 문화의 깊이를 더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렷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도 <우리말 살려쓰기>(아리랑나라)란 책에 이런 고언을 남겨 놓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나는 풀이름, 나무이름, 꽃이름을 제대로 모릅니다. 시인이고 수필가이고 소설가란 사람들은 글을 쓸 때 기껏해야 ‘들에 나가면 이름 모를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산에 가면 이름 모를 산새가 울어대고...’ 따위로 쓸 줄 밖에 모릅니다. 세상에 제 땅에 피고 지는 꽃이름도 모르고 우는 새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사랑합니까?”
안도현 시인은 서른다섯이 되도록 ‘애기똥풀꽃’도 모르고 시를 썼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실제로 수년전에 한 문학잡지에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시,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생태학의 터전을 마련한 1세대 생태학자 김준민 선생은 교양과학입문서 <들풀에서 줍는 과학>(지성사)에 이렇게 회고했다. “어릴 적에, 초반 긴 페이지에 걸쳐 나무와 꽃이름을 열거해가던 어느 소설의 묘사부분을 읽으면서 이름도 희한한 외국 식물들이 도통 어떻게 생겼을지 몰라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가는 어떻게 그리 많은 식물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늘 신기하였다.”
‘이름 모를 꽃’만 만발한 우리 현실을 딱하게 여긴 ‘야생화 전도사’ 김태정 박사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꽃 백가지 1, 2>(현암사)를 통해 몰상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꽃을 소개한 1권은 철따라 피는 100가지를 골라 생생한 컬러 화보와 더불어 꽃의 생태와 쓰임새, 숨은 이야기까지 감흥 깊게 들려주고 있다. 높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을 담은 2권은 지은이가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란 별명에 걸맞게 40여 년간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전국 곳곳의 산을 직접 답사한 결과물이다.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에 얽힌 얘기를 보자.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착한 아들과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항상 귀여워했으며, 아들 역시 효성이 지극해 어머니의 명령에는 반드시 복종했다. 아들이 커서 장가들 가게 되었는데 며느리의 효성은 아들보다 극진하였다. 아들은 결혼한 지 며칠 만에 먼 산 너머 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나게 됐다. 그 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착한 며느리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구박을 받아들였고, 야단을 치면 용서를 빌고 일만 부지런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밥을 짓기 위해 쌀을 솥에 넣고 불을 땠다. 밥이 다 익어갈 무렵 뜸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솥뚜껑을 열고 밥알 몇 개를 씹어 보았다. 방에 있던 시어머니는 솥뚜껑 소리를 듣자마자 이때다 싶어 몽둥이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 나왔다.
어른이 먹기도 전에 먼저 밥을 먹느냐며 다짜고짜 며느리를 때렸다. 쓰러진 며느리는 며칠 동안 앓다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들은 단숨에 달려와 통곡하며 마을 앞 솔밭 길가에 색시를 묻어주었다. 그 뒤 색시의 무덤가에는 하얀 밥알을 물고 있는 듯한 꽃들이 피었다. 사람들은 착하 며느리가 밥알을 씹어보다 죽었기 때문에 한이 되어 무덤가에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고 여겼다. 꽃색깔도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었다. 이때부터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어른이 먹기도 전에 먼저 밥을 먹느냐며 다짜고짜 며느리를 때렸다. 쓰러진 며느리는 며칠 동안 앓다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들은 단숨에 달려와 통곡하며 마을 앞 솔밭 길가에 색시를 묻어주었다. 그 뒤 색시의 무덤가에는 하얀 밥알을 물고 있는 듯한 꽃들이 피었다. 사람들은 착하 며느리가 밥알을 씹어보다 죽었기 때문에 한이 되어 무덤가에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고 여겼다. 꽃색깔도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었다. 이때부터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꽃이름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꽃이 지구의 생태계에 어떤 혁명적 기여를 해왔는지 제대로 모른다. 미국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1907~1977)는 역작 <광대한 여행>(강)에서 놀라운 사실을 전해준다.
“꽃이라는 자연의 선물과 그 꽃이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열매가 없었더라면 인류와 조류는 비록 그들이 계속해서 생존해 오기는 했겠지만 오늘날처럼 서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였던 시조새는 세콰이어 나뭇가지 사이에서 딱정벌레를 잡아먹는 야행성 동물에 불과할 것이다. 가냘프고 가벼운 꽃잎 하나가 지구의 얼굴을 바꾸었고, 오늘날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어느 단 하나의 녹색식물 종이 지구상에서 종의 폭발을 이끌어낼 동물 집단을 만들어가는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그것도 외부로부터의 영향이나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만약 우리 인류에게 그 책임이 주어졌다면 이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이것은 꽃잎을 가진 식물, 또는 최소한 꽃을 달고 있는 식물 말고는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저명한 식물학자 윌리엄 C. 버거는 <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바이북스)에서 한층 전문적인 연구결과를 들려준다.
“인간의 존재를 지구촌의 주인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다. 인류가 위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꽃 덕분이다. 꽃피우는 식물은 인간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농경생활을 통해 인간이 지구촌에서 지배력을 거머쥐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원숭이의 진화를 도왔고, 양팔을 교대로 흔들며 이동하는 유원인의 등장을 도와주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이 없었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월등한 힘을 가질 수 없었다. 25종의 꽃피우는 식물이 우리가 채식으로 얻는 에너지의 90%를 제공하고 있다. 26만종의 꽃피우는 식물 중 선택된 25종이다.”
코넬대 생물학자 칼 니클라스 코넬대 교수는 “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손을 퍼뜨리고, 피나 뇌가 없어도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며, 근육이 없이도 살아 움직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며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세상을 먹여 살리는 생명체이다.”라고 예찬한다.
올 겨울 동장군의 위세는 유난스러웠다. 겨울이 길고 모질면 봄꽃이 더 화려하게 핀다는 속설이 맞는다면 올봄에 대한 기대가 커질 듯하다.
이제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김춘수 시인의 명시 ‘꽃’을 떠올려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모든 꽃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진정한 존재가 인정되고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이름 모를 꽃’으로만 여겨지던 꽃도 새롭게 느껴질 게 틀림없다. 시인의 말처럼 꽃을 만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꽃이 풍성하게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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