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은 투명인간이 아니다
명절 때 가장 외롭고 서러운 이들은 아예 혈육조차 없는 사람이다. 이들에겐 차례를 지낼 대상이 없고 찾아갈 고향도 없다. 고립무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대표적인 계층이 ‘자립준비청년’이다.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 같은 곳에서 지내다가 18세 이후(원하면 25세까지 연장 가능) 보호가 끝나는 이들을 우리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해마다 2000~2500명에 이르는 자립준비청년이 나온다. 이들은 경제적 정서적으로 취약한 환경 속에서 사회에 진입한다. 자립준비청년은 당장 살아야 할 집 구하기부터 공과금 납부, 취업 활동을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자립정착금 1000만~2000만원, 5년간 월 50만원의 수당, 디딤씨앗통장 같은 정책적 지원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도움만으로는 태부족하다. 정부의 경제적 지원에도 이들은 여전히 극심한 생활고, 주거불안정, 의지할 곳 없는 정신적 고독감 속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산다.

절반에 가까운 자립준비청년이 연락두절과 사후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다. 최근 5년간(2021년~2025년)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 7395명 가운데 3702명이 연락두절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연락처 변경이나 거주지 이전으로 소재 파악이 되지 않아 기본적인 자립 수준 평가나 정부의 모니터링조차 받지 못한다.
자립준비청년의 자살 생각률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의 자살 생각률은 18.3%에 달한다. 일반 청년(2.4%)의 7배 이상에 달한다. 자립준비청년 응답자 가운데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6.5%에 이른다. 정서적 고립감과 경제적 압박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2021~2025년 사이 파악된 사망자 4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명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립준비청년들이 보호시설을 나온 뒤 겪는 어려움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자립지원 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의 삶 만족도는 5.6점으로 전체 청년의 6.72점보다 낮다. 일상적 조언을 구할 어른의 부재는 실존적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공과금 납부, 전입신고, 금융계약 같은 일상적인 문제를 마주했을 때다. 인생의 중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 같은 지지 체계가 없어서다. 이처럼 시설을 나온 청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의지할 수 있는 어른과 인간관계의 부재에서 오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미래를 위한 진로설계보다는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최저임금 수준의 생계형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현실도 고립을 심화한다. 최근 정부와 일부 민간단체에서는 자립정착금 인상, 전담수당 확대, 멘토링 프로그램 등으로 이들을 돕고 있긴하다.
그런데도 금전적 지원을 넘어 청년 개개인의 상황에 맞춘 촘촘한 사후관리와 지속적인 정서적 연결망 구축이 절실하다. 정부의 자립정착금이나 주거지원 같은 경제적 정책도 중요하지만 돈만으로는 홀로서기를 완벽히 지탱할 수 없다. 실패했을 때 돌아가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정서적 안전망과 멘토링 시스템이 촘촘하게 받쳐주어야만 온전한 자립이 가능하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겐 편견의 벽이 가장 두렵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색안경부터 쓰고 본다. 대중과 미디어는 자립준비청년을 불쌍하고 비극적인 존재로만 묘사할 때가 많다. 반대로 범죄나 비행에 취약한 존재라는 극단적인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드라마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치는 ‘고아’에 대한 인식과 차별을 현실에서도 비슷하게 경험한다.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제도의 그물망이 더 촘촘해져야 한다. 정부의 지원정책이 과거에 비해 점차 확대되고는 있지만 정보력이 부족해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이 상존한다. 무엇보다 인지적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지능 자립준비청년처럼 더 세심한 돌봄과 관리가 필요한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맞춤형 다각적 지원 체계가 간절하다.
자립준비청년은 우리 사회에서 지워지거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자립은 혼자 살아남는 일이 아니다. 손을 잡아 줄 사람과 제도가 있어야 비로소 작동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