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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9)--<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쿤

 여성해방의 공신은 페미니스트들이 아니라 세탁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진공청소기를 발명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때로는 더 솔깃하게 들린다. 4대 가사 발명품 덕분에 여성들이 손일을 몰라보게 덜었음은 물론 남성들이 이를 대신하는 시대를 맞았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었던 현상이다.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온 뒤 사람들은 마차나 인력거 시대가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20년 전만 해도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만물박사인 백과사전을 들춰봤다. 이젠 백과사전을 출판해봐야 아무도 사지 않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면 돈 한 푼들이지 않고도 무슨 정보든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인식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개되고 있어서다.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의 체계가 바뀌는 것을 우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부른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패러다임이 다르다’는 말을 이젠 누구나 할 정도로 ‘패러다임’은 일상용어가 됐다.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전문적인 학술용어가 친숙하게 된 건 꼭 50년 전 출간된 한 권의 책 덕분이다. ‘과학혁명의 구조’(원제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라는 이름의 책이다. 
                                                          

   

 수줍음을 많이 타면서도 재치 있는 유머를 구사하는 하버드대 물리학과 최우등 졸업생이 있었다. 훤칠한 키에 수재라는 상찬을 당연하게 들어온 토머스 쿤(1922~1996)이라는 이 젊은이가 세계 지성사를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내다본 이는 별로 없었다. 쿤은 한 권의 책으로 지구촌의 자연과학계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계, 아니 모든 지식 분야에 새로운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세상을 바꾸고 주목을 받는 데는 낱말 하나로 충분했다. 바로 ‘과학 혁명의 구조’의 화두인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은 그의 이름과 늘 짝지어 다닌다.

 패러다임은 한마디로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과학사의 특정한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모범적인 틀이 있다. 이 모범적인 틀이 패러다임이다. 쿤은 패러다임을 과학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 또는 가치의 전체적 집합체라고 정의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 틀, 얼개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쿤이 처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에서 유래한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적 술어인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도 나온다. 현대어에서는 언어 학습의 ‘표준예’(exemplar)라는 뜻으로 사용됐고, 쿤은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용어와 개념을 따왔다.
                                                           

                                                      <토머스 쿤>

 

 하버드대 물리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을 당시 첫 강의를 맡은 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원문으로 읽었다. 그는 현인의 반열에 오른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이처럼 황당한 이론을 전개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운동이나 물질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운동은 ‘상태의 변화’였으며, 뉴턴에게는 ‘상태’를 뜻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린’ 것이 아니라 뉴턴과 ‘다르다’의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패러다임)이 근대물리학자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체험한 것이다. 그러자 쿤은 근대물리학이 만든 패러다임을 버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지녔던 패러다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생각의 틀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지혜다. 이 깨달음은 쿤이 패러다임에 초점을 맞춰 과학사를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계기가 됐다.

 쿤은 패러다임에도 일생이 있다고 설명한다. 특정 패러다임은 한창 성가를 올리다가도 위기를 맞고 새 패러다임으로 교체가 된다. 이 과정을 쿤은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과학혁명이라는 낱말도 쿤이 조어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알렉상드르 코이레가 1939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반적으로 과학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서 뉴턴 과학으로 전환한 대격변을 말한다.

 

  쿤은 과학 혁명이 정상과학(normal science)→위기→혁명→새로운 정상과학이라는 흐름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과학 발전이 자연에 대한 진리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과학자 사회가 수용한 패러다임을 정교하게 만드는 정상과학과 이런 정상과학이 위기를 맞으면서 다른 정상과학으로 바뀌는 급격한 과학혁명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해석이다. 쿤은 과학자들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안정된 과학활동을 정상과학이라고 규정했다. 과학혁명은 정상과학이 심각한 이상현상의 빈번한 출현에 따라 위기에 부딪혀 붕괴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 결과는 새로운 정상과학의 출현을 가져온다.

 그의 과학혁명 개념은 정치혁명과 흡사하다. 쿤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아이작 뉴턴, 앙투안 라부아지에,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처럼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온 과학자들을 정치혁명가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정치 혁명의 목적이 기존 제도를 파괴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과학 혁명에서도 경쟁하는 패러다임 사이의 선택은 양립이 불가능하다.” 과학 발전이 조금씩 개량되거나 진전되어 일어나기보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을 누르고 비약으로 일어나는 일이 많다는 의미다.

                                                                 

 쿤은 이를 ‘게슈탈트 전환’이나 종교의 ‘개종’(conversion)에 비유한다. ‘게슈탈트 전환’은 이미지나 형태가 그 자체로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음에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바뀌는 것을 일컫는다. 쿤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 있는 한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비약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과 낡은 패러다임은 같은 기준으로 잴 수 없다고 말한다. 패러다임의 장·단점을 비교하거나 어느 쪽이 우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는 얘기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옛 패러다임에 비해 보다 정확하거나 타당하고 보다 진리에 가까운 게 아니라 보다 유용한 것일 뿐이라는 견해다.

 그는 과학적 진리에 관해서도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말을 빌려 흥미롭게 설명한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는 거두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자들이 죽고 새로운 진리를 신봉하는 세대가 주류가 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쿤의 패러다임 개념은 이 책이 나오자마자 격렬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모호성 탓이다. 언어학자 마가렛 매스터먼은 쿤이 패러다임을 무려 22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고 꼬집었다. 패러다임이 여러 가지를 잡다하게 담는 보자기 같은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연스레 숱한 반론과 논쟁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 1965년 7월 영국 베드포드대학에서 열린 토론회였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명성 높은 칼 포퍼와 쿤이 벌인 이 토론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가장 유명한 과학철학 논쟁으로 꼽힌다. 쿤은 과학 탐구가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론과 맞지 않은 변칙사례가 나올 때마다 패러다임을 폐기한다면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맞서 포퍼는 어떤 패러다임이나 이론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주저 없이 대안 이론을 모색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쿤이 패러다임의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반면 포퍼는 패러다임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어떤 과학철학자는 쿤이 과학을 ‘군중심리’로 격하했다고 분노어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논란이 쿤의 위상을 떨어뜨리기는커녕 외려 명성과 권위를 한결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첫 출간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당시 과학철학은 지식 축적을 통해 진보한다는 논리실증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실증주의는 과학활동이 인간의 인식·가치·마음 등과 분리되어 자연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직접 경험으로 관찰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패러다임에 바탕을 둔 쿤의 독창적 이론은 과학이론의 논리적 분석이 아니라 실제 과학자들의 활동과 과학사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 책은 과학철학을 넘어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박수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 곳은 과학계가 아니라 비과학 분야였다. 과학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 책은 과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렸으며 과학을 둘러싼 신비의 그림자를 걷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 덕분에 과학은 신이 만든 자연법칙을 찾아내는 활동이 아니라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복잡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자 그 결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쿤의 ‘다름’ 이론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적 상대주의, 다문화주의, 다양한 학파의 평화적 공존에도 긍정적인 힘을 미쳤다. 쿤이 창조설은 과학이 아니라고 했음에도 창조설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은 이 책을 근거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웃지못할 현상도 빚어졌다. 창조설이 진화론과 다를 뿐 틀린 과학은 아니라는 논리를 이 책으로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려운 학문서적임에도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100만권 이상 팔려나갔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쿤의 이름을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대학입시 논술시험 덕분에 쿤과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고 대학을 들어오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을 정도다. ‘여행의 뉴패러다임’이라는 상품명이 등장할 만큼 일상생활에서조차 보편화됐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2년 8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