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개혁의 기본을 모르는 대통령의 개혁

김학순 2024. 9. 27. 20:22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까닭은 언제나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는 난제 때문이다. 개혁을 저돌적인 의지만으로 이뤄내기란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연금·의료·교육·노동의 4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취임 6일 만에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임기 절반 가까이 되도록 선행 개혁과제는 물론 올해 초 추가한 의료개혁에 이르기까지 이렇다 할 결실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개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개혁의 기본을 모르는 탓이 크다. 모든 개혁에는 세밀한 사전 정지작업과 각고정려한 설득의 리더십이 필수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스타일로 말미암아 개혁의 동력을 꺼트리는 일이 더 잦았다. 개혁의 선봉장으로 내세운 인물들은 설득자이기는커녕 애물단지처럼 됐다.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말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갈파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사회심리학자가 이를 실험 결과로 증명하기도 했다. 코넬대 심리학교수 데이비드 더닝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는 ‘무식하면 용감해지고 알면 겁쟁이가 된다’는 흥미로운 실험을 바탕으로 ‘더닝-크루거 효과’ 논문을 발표했다.


 국민 대부분이 동의하는 의료개혁은 실행 방식이 무모하고 거칠었다. 과학적이라던 ‘5년간 2000명씩 입학정원 증원’이라는 수치부터 현실성이 없었다.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라고 입증할 회의록도 없애버렸다니 어이가 없다. 대통령이 총선용으로 제시한 의료개혁안은 의정(醫政) 갈등만 키웠다. 의사와 학생들의 반발로 인한 의대교육 파행과 의료 붕괴의 장기화가 걱정스럽다. 선진 의료수준의 퇴행을 감수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 대상인 의사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꼼꼼한 실행계획도 없이 밀어붙이기만 했다. 의대 교수를 최소 50%를 추가로 뽑아야 하고 강의실, 기자재, 실습병원 병상도 늘려야 하지만 면밀한 계획이 없었다. 개혁을 앞장서 추진하는 인물은 외려 ‘공적(公敵) 1호’가 됐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사를 비하하는 ‘의새’라는 표현을 썼다가 여권에서마저 사퇴 압박을 받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의료개혁 동반자인 의사집단을 적대시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낙제점을 받은 가장 큰 이유로 의대 증원이 꼽힌다.


 노동개혁 역시 현실을 모르는 대통령의 거친 입 탓에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시대를 거스르는 ‘주 69시간제’를 먼저 던졌다가 역풍을 맞았다. 장시간·압축노동은 국가적 위기인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건설노조 파업에 강하게 대응해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윤 대통령은 개혁을 만만하게 여겼다.


 윤 대통령은 노동개혁을 선두에서 지휘해야 하는 고용노동부장관에 ‘반노동 인사’로 찍힌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해 개혁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김 장관은 오랫동안 노조혐오, 극우편향 행보, 부적절한 역사관까지 드러내 공직자 자격조차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노동개혁이야말로 입법이 필요한 터여서 노동계와 거대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이 절실했다.

                                                                                       


 백년대계 정신으로 추진해야 할 교육개혁은 늘봄학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같은 비본질적인 분야에 그쳤다. 그나마 학교 현장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디지털기기 사용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가 크다. AI 디지털교과서 안착을 위한 교사 연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높다. 9대 개혁 과제를 내세웠으나 개혁이라 부르기 섣부르다는 평가가 대세다. 중요하지만 저항이 거셀 개혁과제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교육 카르텔 혁파’를 내걸었지만 공교육 구조개혁엔 손도 대지 못했다. 임기 초반 초등학교 입학 나이 기준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개혁안을 불쑥 내놓았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철회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최우선 순위에 뒀던 연금개혁은 21대 국회 때 여야 합의안을 무산시킨 이후 최근에야 정부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국회 논의와 시민 숙의를 존중하기는커녕 사실상 무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금개혁은 복잡한 협상이 필요한 분야다.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에 대한 찬반여론은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격차는 크지 않지만 반대 응답이 찬성 답변보다 높다.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보험료 인상을 부담해야 하는 30·40대는 절반가량이 반대한다.(한국갤럽 )


 개혁은 사람의 힘으로 거대한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될 정도로 어렵다. 여러 개혁 과제는 서로 얽히고설킨 연립방정식이다. 여소야대 구도와 낮은 국정 지지율은 개혁을 더욱 어렵게 한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인 20%(갤럽 조사)를 맴돈다. 신뢰는 개혁의 기초다. 개혁은 궁극적으로 개혁대상의 마음을 얻어야 성공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