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같은 풍토라면 약간은 의아해할 단체가 1997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책임지는 부자’(Responsible Wealth)란 이 단체는 척 콜린스 전 코닥 사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콜린스는 변호사, 교수, 대기업 임원을 지낸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에게 공동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해 흔쾌한 동의를 이끌어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아버지다. 콜린스는 “게이츠 시니어가 처음 상속세 폐지를 막아야 한다는 말을 건넸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게이츠 시니어는 상속세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세금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부자들이 계속 욕심을 부리면 미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망한다. 부자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계속 이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올해 쉰살인 콜린스도 이미 스물여섯살 때 상속재산 50만달러를 기부하면서 주목받았다.

‘책임지는 부자’의 회원 자격은 미국 내에서 연봉이나 순자산 기준으로 상위 5%에 들어야 한다. 현재 회원수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 부자 외에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조지 소로스, 석유왕 후손인 데이비드 록펠러 시니어, CNN 창업자 테드 터너, 인텔 명예회장 고든 무어 같은 부자들이 포함돼 있다. 배우 폴 뉴먼도 생전에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들의 주장은 상속세·주식 배당 소득세 폐지 반대, 공평과세, 근로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 최고경영자들의 연봉과 혜택 축소다. 이 단체는 민간 시민단체인 ‘공정경제연합’(UFE) 산하에 등록돼 있다. 1998년 이후 해마다 ‘공평과세 서약’ 행사를 펼치고 부자들의 모임인 로타리클럽 회원들에게는 의식화 교육까지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2001년 5월 뉴욕타임스에 상속세 폐지 반대 광고를 실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독일의 일부 갑부들이 부유세 재도입 청원을 시작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필요하지 않은 돈이 너무 많다”는 게 이유다. 이들은 앞으로 미국의 ‘공정경제연합’ 같은 단체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탈법·편법 상속을 대수롭잖게 여기고 출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해외 호화주택 매입에 바쁜 재벌들, 부자 감세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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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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