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학교에서 상을 받은 딸이 엄마한테 문자를 보내 자랑했다. “엄마ㅋㅋ나오늘상받았어ㅋㅋㅋ” 엄마한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엄마는 문자메시지에 익숙지 않다.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웃으며 물었다. “상 받은 거 축하해. 근데 ㅋㅋ가 뭐냐?“ “아, 그건 분위기를 전환할 때 쓰는 거야.” 며칠 뒤, 수업중인 딸에게 엄마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할머니 돌아가셨다 ㅋㅋㅋ” 딸은 기절할 뻔했다.
<장면 2> 손자가 도토리가 없다며 느닷없이 할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재래시장에 가서 진짜 도토리를 사 왔다.
디지털 시대를 풍자하는 우화다. 그것도 한참 전에 나온 얘기다. 아직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면 당신은 심각한 아날로그 세대다.
젊은 부모들조차도 자녀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디지털 세대 차이는 하루가 다르게 더 커져만 간다. 요즘의 세대 갈등은 단순히 나이의 차이가 아니라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다.
디지털 혁명은 이미 16년 전인 1995년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전 세계인들에게 예언하면서 시작됐다. ‘디지털 전도사’란 별명이 붙은 네그로폰테는 당시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묵시록을 들려주며 ‘복음 전도’에 나섰다. 16년 전이라면 디지털시계로 ‘석기시대’를 갓 지난 시절이다. 그가 쓴 ‘디지털이다’(커뮤니케이션북스·원제 Being Digital)는 ‘디지털 바이블’인양 들불처럼 지구촌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보면 지은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현실이 존재할 만큼 급변한 상황도 전개되고 있으나 진행형인 부분도 있어 여전히 유효하다.
네그로폰테는 이 책에서 “앞으로 세상의 최소단위는 원자(atom)가 아니라 비트(bit)”라며 디지털세상의 도래를 선언했다. 한마디로 간추리면 이렇다. ‘아톰에서 0과 1의 연산체계인 비트로 변화하는 것은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지은이는 자신이 말하는 ‘디지털화’란 단순히 아날로그의 반대 개념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에비앙 생수 한 병을 화두로 삼아 아톰(원자)과 비트의 차이를 풀어나가며, 세계가 디지털화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를 설명한다. 알프스 산맥에서 생산되는 빙하수가 대서양을 건너 자신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에비앙 생수가 아톰이라면, 영국의 파운드화는 비트로 변환되어 순식간에 자신의 계좌로 이체되어 들어간다. 몇 푼 되지 않는 에비앙 생수 한 병은 대서양을 건너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손과 땀이 필요하지만 비트경제에서는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이전된다. 이제 상식적인 얘기가 됐지만 비트로 이뤄지는 디지털 정보나 지식은 물질로 만들어지는 아날로그 상품보다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게다가 빠르기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도서관에 비유하자면 책이라는 원자를 빌리고 나면 원자는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서가의 빈자리뿐이다. 도서관의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단지 원자를 비트로 바꾸면 모든 책들이 컴퓨터 파일로 디지털화된다. 디스크에 저장되어 있다면 비트를 빌려가도 비트는 언제나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다르다. 책은 한 사람만 빌려 볼 수 있지만 비트는 수만 명이 한꺼번에 빌려 볼 수도 있다.
비트는 그저 무언가를 나타내는 0과 1일뿐 크기도 없고 색깔도 없다. 형태도 없고 질량도 없다. 더구나 비트는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 비트는 손쉽게 혼합된다. 멀티미디어란 매우 복잡한 것처럼 들리지만 비트를 섞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멀티미디어라는 것은 음악 비트와 영화 비트, 문자 비트를 하나로 섞은 것일 뿐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당시만 해도 비트의 경제적 가치는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사이버 아이템을 매일 사고팔며 자신의 ‘아바타’를 가꾸기 위해 한 달 용돈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의 누리꾼들을 보면 더 이상 아톰과 비트의 차이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 이 책은 다가온 정보화 사회의 핵심 요소인 비트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친숙하게 접해왔던 아톰이 변화한 것임을 알려준다. 네그로폰테만 이같은 견해를 펼친 건 아니지만 비트의 세계로 인도하는 전도 행위의 열정과 탁월성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인물을 찾기는 어렵다.
이 책은 ‘Being Digital’이란 존재론적인 원제가 시사하듯 ‘디지털시대의 존재론’으로 일컬어진다. 저자는 훗날 굳이 제목에 Being이란 단어를 쓴 이유를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생활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기술이 디지털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 사고방식이 디지털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 존재론까지 사유한 그가 ‘21세기의 하이데거’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에선 ‘더 적은 것이 더 많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같은 역설적인 현상도 전개된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디지털 혁명을 낙관적으로 내다본다. 그의 낙관주의는 디지털화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분권화의 특성에 기인한다. 물론 지은이도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하고 있긴 하다. “모든 기술, 혹은 과학의 선물은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디지털 세상도 마찬가지다. 지적 재산권남용, 프라이버시 침해, 디지털 문화 파괴주의, 소프트웨어 해적질, 데이터 도둑질 등을 경험할 것이다.”
그럼에도 디지털 세상의 강력한 네 가지 특질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바로 탈중심화(decentralizing), 세계화(globalizing), 조화력(harmonizing), 분권화(empowering)가 그것이다. 이런 특질을 바탕으로 디지털이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벽돌이 될 것이란 희망을 저자는 펼쳐 보인다. 결국 네그로폰테의 복음은 “독재여 안녕!, 비트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로 수렴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 시간’이라고 평가한다. 그 뒤 이 시간에 맞춘 시계도 시판됐지만 공용화에 이르진 못했다.
그가 디지털시대를 낙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얼굴을 마주보며 나누는 인간과 인간의 대화에 가까운’ 인터페이스를 꿈꾸기 때문이다.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활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진정한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언제나 휴머니즘 입장에서 컴퓨터를 대하고 있는 모습이 이 책에서도 역력하게 드러난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주축이 돼 이루어질 미래의 세계는 기계적인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중심이 되는 감성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는 여기에다 단순성을 덧붙여 강조한다. 이 때문에 “네그로폰테가 멀티미디어의 전도사라면 빌 게이츠는 그의 복음을 따르는 비즈니스맨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누군가 칼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일어나 오늘의 현실을 본다면 ‘자본론’ 대신 ‘정보론’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시각에서 ‘디지털이다’를 ‘디지털시대의 자본론’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은이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네그로폰테의 생각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공학자 새뮤얼 플로먼은 “네그로폰테는 디지털 세계를 아날로그 영역과 대비시키고 있으나 아날로그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했고, 교육적이고 환상적인 반면 너무 황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네그로폰테와 MIT 미디어랩에서 함께 일한 윌리엄 미첼 교수는 이 책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비트’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정보혁명으로 등장한 비트가 공간혁명의 상징인 물리적 도시를 죽였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이 책에는 한국이 딱 한번 등장한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설명하는 사례로 한국과 일본이 더불어 언급된다. 네그로폰테는 한국이 창의적이고 유연한 교육의 길 대신 주입식 암기교육에 극단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도 그런 뜻을 담았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이 세상을 바꾼다’는 비전아래 “미쳤다”는 세간의 조롱과 의구심을 떨쳐버렸다. 미디어랩 설립 당시 그는 “출판과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산업이 디지털이라는 매개를 통해 하나로 통합되어 갈 것”이라며 동지를 구하러 돌아다녔지만 비웃음을 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곧 현실로 다가왔고, 하나의 콘텐트를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을 통해 가공하는(One Source Multi-use) 개념이 상식처럼 돼 버렸다.
그는 “빵보다 노트북이 더 중요하다”면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값싼 100달러짜리 PC 보급 운동을 펼쳤다.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OLPC(One Laptop Per Child) 운동의 혜택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2010년엔 ‘인터넷’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자도 16년 전 ‘디지털이다’를 썼을 때와 지금은 상전벽해처럼 달라졌다고 회고한다. “미래에는 아마도 학술적으로도 더 많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고 또 ‘색다른 사람들’이 지형을 바꿀 것이다.” 이미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 네트워크와 만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조성되면서 역전현상이 일어나 비트가 다시 아톰과 결합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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