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3년차 다 되도록 꼬리표 못 뗀 ‘인사 난맥’

김학순 2024. 1. 12. 10:28

 사람 쓰는 걸 보면 리더의 능력이나 그릇이 금방 드러난다. 청나라 전성기를 구가한 옹정제는 "나라를 다스림에 용인(用人)이 근본이며 나머지는 모두 지엽적인 일이다"라고 했다. 2500여년 전 공자 이래 ‘인사가 모든 일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흔들리지 않고 내려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틀 뒤면 임기 1/3을 지나는 윤석열 대통령은 ‘가장 큰 문제가 인사 난맥’이라는 만년 꼬리표를 떼지 못한다. 집권 3년 차를 앞두고 윤 대통령이 잇달아 단행한 인사를 본 뒤 "중소기업 사장들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라는 개탄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윤 대통령의 인사는 적재 적소 적시의 3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천하의 인재를 구하겠다는 생각보다 ‘아는 사람’을 돌려막는 행태가 굳어졌다. 그것도 친정인 검찰 출신 인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단조롭고 즉흥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6개월 차관’ ‘3개월 장관’ ‘1개월 대통령 실장’ 같은 계획성 없는 인사를 거리낌 없이 한다.


 지난해 여름 장관을 교체하는 대신 국정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명분 아래 대통령실 비서관 7명이나 차관으로 내려보냈다. 자연스레 장관들의 통솔력은 허물어졌다. 부처 공무원들이 실세 차관 말만 듣고 장관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장관이 전권을 갖고 스타 장관이 되라고 한 당부는 당연히 무효가 됐다.

                                                                                     


 그렇게 투하된 낙하산 차관들은 총선 출마를 위해 6개월 만에 이력서 세탁만 하고 그만뒀다. 석달 전 취임한 산업통상자원부장관도 총선 출마를 구실로 교체했다. 큰 잘못 없는 장관을 3개월 만에 바꾼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선례를 찾기 어렵다. 그지없이 무거워야 할 국정이 공기놀이하듯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막중한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달 만에 돌려막았다. 한 달 전 대통령 정책실장 자리를 새로 만들어 중책을 맡긴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끌어다 쓴 것은 쓴웃음조차 아까운 인사다. 이관섭 새 비서실장은 2022년 8월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명됐다가 직명만 바뀌어 국정기획수석으로 일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 도덕성은 생략한 채 전문성 인사를 약속했다. 그런 다짐마저 어긴 사례가 숱하다. 전문성이 전혀 없는 ‘아는 형님’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돌려막기했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들어온 터에 방송통신위원장까지 검사 출신을 임명하니 보수언론들조차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고 힐난했다. 그것도 권익위원장으로 임명한 지 5개월 만의 회전문 인사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오영주 외교부 2차관을 발탁한 것도 전문성과는 동떨어진 인사다. 대사에서 차관이 된 지 5개월 만이다. 35년간 외교 업무만 해온 외교관에게 국가 경제의 조타수를 맡기니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배구대표팀 감독을 발탁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돌려막기 회전문인사로 일관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주미대사로 임명됐다가 대통령 국가안보실장으로 일해왔다. 1년 반 만에 세번의 보직변경이 있었다. 장호진 새 국가안보실장도 비슷하다. 현 정부 초대 주러시아 대사로 부임했다가 외교부 1차관을 맡은 지 8개월 만에 새 직무를 받았다.


 즉흥적이고 가볍기 짝이 없는 수많은 인사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가 ‘남성 편중 인사’를 지적하자 곧바로 박순애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김승희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를 전격 지명했다. 하지만 온갖 도덕성 문제가 불거져 자진해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복지부장관 모두 앞서 지명한 후보가 낙마한 곳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10년도 넘은 과거 정권의 퇴행적인 인물을 여럿 불러다 쓰고 있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사적 채용’ 논란도 많다. 전 국가안보실장은 초등학교 친구였다. 행정안전부장관은 아끼는 고교·대학 후배다. 방송통신위원장은 검사 시절 형님이라 불렀던 상관이다. 질병관리청장은 죽마고우의 부인이다. 초대 보건복지부장관 낙마자는 40년 지기였다. 대법원장 낙마자는 친구의 친구였다.


 막상 바꿔야 할 ‘무능·논란 장관’은 건재하다. 김현숙 여성가족부장관은 세계잼버리대회 파행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후임 김 행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잼버리 파행 같은 여러 경질 사유에도 온전하다.


 세계 10위권 국가에 인재가 없을 리 없다. 당나라 문인이자 정치가 한 유는 "세상에는 백락이 있은 다음에라야 비로소 천리마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했다.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 없으면 천리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리마를 알아보는 눈을 지니기는커녕 천리마를 구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지도자에게 뭘 더 기대할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