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수상한 국방 정신
윤석열 정부의 국방 정신과 정책은 단세포적이고 협애하기 그지없다. 국방의 대상이 오로지 북한밖에 없다는 품새다. 한국의 국방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같은 한반도 주변 강국도 엄연한 위협요소다.
특히 일본은 우리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현실적 위험이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력으로 기습 점령하려는 암계 의혹이 상존한다.
일본의 독도침공계획 시나리오는 다양한 버전으로 나돈다. 실제로 일본 해상자위대 선박이 독도 인근까지 침범한 사례가 있다. 이 사실을 한국의 한 신문이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1991년 1월) 22일 하오 3시 40분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4백t급 경비정 103호가 한국 영해를 침범, 독도 해상 1.5km까지 접근했다. 독도경비대 측의 경고를 받고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영해를 침범한 일본 경비정은 이날 20여 분간 독도 주위를 선회했다.’
1999년 여름에도 일본 자위대의 가상 독도침공훈련이 한국과 일본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자위대의 ‘어떤 섬 탈환 작전’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일본 열도의 서쪽 바다(동해)에 있는 ‘어떤 섬’은 바로 독도를 의미한다.
한국군은 일본의 기습 점령 기도에 대비해 1986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 독도방어훈련을 한다. 그때마다 일본은 강하게 항의했다. 우리 군은 지난 6월 말 올해 첫 독도방어훈련을 비공개로 했다. 이때 애초 계획했던 훈련 구역까지 변경하자 일본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우리 군은 지난해에도 ‘동해영토수호훈련’이란 이름 이래 전·후반기 모두 비공개로 실시한 바 있다. 이 훈련을 비공개로 하는 게 일본을 염두에 둔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 군사정보를 교환하고 합동훈련까지 하는 단계로 진전시켜 ‘준 군사동맹’으로까지 가려 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일제에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8월 29일)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합동 미사일 방어훈련을 했다. 지난 2월 이 미사일 방어훈련은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독도에서 동쪽으로 18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동해 공해에서 실시돼 ‘생각 없는 정부’라는 논란이 일었다.
일본은 야금야금 군사력을 키워 해·공군력에서는 한국을 능가한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가 한국의 국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려 깊게 헤아리지 못하는 국정 담당자들이 국민을 단합시키기는커녕 둘로 쪼개고 있다. 일본의 보수우익 지도부는 해외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개입 여지를 다지려 한다.
윤석열 정부는 나라를 되찾는 데 평생을 바친 독립군 광복군 장군들을 깎아내리고 군인들이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로 타매하는 작업을 벌인다. 일제 강점기 독립 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진정한 국방 정신이 뭔지 모르는, 어이없는 처사다.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은 누구도 폄훼해서는 안 되는 영웅들이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영내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말년에 전략적으로 공산당에 가입한 사실을 침소봉대하고 왜곡까지 더해 깎아내리는 짓은 저열하다. 일본 제국주의 군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게 한 홍 장군은 독립 전쟁 중 일본군에게 아내와 아들까지 잃어야 했다. 아들은 홍범도 의병부대에서 일본군과 전투 도중 전사했다. 아내는 남편의 의병활동 때문에 고문당해 세상을 떠났다.
홍 장군은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뒀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홍 장군을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과 무리하게 엮으려 한다. 홍 장군이 타계한 것은 김일성이 12살 때였다. 소수인 독립군의 전쟁 방식이 게릴라전일 수밖에 없는데도, 6·25 전쟁 전후의 지리산 빨치산과 똑같다고 우긴다.
윤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라는 희한한 말을 만들어낸 이후 모든 걸 끼워 맞춰 충성하려는 불순한 발상을 서슴지 않는 세력의 기세는 섬뜩하다. 홍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모진 고초를 겪을 때 친일세력들은 어떻게 살았나.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고 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든 국방의 의무인 군 복무를 단 하루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사법고시 공부를 해 검사로 입신양명했다. 홍 장군을 ‘부관참시’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행위가 일본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라고 귀화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탄식한다.
국방의 첨병인 육군사관학교 학생들이 국군의 뿌리인 독립군의 정신과 홍 장군을 본받아야지 도대체 누구에게 배워야 하나. 독립군을 말살하려던 일본의 간도특설대 출신 장군인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정치군인 선배들인가? 아니면 미국 장군이어야 하는가? 반공과 친일이 핵심인 뉴라이트 이념에 사로잡힌 대통령과 보좌진, 극우 보수 정치인들이 국방 정신을 한없이 모독하고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