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피자효과로 뜬 K-푸드 K-컬처

김학순 2026. 11. 5. 22:00

 19세기 이탈리아 피자는 가난한 이들이 먹던 납작한 빵에 불과했다. 기본이 단순할 뿐만 아니라 토핑도 아주 적었다. 대개 토마토만 있었다. 당시 피자는 주로 노점에서 팔렸다. 19세기 말 대중 요리책이 등장했을 때 피자가 나폴리 요리에서 제외됐을 정도다.


 180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피자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피자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풍성한 토핑과 치즈가 더해지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국 관광객들이 이탈리아에 가서 정통 피자를 찾기 시작하자 기대에 맞춘 화덕 피자 가게들이 성업을 이뤘다. 자연스레 피자가 이탈리아의 대표 문화로 재수용됐다. 


 여기서 ‘피자효과(Pizza Effect)’라는 학술용어가 탄생한다. 사회학 문화인류학 종교학에서 피자효과는 특정 문화 요소가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가 변형되거나 큰 인기를 얻은 뒤 원래의 고향(본국)으로 역수출돼 정착하거나 본국의 문화적 지위가 높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 시러큐스대 인류학 교수 아게하난다 바라티가 1970년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한국 문화와 음식이 세계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외국의 시각에 맞춰 재해석된 뒤 돌아와 새로운 지위를 얻는 피자 효과가 흥미롭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K뷰티의 ‘마스크팩(시트 마스크)’와 ‘쿠션 팩트’는 최근의 피자효과 사례다. 한국인들에게 마스크팩이나 쿠션 파운데이션은 그저 일상적인 화장품의 하나였다. 미국과 유럽의 뷰티 인플루언서들이 “한국 여성들의 투명하고 빛나는 피부 비결”이라고 극찬하자 K뷰티로 브랜드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쿠션 팩트’가 미국 뷰티 유튜버들 사이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가자 랑콤, 입생로랑, 디올 같은 서구 명품 뷰티 브랜드들이 한국콜마, 코스맥스 같은 한국 제조사에 주문을 넣어 자신들의 이름으로 쿠션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해외 명품 브랜드가 한국의 기술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며 국내 소비자들도 국내 화장품 기술력에 큰 자부심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코리안 타코’는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식 푸드트럭 ‘고기 바비큐(Kogi BBQ)’ 등에서 멕시코 전통 타코에 한국식 불고기와 쌈장을 얹어 팔아 현지인들에게 초대박을 터뜨린 퓨전 음식이다. 한국에서 불고기나 삼겹살은 동네 식당에서 구워 먹는 일상식이었다. 이게 미국에서 인기를 끌자 한국에서도 이를 벤치마크해 세련된 실내장식과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역수출형 고깃집 브랜드들이 성행했다.


 한국에서 냉동 김밥은 시장성이 없어 주목받지 못하던 비주류 상품이었다. 이것이 미국 마트 ‘트레이더 조’에서 비건·건강식으로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자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역으로 인지도가 급상승해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정식 입점하고 주류 간식으로 떠올랐다.

                                                                                     


 한국 전통의 갈비구이는 원래 뼈 방향대로 길게 썰어 양념하는 방식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민자들이 측면을 통째로 자르는 현지 정육 방식에 맞춰 얇고 먹기 편하게 만든 것이 ‘LA 갈비’다. 이 방식이 한국으로 역수출돼 명절이나 외식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한국의 대표 고기구이 문화로 정착했다.


 한국에서 삼겹살과 쌈은 서민적인 외식 메뉴였다. 뉴욕의 ‘꽃(Cote)’ 같은 레스토랑이 한국식 고기구이를 미슐랭 스타급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 형태로 재해석해 미국 상류층을 사로잡았다. 이 현상이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에서도 건식숙성을 접목하고, 전문 서버가 고기를 구워주는 프리미엄 K-BBQ 레스토랑들이 급증했다.


 태권도는 오래전 피자효과 현상으로 뜬 분야다. 태권도는 원래 군사 무술이나 전통 격투기 성격이 강했다. 1970~80년대 미국에 진출한 사범들이 미국 가족 문화에 맞춰 ‘인성 교육, 사회성 발달, 방과 후 아동 보육과 체육 프로그램’으로 태권도 도장의 성격을 새롭게 정립했다. 줄을 서서 사범님께 인사하기, 부모님 공경 배지 주기 같은 교육 모델은 미국에서 먼저 정착하고 성공한 시스템이다. 이것이 한국으로 역수출되면서 오늘날 한국의 태권도장 역시 무술 수련원보다는 ‘유소년 인성 교육과 사회 체육’ 중심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K팝은 원래 한국 작곡가 중심의 가요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SM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스웨덴, 덴마크 같은 북유럽 작곡가들을 대거 영입해 ’북유럽풍 팝 스타일‘을 K팝에 이식했다. 해외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 세련된 팝 사운드가 한국 음악 시장을 장악하면서 이제는 한국 대중음악의 표준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K컬처 시장 규모 목표를 300조 원에서 400조 원 규모로 상향 조정했다. 2030년까지 K컬처 수출액을 1,1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피자 효과는 인위적인 기획이나 마케팅을 통해 억지로 만들어내기 어렵다. 문화가 한자리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교류와 변형을 거치며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피드백 현상이기 때문이다. K-컬처 K-푸드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남으려면 경제적 계산으로만 따지는 생각부터 떨쳐버리는 게 좋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