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법이 많을수록 정의는 줄어든다

김학순 2025. 10. 31. 23:56

 법 만능주의에 대한 경종은 일찍이 로마 시대부터 울렸다. 정치가이자 법률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법이 많을수록 정의는 줄어든다”고 경계했다. 그의 명저 ‘의무론’에 오랜 격언이라고 쓴 걸 보면 당시 로마인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원어(Summum ius, summa iniuria)를 직역하면 ‘극단적인 법 적용은 극단적인 불의가 된다’는 뜻이지만 의역으로 통용된다. 이 격언에는 법의 양적 팽창이 실질적 정의 실현보다는 처벌 위주의 형식적 적용, 자의적 해석, 법률가 중심 통치의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당이 된 후 내란청산과 개혁을 명분으로 입법 만능주의에 사로잡힌 느낌을 준다. 검찰청 폐지 법안 처리를 완료한 뒤 사법·언론개혁을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청래 대표가 사법·언론개혁도 연말까지 완수하겠다고 못 박은 걸 보면 기세를 짐작할 만하다.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유포하면 최대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해야 하는 법안은 언론의 권력감시와 견제기능 위축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언론사와 유튜버의 악의적 가짜뉴스 유포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상당한 오·남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언론계가 요구한 대기업 공직자 정치인 같은 권력자의 손해배상 청구권 배제 조항을 두지 않아 언론의 비판 기능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모든 언론 기관·단체가 이 법안에 반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언론비판을 위축시키는 ‘입틀막(입을 강제로 틀어막음) 소송’을 남발하지 않도록 특칙을 두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염려를 누그러뜨리기 어렵다. 선량한 국민이 입을 수 있는 명예훼손 등을 막고, 국민의 알권리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배경 설명은 모순된 논리나 다름없다.

                                                                                         


 보수 야당도 반대하는 법안을 상대적 진보 정당이 과거부터 끈질기게 추진하는 데서 순수한 의도가 부족해 보인다. 지금도 허위조작정보를 처벌할 수단과 방법은 모자라지 않는다. 가짜뉴스에 관한 처벌 수단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명예훼손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가짜뉴스를 규제할 수 있다. 애초의 언론중재법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돌렸으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큰 데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걱정도 지우기 힘들다.


 사법개혁법안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판·검사 법왜곡죄’ 법안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 같은 걸 먼저 떠올릴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판사나 검사가 고의로 위법한 수사나 판결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은 이미 있다. 판·검사의 불법행위는 공수처 수사로 처벌이 가능하다.


 대법관 증원, 4심제 역시 신중하게 공론화해야 할 사안이다. 민주당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건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이라기보다 자기편을 위한 법안을 서둘러 쏟아내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잠재우는 방안의 하나로 법 개정을 거론하는 일도 문재인정부의 트라우마를 연상하게 한다. 문재인정부 시절 투기를 근절하겠다며 밀어붙인 ‘임대차 3법’은 전월세 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졸속 입법으로 말미암아 국민이 피해를 떠안은 사례는 숱하다. ‘타다금지법’은 심야택시 대란을 불러왔다. 이른바 ‘정인이법’은 사건이 알려진 지 6일 만에 속전속결로 통과됐으나 한달 만에 재개정해야 했다. 강한 처벌만이 해결책이라며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민식이법’은 부작용이 심각하다.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해 제정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을 국민 70%가 모른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도 있다.

                                                                                           


 법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적 성격을 지닌다. 이 때문에 사회 전반에 걸친 규제영향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법 우선 원칙을 앞세운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법으로 풀어나갈 수는 없다. 입법 만능주의는 입법 과잉을 불러온다. 입법 과잉은 졸속·불량 입법으로 귀결된다. 그 피해는 늘 국민에게 돌아간다.


 한국 법률안 통계를 보면 1950년 119개였던 법률이 어느덧 16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한때 놀면서 고액의 세비를 받는다고 눈총을 받던 우리 국회가 이젠 법을 너무 쉽게 많이 만드는 게 문제로 꼽힌다. 한국 국회의원 1인당 통과 법안건수가 영국의 172배, 프랑스의 49배, 일본의 49배. 독일의 37배, 미국의 21배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익집단이나 특정 계층의 표를 의식한 대중영합주의 입법도 적지 않다. 입법 만능주의가 낳는 입법 홍수의 가장 큰 부작용은 법의 품질저하다. 본회의에 참석하는 의원들이 법의 기본적인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잘 만들지 않으면 고치는 데 더 많은 힘과 시간이 든다.


 법은 힘이 세다. ‘힘이 주인인 곳에서 정의는 하인’이라는 독일 속담을 되새겨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