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막 돌아온 한 부자 여성을 축하하는 파티에 초대받았다. 그 부자 여성이 카네기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뉴욕에서 가장 말을 잘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카네기가 말문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부인. 최근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이 여성이 아프리카 여행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자 카네기는 곧바로 다른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셨습니까?” “언제 아프리카로 떠나셨나요?”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어디 어디를 돌아보셨는지요?” 질문이 거듭되자 이 부자 여성은 대답만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0여분간의 대화에서 그녀가 대답한 시간은 95%인 반면 카네기가 이야기한 시간은 5%에 불과했다. 다음날 한 신문에 그 부자 여성의 촌평이 실려 있었다. “카네기는 역시 뉴욕에서 가장 대화를 잘하는 분이었다.”
이 일화를 들으면 자연스레 소크라테스가 먼저 떠오른다. 소크라테스에게 한 철학자가 찾아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왜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반대논증을 편 상호대화의 전범(典範)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스티븐 밀러의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대화의 역사>(부글북스)는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대화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며 대화의 참 가치를 깨우쳐준다. 대화를 필생의 주제로 잡고 연구해온 밀러가 “대화는 인간 존재와 다른 동물들을,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영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의 말로 책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밀러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다. 이 시기의 영국인들이 경제와 군사력은 물론 커피하우스와 클럽에서 대화의 기술도 갈고닦아 나라의 품격을 세계 수준으로 높였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프랑스의 살롱 문화도 마찬가지다.
지은이가 대화를 멸종위기로 만든 주범으로 꼽은 것은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사로잡은 ‘반체제문화’다. 분노와 적의로 가득 찬 ‘상스러운 말투의 제왕’인 미국 백인 래퍼 ‘에미넴’이 대표적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아이콘으로, 의회에서 상원의원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딕 체니 전 부통령도 주범의 하나다.
여기에다 저자가 ‘대화 회피장비’라고 이름 붙인 휴대폰, MP3, 비디오 게임, 컴퓨터의 범람은 대화의 문을 닫는 또 다른 주범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능력은 대화 회피장비들의 신호음과 노래, 호출, 윙윙거림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게다가 대화의 대용품조차 문자메시지, e메일 등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밀러가 내다보는 대화의 미래는 한층 더 우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상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잠깐씩 다른 사람과 교류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의 짧은 대화도 주로 무례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이뤄질 것이다.”
작금 대화의 위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대화의 부재로 가정이 위기에 몰리고 정치권과 사회도 대립과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남북한 간에도 어느덧 대화하는 법을 잊고 다툼에만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한동안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대화가 필요해’가 인기를 누렸던 것도 대화 부재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세밑에 더욱 걱정스러운 건 ‘잃어버린 대화의 품격’은 고사하고 ‘대화의 빈곤’ 자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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