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석유탐사 발표와 다이아몬드 광산개발 사기
윤석열 대통령의 동해 석유탐사 발표를 듣고 불현듯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개발 사기 사건’이 떠올랐다. 두 사례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공기업과 사기업의 자원개발에 정부가 언론발표로 주가변동을 비롯한 국민적 관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2010년 12월 17일 외교통상부는 자기들의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례적인 보도자료 하나를 냈다. ‘CNK가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전세계 연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3배에 달하는 4억2000만 캐럿 규모의 대형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확보했다.’ 해외자원개발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던 이명박 정부임을 참작하더라도 외교부가 사기업을 홍보하는 것은 상례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이 보도자료가 배포되자 하루 전 3400원이었던 ‘CNK 인터내셔널’(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업체)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2011년 1월 11일 주가가 4배 이상 치솟아 최고 1만8500원까지 올랐다. 2010년 매출 53억원, 영업적자 49억원을 기록한 개발업체의 시가총액이 1조원에 이르렀다.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과장됐다는 의혹이 잇달아 제기됐다. 2012년 1월 감사원이 외교부가 사실을 부풀렸다고 발표하면서 일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CNK 인터내셔널 대표는 구속 기소돼 형사처벌을 받았다. 당시 국무총리실과 정권 실세까지 연루돼 이명박정부가 주도했던 자원개발외교의 대표적인 추문으로 남았다.
CNK는 카메룬 요카도우마 지역의 다이아몬드 광산 탐사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광산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 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매장량을 산정할 수 없었다. 매장량은 부존 확실성에 따라 확정매장량 추정매장량 예상매장량 잠재부존량 등으로 구분한다. CNK의 탐사수준은 잠재부존량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회사 대표는 다이아몬드 추정매장량이 4억2000만 캐럿이라는 탐사보고서를 외부평가기관인 ㅅ회계법인에 제시했다. 정부 핵심인사를 단장으로 한 민관합동대표단의 카메룬 방문도 성사시켰다.
‘다이아몬드게이트’로 불린 대국민 사기극은 ‘꾼들’이 벌이는 단순한 주가조작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은 물론 친·인척까지 주식을 사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피해를 본 것은 당연히 개미들이었다. 2015년 5월 이 회사는 끝내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윤 대통령의 ‘140억 배럴 석유 가스 매장 가능성’ 발표도 상당한 부작용을 감내해야 할 개연성이 크다. 이미 관련 주식의 등락을 겪었다. 윤 대통령의 발표 내용은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못지않게 과대포장됐을 수 있다. 석유·가스 매장량의 핵심은 경제성에 달렸다. 대통령이 언급한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은 지금까지의 인근 지역 탐사 결과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동해에 석유·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소식도 아니다. 이미 20곳 이상의 시추(試錐)가 있었다. 이 가운데 한곳에서 천연가스와 초경질유 4500만 배럴을 생산하고 끝냈다. 이 지역에서는 더 나올 곳이 없다고 판단한 로열더치셸 같은 글로벌 에너지기업들이 떠났다.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15년 이상 이 지역에서 직접 시추해 다양한 데이터를 지닌 호주 우드사이드사도 지난해 1월 철수했다.
윤 대통령이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 검증도 거쳤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소규모 미국회사 하나가 시추 전의 평가를 내렸을 뿐이다. 석유공사가 제공한 데이터만으로 분석한 액트지오 회사의 추정과 판단이 동해 시추를 밀어붙이는 유일한 근거다. 이 회사는 석유공사와 계약 당시 법인 영업세를 체납해 4년 동안 법인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CNK의 이사를 맡고 있던 국내 지질학 교수가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4억 캐럿에 이른다고 평가한 보고서 하나가 고작이었던 다이아몬드게이트와 어쩐지 흡사하다. 급기야 액트지오사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한국으로 날라와 기자회견을 연 것도 국제적 소극(笑劇)거리가 됐다.
아브레우 고문은 기자회견에서 “상당한 규모의 경제성 있는 탄화수소의 특징은 찾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탄화수소 확인 없는 시추탐사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석유공사가 이명박정부 시절 ‘자원외교 1호’로 추진한 쿠르드 유전개발에 투입한 1조원을 날린 뼈아픈 실패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단계의 기대치를 높여 놓아 경제성이 없더라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무리한 시추를 계속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사업 추진과 행정에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공직자들의 생리다.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재무 부담으로 나라 경제에 해를 끼치는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통령이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소 잡는 데 써야 할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건 무모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