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 달, ‘미국을 다시 저열하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한달은 지구촌을 공포와 경악, 혼란과 당혹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일로 점철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막상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 80년 동안 나름대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규범을 주도해왔다고 자부한다. 이를 트럼프가 일거에 허물고 약육강식의 아프리카 사파리처럼 바꾸고 있다는 세계인의 공분이 거세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73가지 행정명령(각서·포고문을 포함하면 111개)에 서명해 한달 만에 무려 8년 치에 해당하는 개혁을 추진했다고 자랑했다. 트럼프 발 ‘퍼펙트 스톰’의 위력은 집권 1기 때와 비교불가다.
행정명령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세계보건기구,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와 인권이사회 같은 국제기구 탈퇴다. 기후위기가 중국이 지어낸 사기라면서 두번씩 결행한 파리협정 탈퇴는 세계 탄소배출량 2위인 미국이 의무에서 벗어나겠다는 만행에 가깝다. 인류가 힘을 합쳐 기후파국을 막아낼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코로나19 같은 세계적 전염병 확산(팬데믹) 대응의 첨병인 세계보건기구 탈퇴로 또 다른 팬데믹이 온다면 국제공조가 어려워 참사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 첫 임기 때도 탈퇴했던 걸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복귀시켰으나 이번에 모두 뒤집었다. 트럼프는 세계질서의 기본인 국제법과 국제제도를 혐오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흔드는 발언도 거리낌없이 한다. 하나같이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미래세대 삶을 볼모로 삼는 대중영합주의다.
트럼프는 미국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해 지중해 휴양지 리비에라처럼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아랍권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곳 주민을 이집트 요르단 같은 인접 아랍국가로 강제 이주시키겠다는 생각은 실현가능성과 별개로 제국주의 발상이라고 비난받는다. 200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의 강제이주는 ‘인종청소’ 같은 반인도주의적 행위여서 국제사회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트럼프는 동맹 위협도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일상화한다. 이웃나라를 상대로 조폭 같은 협박이나 인권 유린도 서슴지 않는다. 침략당한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제쳐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전쟁 종식 뒷거래는 남의 일 같지 않다.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애초에 전쟁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쏘아붙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의 전쟁 지원액보다 훨씬 많은 5000억달러(720조원)어치에 해당하는 희토류 광물 50% 지분을 우크라이나에 요구한다. 미국의 우크라이나전쟁 지원액은 트럼프 주장처럼 3500억달러가 아니라 1190억달러 정도인데도 그렇다. 우크라이나 처지에서 보면 날강도나 다름없는 행태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동맹도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됐다. 이런 트럼프를 어떤 나라가 믿을 수 있겠나. 우크라이나처럼 힘없는 나라의 현실은 트럼프 시대에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가 마주할 미래처럼 보인다.
트럼프를 보면 누가 적이고 누가 동맹인지 헷갈린다. 최우방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도리어 비난만 받는 실정이다. 트럼프의 2인자인 J.D. 밴스 부통령은 뮌헨 안보회의에서 유럽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발언으로 트럼프의 본색을 드러냈다. 밴스는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왔다”며 내정간섭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트럼프는 파나마운하에 대한 미국의 관리권을 주장하고,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의중도 확실하게 드러냈다. 미국보다 큰 캐나다는 51번째 주로 편입하라고 놀려댔다. 400년 이상 사용하던 ‘멕시코만’의 이름을 느닷없이 ‘아메리카만’으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전세계에 선포한 관세전쟁은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질서를 무너뜨린다. 온 지구촌을 들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모두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멋진 구호로 포장됐다. 이 구호가 실제로는 트럼프 1기 때처럼 ‘미국을 다시 저열하게(Make America Low Again)’로 구현되는 듯하다. 지구촌을 공포와 협박에 떨게 한다고 미국이 위대해지겠는가.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