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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술과의 전쟁

1997-04-04

악마보다 더한 비난과 천사보다 결코 덜하지 않는 찬사를 함께 받는 것이 술이다. 동서양과 시대의 고금에 차별없이 호평과 악평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잉거솔이 「술은 범죄의 아비요, 더러운 것의 어미」라고 한것은 마치 「술은 번뇌의 아버지요, 더러운 것들의 어머니」라고한 팔만대장경의 기록을 보는것 같다. 「사람은 체면있는 신사로 술집에 들어갔다가 중죄인으로 술집에서 나온다」는 글롭스의 말이나 법화경에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경계한 것도 맥이 통한다.의적이 처음으로 곡식으로 술을 빚어 바치자 우 임금이 마셔보고 술잔을 거꾸로 엎으면서 『후세에 반드시 이것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의적을 멀리하고 술을 없애라고 했다는 게 「전국책」(전국책)에 실려있다. 전설상 중국의 최고 왕조인 하 왕조의 시조인 우임금은 순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았으니 요·순시절엔 아예 술이 없었다는 얘기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인간에겐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고 한 키케로의 눈으로 보면 덕치로 평화롭던 요·순시대는 거꾸로 사람다운 사람이 살지않던 시절인 셈이다.
 영국에는 「주신이 군신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거나 「술은 악마의 피」라는 등 술을 악평하는 속담이 풍부하다. 그런 영국이 세계 위스키시장의 황금어장으로 봉노릇을 하는 한국을 향해 시장을 더 개방하라는 것을 보면 술은 역시 신사의 체면을 마비시키는 물건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술 소비가 계속 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최근에는 주부와 청소년 알코올중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위스키 수입액이 사상최초로 1천억원을 돌파했고 항암효과가 있다는 보도 때문에 적포도주의 수입도 급증하고 있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주류업계의 방송광고금지조치를 검토하라고 지시해 「술과의 전쟁」에 나섰다. 절주운동은 우리가 더 급한듯 한데 매일밤 TV화면 가득히 술판이 벌어지고 스튜디오에 칵테일 바까지 등장하니 방송의 술광고금지는 남의 나라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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