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초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0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애덤 스미스가 ‘세계 자본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어 시선을 모았다.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 연차총회를 눈앞에 앞두고서였다. 실제 글쓴이는 영국 투자그룹 칼라일의 공동 창업자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었다.
“여러 나라가 흔들리고, 시위는 흥분되고, 실업률은 오르고, 적자는 늘어만 가니 자본주의 장점들은 의문을 받고 있구려. 내 지난 수백 년간 지켜본 바 자본주의를 앞으로 수백 년 더 지속시키기 위해, 아니면 적어도 지난해보다 올해 더 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펜을 들었소... 자본주의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자본주의가 단지 다른 대체물보다 더 낫다고 했을 뿐이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지... 자본주의 단점을 치유할 단순한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을 얘기하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들불처럼 번진 ‘월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시위가 상징하듯 자본주의 위기론이 여전히 팽배한 것을 의식한 글이다. 루벤스타인이 애덤 스미스의 이름을 빌린 건 그가 ‘자본주의의 비조’로 숭앙 받고 있어서다. 스미스의 대표작인 ‘국부론’이 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이론적 효시가 됐기 때문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본디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원제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라는 긴 제목의 책이다. ‘국부론’은 세계를 지배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만든 기념비적 노작이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적인 모습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저작이기도 하다.
‘국부론’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다. 시장이 자기 통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가리킨다. 개인의 이기심은 시장의 가격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고 공공의 이익을 촉진한다고 스미스는 생각했다. 이처럼 중요한 말이 600여 쪽 분량의 ‘국부론’에서 단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신기하다. 마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표현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에 단 한번 언급한 것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과 비슷하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쓴 것이다.
‘국부론’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대목은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 경제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점을 흥미롭게 표현한 부분이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의 자애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유리함을 말한다.”
이 책은 사회의 번영을 촉진하는 두 가지 원리로 분업과 자본축적을 든다. 국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철학이다. 스미스는 생산의 기초를 분업에 둔다.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모든 공정을 혼자 행하는 것보다 공정별로 나누어 각자가 전문적 업무를 수행하는 편이 공장 전체로 볼 때 높은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핀 생산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스미스는 분업과 이에 따르는 기계의 채용을 위해서는 자본 축적이 필요하며, 자유경쟁에 의해 자본축적을 꾀하는 것이 국부 증진의 바른 길이라고 썼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시장이론의 핵심인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은 후대에 자본주의를 자유무역주의로 탈바꿈시키는데 사용됐다. 일부에선 정부 규제를 없애 무제한으로 개인의 이윤추구 자유를 주장하는 데까지 악용하고 있다. 자유방임주의를 돈을 벌기위해 기업과 기업인이 무슨 일을 해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현상도 나타난다.
스미스 이후 주류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보다 체계화하고 계량화하는데 주력했다. 로잔학파의 일반균형이론은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적 증거를, 밀턴 프리드먼은 완벽한 시장경제에 대한 맹신을 퍼뜨렸다. ‘시장 성공 경제학’에만 관심을 뒀을 뿐 ‘시장 실패 경제학’에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스미스를 시장 만능주의자로 보는 건 오해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외친 것은 자유시장이 윤리적이란 얘기가 아니라 대자본의 탐욕을 경계한 때문이었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 경제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했다. 여기서 개인은 사회에서 분리된 고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공감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다.
<애덤 스미스 초상화>
스미스의 또 다른 명저 ‘도덕감정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을 쓰기 전에 ‘도덕감정론’을 먼저 지었다. ‘도덕감정론’은 개인의 이기심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파악한 건 맞지만, 이때의 개인은 타인과 서로 공감하는 도덕과 정의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한 공감의 원리는 ‘국부론’에서 시장의 원리로 확장된다. 공감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는 스미스의 철학체계에서 모두 인간의 본성에 연유한다. ‘국부론’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도덕감정론’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긴요하다. 에든버러에 있는 그의 무덤에 새겨진 짤막한 비문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가 여기에 잠들다.” ‘도덕감정론’이 그 유명한 ‘국부론’보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도덕감정론’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딱 한번 나온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만큼 사회적 책임이라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을 중요시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스미스는 평생 단 2권의 명저만 저술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도덕감정론’을 구약성서, ‘국부론’을 신약성서에 비유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는 이기심의 효능을 강조했지만, 앞서 출간한 ‘도덕감정론’에서는 사람의 본성이 이타적인 것이며, 이타심이 없는 이기심의 위험성을 역설했다.
마르크스경제학의 일인자이자 ‘국부론’ 번역자이기도 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주류경제학자들이 이해하는 것과 달리 ‘국부론’은 시장만능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국부론’을 흔히 자유방임주의, 시장만능주의를 주장한 책으로 알고 있지만, 김 교수는 “특권층의 특권을 없애고 노동의 가치를 높게 본 책”이라고 했다. 그는 “국부론의 국부는 국민 전체의 부”라면서 “특권이 사라지고 모두가 정부 규제를 받지 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방임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스미스는 당초 중상주의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국부론’을 썼다. 중상주의 체제는 금과 은 등의 화폐를 부와 동일시하고, 화폐를 증대시키기 위해 국제무역에서 흑자를 낳는 정책이 채택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경제학이다. 중상주의 정책의 가장 큰 해악은 각 나라 국민 간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무역을 분쟁의 원인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데 있다.
‘국부론’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고, 18세기가 저물기 전에 유럽의 주요 언어들로 번역됐다. 19세기 전반까지 그의 뒤를 이은 경제학자들의 저작들은 모두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한 후 곧바로 이를 계승, 발전시킨 경제학자가 데이비드 리카도와 ‘인구론’의 저자 토머스 맬서스다. 기껏해야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적 대공황이 닥치자 ‘보이지 않는 손’의 위기대처 능력에 의문을 품고 궤도수정을 시작했을 정도다.
‘국부론’은 노동가치설을 처음 제시해 마르크스경제학의 탄생에도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책이 바로 ‘국부론’이다. 자본가들이 생산에 기여함이 없이 노동자들의 생산품 일부를 가져간다고 설명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에 바탕이 됐다. 찰스 다윈이 ‘국부론’에서 큰 영감을 얻어 인류 역사를 바꾼 ‘진화론’을 발전시켜 나갔다는 것도 학계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에서 성공한 자본주의는 유럽대륙과 미국, 아시아로 전파됐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하나의 모델이 이식된 게 아니었다. 19세기 중엽까지 고립돼 있던 섬나라 일본이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들’은 종속이론의 비관적 예측을 깨뜨렸다. 공산국가 중국이 자본주의로 변신한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친화성’이라는 고전적 명제까지 흔들었다.
‘국부론’을 바탕으로 태동한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업그레이드됐다. 무너질 뻔한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자본주의의 토대는 당분간 확고해 보인다.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정책과 인간의 탐욕을 탓하라.”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데이비드 로스코프 대기자는 최근 대기업과 정부의 경쟁을 그린 ‘파워 주식회사’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책을 펴냈다. 로스코프는 20세기의 지구촌에서 벌어진 대투쟁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었다면, 21세기의 큰 투쟁은 어느 버전의 자본주의가 승리할지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관건은 어느 버전이 성장에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많이 모방될 것인가이다. 미국식 자본주의, 유럽의 안전망 자본주의, 중국식 자본주의, 인도와 브라질식의 민주적 발전 자본주의, 아니면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같은 기업적 소국 자본주의? 실험은 지속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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