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한강 노벨문학상이 못마땅한 수구보수

김학순 2024. 10. 19. 17:53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지난 목요일(10일) 저녁 8시가 갓 지날 무렵 영시공부모임 단체대화방에 ‘한 강 노벨문학상 수상!’ 아홉 글자가 떴다. 누군가 희망사항을 장난삼아 올렸겠지 여겼다. 곧이어 ‘진짜? 믿기지 않은 쾌거입니다.’ ‘브라보!’ ‘우와!!!’ ‘오!’ 같은 문자가 속속 올라왔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보고 주요 신문 인터넷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긴급 속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가짜뉴스구나! 하고 말았다. 조금 뒤 국제뉴스를 가장 빨리 전하는 연합뉴스 사이트에서 ‘[1보] 노벨문학상에 한국 소설가 한강’이라는 제목만 있는 속보를 발견했다. ‘진짜구나!’ 그제야 문학적 수사가 필요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사실 오랫동안 스스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희망고문해 온 한국인들은 ‘아직은’이라는 체념상태에 빠져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눈물이 고였다.” 시민들은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탄생에 환호작약했다. “살다 보니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서로 읽는 날이 다 오네.” 자연스레 온오프라인 서점은 야단법석이었다. 노벨상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한 강 작가의 책이 30만부 넘게 팔렸다. 출판사들은 주말과 밤을 아랑곳하지 않고 증쇄에 나섰다. ‘즐거운 비명’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 같다.


 한 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족적임에 분명하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부에 올라서는 전환점이 됐다는 사실이 더 값지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세계에 열풍을 몰고 온 한국 문화(K-컬처)가 화룡점정하고 도약했다는 뜻이 담겼다.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세계 1위를 거머쥔 K-팝,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각종 시청 신기록을 세운 드라마 ‘오징어 게임’,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을 낳은 클래식 음악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위상을 과시한 한국 문화가 문학에만 작은 공간을 남겨 두고 있었다. 한 강의 노벨문학상은 그 공간을 채운 셈이다.


 한편에서는 한 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아니꼬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한 강 작가가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수상의 쾌거를 이뤘지만 정작 한국에선 이를 폄훼하거나 모욕하려는 마음이 온존한다.


 보수신문들의 한 강 작가 기사에 달린 수천건의 댓글은 대부분 그가 역사를 왜곡하고 좌파 이념에 치우친 작품을 썼다는 이유를 들이대고 비난한다. 작가의 생각과 활동을 공격하는 혐오 발언도 적지 않다. 그가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을 들어 입에 담기 어려운 지역감정을 배설하는 이들도 숱하다. 아시아, 여성, 좌파라서 수상했다고 저격하는 글도 수두룩하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세 여인의 시선으로 담아낸 ‘작별하지 않는다’를 주된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극우성향 남성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나 ‘일간베스트’ 같은 곳에는 한 작가를 ‘친북 소설가’ ‘폭동을 미화하는 소설가’ ‘억압받는 소수자의 전형’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도 보인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 보수신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현역 여성 소설가가 한 강의 수상을 극언으로 폄훼한 사례다. 수구보수 작가로 불리는 김규나는 수상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이번 노벨문학상을 깎아내리는 긴 글을 몇 차례 올렸다. ‘(한 강이) 시대의 승자인 건 분명하나 역사에 자랑스럽게 남을 수상은 아니다. 꼭 동양권에 주어야 했다면 중국의 옌롄커가 받았어야 했다. 올해 수상자와 옌롄커의 문학은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무게와 질감에서, 그리고 품격과 감동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둘을 비교하고도 그녀를 선택한 거라면 한림원 심사 위원들 모두 정치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혹은 명단 늘어놓고 선풍기 돌렸을 거다. 아님 여자라서?”


 그는 “(노벨상) 수상 작가가 써 갈긴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부분이 역사 왜곡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많은 언론이 이 글을 기사화했다.


 보수진영 내에서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폄훼하는 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그릇된 사고관이 원칙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 보수는 영원히 고립만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른바 보수에서 인류에 공헌하는 위대한 소설 영화 음악 미술의 걸작이 나오지 않는, 아니 나올 수 없는 이유를 댓글들을 보고 알게 됐다’고 따끔하게 지적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만 칭송하고, 환상에 도취해 자기 나라를 찬양하는 ‘국뽕 잔치’를 벌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뒤틀린 성정으로는 건강한 공동체를 영위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