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보면 리더의 미래가 보인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A급 인재만 뽑기로 유명했다. A급 인재가 있는 기업에는 뛰어난 사람이 끊임없이 모여들지만 수준 이하의 직원을 채용하면 A급 직원까지 떠나간다는 이유에서다. S급 인재인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 마크 뉴슨 같은 특급 디자이너를 발탁해 세계적인 성공을 구가했다.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최고경영자(CEO) 에드윈 캐트멀도 비슷한 철학을 지녔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별 볼일 없는 팀에 건네면 훌륭했던 아이디어마저 엉망이 된다. 별 볼 일 없는 아이디어를 훌륭한 팀에 넘겨주면 예상치 못한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조직은 리더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B급 리더는 A급 부하를 관리할 수 없다. B급 리더는 A급 인재를 쓰지 않는다. 자기가 B급이라는 게 들통이 날까봐 두려워서다. A급만 A급을 제대로 알아본다. 리더는 성과 창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다.
총선 참패 이후 지난주까지 마무리한 개각과 대통령실 인사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A급 지도자인지 여전히 확신을 주지 못한다. 전반 2년간의 인사 난맥상은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와 정부부터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새로 발탁한 인물은 상당 부분 A급으로 평가할 수 없다. 능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잦은 문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거나 지나치게 이념편향적인 사람이 수두룩하다. 적재적소가 아닌 사례도 적지 않다. 국정쇄신을 갈망하는 민심에 한참 못 미친다.
우선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를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나라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따른 역사서술로 논란을 일으킨 ‘반일 종족주의’(공저)를 쓴 인물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징용과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볼 학술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주장을 담아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여러 가지 논란에도 임명을 강행했다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에 빠졌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급 방송통신위원장 세 명은 모두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거나 가결 직전 사퇴하는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김완섭 환경부장관은 환경 분야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어서 적재적소와 거리가 멀다. 대통령실은 “환경도 경제”라며 견강부회나 다름없는 주장을 천연덕스럽게 폈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반노동’ ‘극우’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될 때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통령실은 노동개혁 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지만 야당과 노동계에서는거부감이 강하다. 보수진영조차 윤석열정부 3대 개혁과제의 하나인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드러낸다.
막상 시급히 임명해야 할 장관 자리는 오랫동안 방치하고, 바꿔야 할 사람은 바꾸지 않았다. 여성가족부장관은 6개월째 임명하지 않고 있다. 논란 끝에 자진사퇴한 김 행 후보자 이후 여성가족부를 ‘식물부처’로 만들어 버렸다. 존치도 폐지도 아닌 파행상태로 내팽개친 것은 직무유기다. 이태원 참사 이후 줄곧 문책 여론이 쏟아진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아끼는 최측근이라는 배경 하나로 자리를 지킨다.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과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의대 증원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유 때문에 유임됐다.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이나 비서관급 인사는 총선 낙천·낙선자 구제에 방점이 찍혀 ‘보은성 인사’ ‘돌려막기’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국정농단사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성씨를 대통령실 시민사회3비서관에 기용한 것은 대통령의 판단력에 의문부호를 찍었다.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중점 국정과제인 노동·연금·교육·의료 4대 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산적한 노동개혁 현안은 하나같이 입법 과제들이다. 노동계 설득과 야당 동의 없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무모하게 밀어붙인 의대정원 확대 강행은 개혁 효과는커녕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의료체계를 단숨에 망가뜨렸다. 국민연금 개혁은 1년 지체될 때마다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재정 부족분이 연평균 52조원씩 증가한다. 매일 1425억원씩 늘어나는 꼴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나서기만 하면 요절난 국정이 숱하다. 임기 절반 이상을 남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국민이 너무나 많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