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충성, 딱한 역량
한국의 민주화 이후 최고 권력자에 대한 공개적인 아부가 이처럼 잦고 희화화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부실 운영으로 윤석열정부가 코너에 몰리자 정부와 여당이 책임회피와 과잉충성 발언을 쏟아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 정권 탓하기에 바빴고,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여성가족부는 잼버리를 주도하지 않고 지원만 했다”고 발뺌했다. 박 의장의 아부는 윤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배제 지시에 관한 지원사격 때가 압권이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조국 일가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전문가"라고 추어올렸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저도 전문가지만 특히 입시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면서 깊이 고민하고 연구도 하면서, 저도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아첨했다. 그러자 패러디가 난무했다. 검사가 군수산업과 병역 비리를 수사하면 국방 전문가, 대기업 배임·횡령 사건을 수사하면 경제 전문가, 영화·연예계 비리를 들춰내면 문화 전문가가 되겠네 하는 냉소가 터져 나왔다. 윤 대통령 주변엔 직언하는 레드팀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아부는 더 가관이다. 김 여사의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호객 행위를 당해 명품 매장을 찾았다’는 취지의 해명에 허탈하다는 이들이 무수하다. 경호·수행원 16명을 대동한 대통령 배우자가 명품점 5곳을 ‘호객 행위’ 때문에 방문했다면 국민이 어떻게 여기겠는가.
친윤석열계로 꼽히는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하나의 외교이자 문화 탐방”이라고 옹호했다가 망신살을 샀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부인의 행보가 리투아니아 언론에 젊고 패션 감각 있는 셀럽이라고 인식이 되고 있다”고 두둔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넘치는 아부나 과잉충성과 달리 이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역량은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가까워져 오지만 내세울 만한 업적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 잼버리대회의 부실 운영에서는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설과 물품 준비 부족, 현장 대응능력 부재 같은 일로 영국, 미국 등 주요국가 참가자들이 새만금에서 철수하는 수모가 발가벗겨졌다.
세 장관이 공동위원장인 조직위원회는 잼버리대회의 나라별 참여자 현황 등 기본 정보마저 챙기지 못하는 무능을 노출했다. 한 대학이 예멘 참가자 175명을 배정받고 출장뷔페 음식까지 준비했다가 이들이 잼버리에 불참해 입국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윤석열정부가 가장 야심차게 발표한 3대 개혁 추진 과정에서도 실력이 가늠된다. 노동개혁은 ‘노조 때리기’로 변질돼 배가 산으로 간다는 지적을 받는다. 교육개혁은 공교육 강화보다 이권카르텔 낙인을 찍어 학원 때려잡기에 온 힘을 쓰고 있는 느낌을 준다. 연금개혁은 발걸음도 떼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노동개혁은 ‘최대 주 69시간’ 근무제라는 폭탄을 던졌다가 반발에 부닥친 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노동개혁은 노동자들과 허심탄회한 소통을 거쳐야 함에도 당사자들을 적으로 돌려놓고 어떻게 하려는지 의아하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적절한 언사로 공공의 적이 됐다.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이라는 가장 중요한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받는다. 교육개혁은 최대 과제인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 경감을 대입 수능의 킬러문항 제외에서 찾는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교육 연금 노동 개혁은 하나같이 만만찮은 과제다. 게다가 3대 개혁은 서로 긴밀히 연계돼 통합적 사고가 긴요한 과업이다. 지난한 3대 개혁이 본질적인 문제를 제외한 채 곁가지만 나열하고 생색을 낼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세계 잼버리대회처럼 콘트롤타워 없이 운영하면 고갱이를 담기 어려울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잼버리에 냉방 버스와 냉동 탑차를 무제한 공급하라”고 깨알 지시를 해야 응급조치가 되는 잼버리대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노동시간 개혁도 애초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비현실적인 얘기를 던졌다가 사달이 난 것 아닌가.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 방침을 발표했다가 철회한 것도 대통령의 성급한 지시 이후 여론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지 않나. 개혁 정책은 수능 킬러문항, 잼버리대회 긴급 지시처럼 대통령의 깨알 지시에 아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숙제가 아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