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탄핵 반대’로 치르는 국민의힘 대선
정치에서 이보다 극적인 반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직전 집권당인 국민의힘 대선 최종후보는 막장드라마 같은 곡절 끝에 김문수 경선 승리 후보로 귀결됐다. 김 후보는 선출 일주일 만에 낙마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친윤’ 지도부는 여론조사에서 앞선다는 이유만으로 당내 경선을 껍데기로 만들고 한덕수 전 총리를 후보로 무리하게 옹립하려다가 사달을 일으켰다.
이번 사태는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삼아 저지른 정당 민주주의의 퇴행을 경고한 선례로 남을 게 분명하다. 정치공학에 매몰돼 상식을 벗어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 탈이 나고 만다는 교훈적 사례로 안성맞춤이다. 불법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를 파탄한 전직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당내 민주주의까지 훼손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정치 행태가 참담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선은 경선대로 치른 뒤 다른 한편에선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한 전 총리를 떠밀어 단일화하라고 한 것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뒷말을 낳았다. 당에 아무런 기여를 한 적이 없는 탄핵정권의 총리를 모셔오니 ‘또다시 용병’ ‘꽃가마’ ‘부전승(不戰勝)’ ‘무임승차’ 같은 온갖 불공정 언설이 난무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시도는 명백한 꼼수였다. 당 지도부가 대선 후보자로 등록하기 위해 지난 10일 새벽, 1시간 안에 구비 서류 32가지를 제출하라고 공고한 일은 한덕수 후보를 유일 후보로 만들기 위해 짬짜미를 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어려운 임무를 수행한 것은 당연히 한 후보뿐이었다.
국힘이 내세운 후보교체 사유는 단일화 약속 파기와 당원 기만행위, 더 경쟁력 있는 인물이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는 점 같은 4가지였다. 단일화 무산의 책임을 사실상 김 후보에게 돌리고 한 후보가 당의 대선 후보가 돼야 하는 이유를 역설하는 내용이었다.
경선 과정에서 단일화를 22번이나 외친 김 후보도 물론 비판받았다. 그렇다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 노회하기 그지없는 70대 정치인이 호락호락 양보하리라 믿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생각은 순진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지율만 믿고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짧은 시간 안에 후퇴한 전례를 한 전 총리는 너무 쉽게 보아 넘겼다. 자부심이 가득했던 그의 ‘명예로운 50년 공직 생활’이 오명과 더불어 대선 출마 선언 8일 만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천신만고 끝에 후보 자리를 지켜낸 김 후보에겐 ‘친윤’ ‘탄핵 반대’ 물을 빼는 게 급선무다. 김 후보는 계엄을 옹호하진 않았지만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편들었다. 중도 표심을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말 바꾸기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기존 태도에서 변화해야 한다.
그런데도 김 후보는 반대로 간다. 대선 지휘의 핵심 인사인 당 사무총장에 ‘친윤’ 박대출 의원을 내정했다. 박 의원은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도 방청을 위해 헌법재판소를 찾아 “12.3 계엄이 국헌문란이 아닌 것은 법리상 명백해졌다”고 주장했다.
‘친윤’ 탈색이 중요한 터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응원이랍시고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승리할 수 있다”고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계엄과 탄핵에 대한 김 후보의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는 중도층 확장은 꿈꾸기 어렵다. 김 후보는 “즉시 선대위를 출범시키고 빅텐트를 세워 반(反)이재명 전선을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개혁신당 옛 민주당계 인사들까지 아우르는 ‘반명 빅텐트’로 이재명 집권을 저지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김문수-한덕수 간의 단일화가 사실상 실패해 빅텐트의 첫 단추부터 꼬였다.
새로운미래 이낙연 상임고문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다른 후보들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드러내 빅텐트 추진 동력이 떨어졌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빅텐트는커녕 찢어진 텐트”라며 빅텐트에 합류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궁극적으로 빅텐트가 세워질지 의문이지만 그나마 ‘친윤’ ‘탄핵반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후보단일화 내홍은 대선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피 터지는 싸움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이 가장 중요한 국정 청사진을 보여준 것도 없다. 이재명 반대만 외친다고 표가 저절로 모일 리 없지 않은가.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