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보호는커녕 짓밟는 인권위원들
자유와 인권은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때 ‘자유’라는 단어가 빠지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인권을 입에 올릴 때는 많지 않았다. 북한 인권을 역설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래선지 윤석열정부의 고위 인사나 인권 관련 인사들은 ‘인권’이란 말과 친화적이지 않다. 행동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자유와 인권이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시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들이 유달리 지탄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새삼스레 놀랍지 않다. 지난주에도 윤 대통령이 지명한 상임 인권위원이 반인권적 언행으로 상식을 믿는 이들을 비분강개하게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심의하는 전원위원회에서 문제적 발언을 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 알고 있는데 자꾸 (얘기를) 꺼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 김 상임위원은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을 꼬투리잡아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김 상임위원은 국제정세가 북한 중국 러시아로 이뤄지는 블록이 있고, 이에 효율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여기서 “일본군 성노예제 ‘타령’을 할 거면…”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 극우 진영의 인식과 다름없는 막말이다. 국민의힘 몫으로 추천된 이충상 상임위원도 이 회의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관련 부분을 보고서에서 빼야 한다며 반대에 가담했다고 한다. 본연의 임무인 인권보다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오는 5월 한국정부를 대상으로 심의하고 이때 제출할 보고서에 상식적인 요구가 담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기본 인식은 오랫동안 여야나 진보 보수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문제를 일본과 합의했던 박근혜정부도 국제사회에서 인권으로 접근했던 터다. 피해자들은 물론 시민단체와 야당이 격한 비판을 쏟아내고 두 사람의 사퇴와 윤 대통령의 해촉을 요구할 정도면 얼마나 심각한지 알만하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꺼내야 하는 까닭은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엔의 여러 기구와 위원회는 한결같이 일본정부에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자에 대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배상’을 촉구해 왔다. 한국의 고등법원도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음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했다.
두 상임위원의 반인권적 만행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놀러 가서 죽은 참사”라고 하거나 노조의 파업을 “떼쓰는 것”이라면서 여러차례 피해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이 위원은 입에 담기 어려운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했다. 군 신병훈련소 인권상황 개선을 권고하는 인권위원회 결정문 초안에 성소수자 혐오 소지가 있는 문구를 넣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군 인권보호관을 겸하고 있는 김용원 상임위원은 인권위에 항의하러 방문한 군 의문사 유가족들을 불법건조물 침입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였다. 인권단체들은 이토록 노골적이고 지속적인 추태를 보이는 사례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이런 두 위원은 공식회의 석상에서 각종 혐오·차별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인권단체들로부터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인 두 상임위원은 판사 검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인권보호에 적극적이어야 할 인물들이다. 국가인권위는 사법기관처럼 제삼자 관점에서 소극적으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이들의 행태는 윤석열정부의 인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석열정권은 기실 입으로는 자유를 말하면서 수사기관을 앞세워 노동자 농민 학생 장애인 언론인 등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을 탄압해 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민주주의 리포트 2024’는 한국을 민주주의 하락세가 뚜렷해 ‘독재화’가 진행 중인 나라로 분류해 인권상황을 간접적으로 전해주는 듯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