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첨단산업 인력 양성에 사활을 걸어라

김학순 2025. 7. 11. 23:22

 한국이 모진 고난을 극복하고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은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워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가진 게 사람밖에 없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접어든 지금 인공지능(AI),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의 고급 인력이 부족해 경쟁력이 뒤처질 것으로 우려된다. 첨단인력 부족 현상이 윤석열정부가 수요예측부터 엉터리로 하는 바람에 생겼다니 어이가 없다. 한심한 일은 지난주 감사원의 ‘4차 산업혁명 대응점검(인력양성 분야)’ 결과에서 드러났다.


 윤석열정부는 2031년까지 반도체 분야의 필요 인력보다 5만4000명이나 적게 추산했다. 전체 필요 인력 가운데 1/6이 채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반도체 인력양성 계획 수치에는 심지어 반도체 기업 재직자까지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교육부가 디지털 인력 공급 확대 방안에 AI,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메타버스, 5G와 6G, 빅데이터, 일반 소프트웨어, 사이버 보안 같은 8개 세부 기술 대책은 마련하지도 않았다. 이런 분야에선 많게는 수만 명의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 양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인력의 질도 심각하다. 반도체 관련 학과를 운영하는 43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산업계 요구사항이 교육과정에 반영된 비율은 42%에 불과했다. 필수 장비 보유도 30% 수준에 그친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반도체 핵심기술 수준을 대부분 추월했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다. 일본과 대만도 팹리스와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 주도로 인재 양성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일본은 올해 안에 7개 반도체 거점대학을 선정하는 것과 동시에 파격적인 지원으로 인재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 패권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미래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고급 인력 부족은 AI 3대 강국 진입을 기치로 내건 이재명정부의 성장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투자 100조원을 공약했으나 구체적인 인재 양성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아무리 멋진 정책도 고급 인력 없이는 ‘모래 위에 쌓은 성’과 다름없다. 하정우 대통령실 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이 인재 양성의 절박함을 강조했을 뿐이다. 

 

  한국은 아직 AI 분야 경쟁력이 최상위권이라고 자부하지만 1, 2위인 미국, 중국과는 격차가 크다. 싱가포르, 영국, 캐나다도 한국보다 앞서간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발표한 ‘AI 기술 성숙도’로는 한국이 ‘2군’으로 분류된다. 독일, 대만, 일본, 프랑스,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23개국이나 여기에 속한다. 한국이 보유한 AI 전문 인재는 전 세계 AI 인재 풀의 0.5%에 그친다는 분석도 있다.


 첨단 인력양성은 의대 정원 문제와도 직결된다.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전에도 이과계 최우수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국가 인력 구성의 블랙홀이었다. 최우수 인재 대다수는 전국의 의대 정원을 다 채우고 나서야 다른 이공계열 학과를 지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수한 이공계 신입생 가운데 다수가 의대를 목표로 재수하기 위해 휴학을 하거나 자퇴하기도 한다. 

 

  주요 대학이 정부 지원으로 AI 반도체 대학원과 계약학과를 개설했으나 입학생 충원율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의대 증원과 맞물려 있다. 윤석열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을 크게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더욱 희망하게 됐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인재들의 집중적인 의대 지원 경향이 한국 과학기술 경쟁력을 갉아먹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최고 인재들이 의대뿐만 아니라 전자공학, 화학공학, 물리학 등 자연계의 다양한 학문 분야에 진학해 오늘날의 과학기술 토대를 닦았다. 숙제로 남은 의대 정원 조정 과정에서 큰 폭 증원을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첨단 인력양성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애써 키운 인재들도 다른 나라에 수없이 빼앗기고 있다. 2024년 인구 1만 명당 AI 인재가 0.36명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AI 인재 유출 4위다.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연구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일도 필요하다. 외국인 연구자들이 주로 계약직 일자리를 얻거나 임금 수준이 낮은 국내 현실 때문에 다른 나라로 떠난다고 한다. 첨단 인재를 육성하려면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빈틈없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첨단 인력 양성과 확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