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돈오돈수’ 수행과 윤석열 정치

김학순 2024. 4. 18. 20:47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불교계의 쟁점 가운데 하나가 ‘돈오돈수 돈오점수’ 논쟁이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단박에 깨달으면 그 이후에는 수행이 필요없다는 견해다. 문자 그대로는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라는 뜻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는 단박에 깨치고 점진적인 수행을 거쳐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관념이다. 이처럼 논점은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론이다.


 돈오돈수를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은 고려 말의 국사 보우다. 현대 인물로는 성철스님이 있다. 이들은 한번 깨달았으면 그만이지 뭘 또 수행하느냐는 주장을 편다. 수행이 더 필요하면 깨달은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견해는 중국 선종 육조 혜능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


 돈오점수를 주창한 대표적인 사람은 고려 말의 보조국사 지눌이다. ‘한번 깨쳤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서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로 가야 한다.’ 돈오돈수는 근기(根機)가 높은 사람(고단수)에게 알맞다고 한다. 혜능스님도 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종교 수행과 똑같이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이 깨달음 방법론은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돈오돈수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일하다가 단박에 정치를 깨달았다는 듯이 출마해 당선했다. 그 뒤 수행 같은 것은 필요없다는 자세로 2년 동안 독불장군 같은 정치로 일관했다. 그 결과가 집권당의 총선 참패로 나타났다.

                                                                                                 


 대통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아야 한다. 연주자가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도록 이끌되 전체적으로 최적의 화음을 만들어 내야 유능한 지휘자다. 오케스트라만큼 복잡미묘한 것도 드물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돈키호테처럼 깃발을 휘날리며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스타일이다. 정치를 배우지 않고도 단박에 깨달아 짧은 기간에 큰 어려움 없이 당선되어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2년을 보냈다. 정치 초보자이지만 주위에서 학습능력이 탁월하다는 아부까지 해 기고만장할 법도 하다.


 국민의힘 총선 참패는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방식에서 귀결했다는 게 언론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공정과 상식’을 무기로 집권한 대통령이 실제 국정은 그와 반대쪽으로 갔다. 배우자 관련 각종 의혹에는 얼버무리거나 침묵하고,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관련된 전 국방부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출국하게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총선을 눈앞에 두고 ‘내로남불’의 위선을 떳떳하다는 듯이 과시한 건 최소한의 정무감각조차 없다는 방증이 아닐까. 이런 대통령의 모습은 조국혁신당의 돌풍을 불러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의대 정원 증원 같은 호재마저 외려 악재로 만드는 재주는 정무감각이 낙제점임을 증명한다. 교육 여건을 무시한 채 다다익선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2000명 증원을 통 크게 밀어붙여 진퇴양난을 자초했다. 총선 직전 의사들을 달래는 취지의 담화는 소통이 뭔지 모르는 사람 같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나는 옳고 너희는 모른다’는 인식의 대표적인 사례다. 스스로는 뚝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민심은 불통이라고 여긴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대개 정교하게 접근해야 할 중대한 국정현안을 일단 저질러놓고 윽박지르는 방식이었다. 인사 노동개혁 교육 대형참사 언론문제 같은 현안은 하나 같이 그랬다. 경제와 민생 분야도 그저 뚝심 하나로만 밀고 나갔다.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라는 해외 언론의 평가도 있었다.


 뺄셈정치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패착의 하나다. 윤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뒤 뺄셈정치로 일관했다. 이준석 유승민 안철수 나경원 같은 당선 공헌자들을 내치거나 적으로 돌려 지지층의 표를 깎아 먹었다. 취임 이후 2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비상대책위원장 3명을 포함해 여당 대표가 다섯번이나 바뀌는 우여곡절은 대통령의 아마추어 정치에서 비롯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 요인 가운데 인사 참사가 큰 몫을 차지한다. 고위직에 문제적 인물이 넘쳐나고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검찰 출신을 요직 곳곳에 기용해 ‘검찰공화국’이란 비판을 듣기 일쑤였다. 자신이 잘 아는 사람, 같이 일해본 사람들을 주로 써 인재 풀이 좁기 그지없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여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긴 것도 ‘돈오돈수’와 흡사하다. 정치를 잘 모르면서 단박에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도 닮았다. 장관 시절 야당 국회의원들과 말싸움에서 이겨 인기를 얻은 것을 실력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정치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몰라서다. 보수 유권자들이 정치경험 없는 돈오돈수형의 새롭고 화끈한 정치인에게 환호성을 질러 생긴 현상인 듯하다.


 정치 고단수가 아닌 윤 대통령이 ‘돈오돈수’를 고수하면 남은 임기 3년 역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총선 결과로 이미 사면초가에 빠졌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