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of Two Koreas

탈북민 환자들의 한의사

김학순 2021. 8. 2. 18:41

 ‘영등포 100년 한의원’의 풍경은 여느 한의원과 조금 다르다. 실내 구조는 비슷하지만, 환자들이 맞는 침(鍼)이 사뭇 굵다. 얇고 가느다란 침만 보던 이들은 겁먹을 정도다. 이곳은 침술이 독특하다. 북한 전통침술인 ‘대침’, ‘불침’으로 유명하다. 지름 0.5cm 정도의 황금 침도 있다. 평양의 고위간부들이 많이 받던 치료법이라고 한다.


 서울 문래동에 있는 이 한의원의 석영환(55) 원장은 남북한 한의사 면허 1호다. 진료실 책장에 꽂혀 있는 ‘고려의학(高麗醫學)’ 같은 북한 책들이 말해 주듯 석 원장의 진료는 ‘고려의학’ (Koryo medicine), 즉 북한식 한방 요법에 따른다. 환자는 대부분 서울 시민이지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탈북민과 중국 교포도 많다. 중국 교포들은 식사나 생활습관이 북한 주민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이곳에서 처방하는 약과 치료법이 제법 잘 맞는다고 한다.


 100년 한의원이 광화문 부근에 있었을 때는 정부 고위인사들도 자주 찾아왔다. 그러나 높아만 가는 건물 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2017년 ‘광화문 100년 한의원’을 문래동으로 옮겨 ‘영등포 100년 한의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실내 규모는 과거보다 2배나 넓어져서 661㎡(200평)가 되었다.
                                                                           


또 하나의 도전

 석 원장의 고향은 양강도 갑산이다. 그는 1998년 10월 지금의 아내인 연인과 함께 휴전선을 넘어 남한에 왔다. 그 후 결혼을 했고 현재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큰아들, 고교생인 둘째 아들, 중학생인 딸을 두고 있다. 북한에 두고 온 부모와 삼 형제를 비롯한 가족의 소식은 끊긴 지 오래다. “연기도 없이 사라졌어요. 소리소문없이 증발했다고 해요.” 그저 간단히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탈북 당시 석 원장은 현역 군의관 신분이었다. 남한의 대위계급에 해당하는 북한군 88호 병원 응급실 진료부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소속인 평양의학대학 동의학부를 졸업하고 ‘고려의사’ 자격을 딴 그는 북한 기초의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기초의학연구소는 흔히 ‘만수무강연구소’로 불린다. 아버지가 호위사령부(청와대 경호실에 해당) 고급군관이어서 혜택을 누린 셈이라고 했다.


 그가 북한의 현실에 절망을 느끼게 된 것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지방의 군부대병원으로 출장 가서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군인들을 보면서였다. 게다가 외국에서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동료 의사들의 얘기를 들으며 남쪽으로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함께 탈북을 결심했다.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탈북 경로를 휴전선으로 선택한 것은 군 장교의 신분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홀몸이 아니었기에 더욱 커다란 모험이었다. 기차를 타면 검문을 받아야 했으므로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서 얻어 타는 등 온갖 수단을 써가며 평양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꼬박 2박 3일이 걸렸다.

                                                                               


 그는 남한 정착 3년 만에 한의사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얻었다. 남북한 한의사 자격을 모두 따낸 최초의 기록을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탈북민의 의사자격 기준이 없었다. 1999년 대한한의학회 전문가들의 테스트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서 국가고시 응시 자격을 얻어냈다. 교회에서 만난 교수들로부터 대학 교재를 추천받고 한의사 국가고시 수험서를 사서 동네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어려운 한자가 가득한 남한의 한의학 교재를 읽는 게 힘들었다. 북한에서는 기초한자 정도만 배웠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 도서관에서 옥편을 잡고 진땀을 흘리고 나자 한자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한의사 자격을 딴 후 경희대 한의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받았다.


 2002년 마침내 ‘광화문 100년 한의원’을 열어 새 삶의 터전을 잡았다. 이후 19년 동안 그는 형편이 어려운 탈북민 환자들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고 있다. “어디가 아프다고 얘기해도 말이 달라 못 알아듣는 병원이 많다고 합니다. 나라도 알아주니 환자가 마음이 덜 불편하고 하소연도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제가 그들보다 먼저 서울에 왔고, 같은 문제를 이미 겪었으니까요.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100년 한의원은 탈북자들 사이에서 ‘탈북자병원’으로 불린다. 아픈 곳이 있어 찾아가면 주머니 걱정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석 원장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한의학의 가장 큰 차이는 침 요법입니다. 북한의 침은 아주 크거든요. 그래도 맞고 나면 시원해 탈북민이 그리워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북한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

 석 원장은 평양 기초의학연구소에서 심장·혈관계 연구원으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유심환(柔心丸), 태고환(太古丸)을 직접 만들고 있기도 하다. 두 가지 약은 각각 스트레스 질환과 노화 방지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고려의학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고려의사는 한방과 양방을 함께 배우죠. 양방 외과에서 수술 집도까지 배웁니다. 북한에서는 보통 한방과 양방 검사를 같이해서 진단을 내립니다. 진맥과 양방 기본검사를 다 해서 그 자료를 바탕으로 진단을 하고 치료는 주로 한방으로 합니다. 제가 고려의학부를 졸업할 당시 제 학년이 30명이었데 그 중 한 두 명 정도만 양방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교육 기간은 6년 6개월이고, 6개월은 임상실습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인턴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남한처럼 양의학 한의학을 엄격히 분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또 다른 차이점에 주목한다. “북한에서는 한글로 고려의학을 공부합니다. 남한의 한의학 교재는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어 어려웠습니다. 북한에서는 객관식 문제를 풀어본 일도 없었습니다. 북한의 시험은 모두 주관식이고, 답을 작성한 후 말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한의학은 조선시대 의관 허준(1539~1615 許浚)이 편찬한 ‘동의보감(東醫寶鑑)’(1610)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남북이 분단된 이후 발전 양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북한은 치료의학이 발달했다. 조선 말기 한의사 이제마(1837~1900 李濟馬)의 사상의학을 토대로 체질을 분류해 치료한다. 만성 질환은 한방치료 대상으로 꼽는다. 체질을 개선해야 면역이 형성되고 병과 싸울 수 있어서다. “북한은 한약 처방이 잘 되고 있는 편입니다. 치료 위주의 약 처방이 구체적으로 체질에 따라 배분이 잘 돼 있지요. 임상시험을 통해 객관화·규격화가 돼 있고 효능도 비교적 좋습니다. 또한 침술이 뛰어납니다. 남한에서는 자극을 덜 주기 위해서 얇고 작은 침으로 쓰지만, 북한 침은 아주 굵습니다. 굵은 침이 더 아플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는 “환자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본인의 정신력이 우선이고, 그 다음 어떤 의사한테 어떤 약과 치료법을 처방받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남북한 양쪽의 한의학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북한에 우수한 약재가 많아 남북간의 협력연구가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모든 여건이 희망적이지 않아 아쉽다고 석 원장은 말한다.
                                                                         


봉사활동으로 보답

 석 원장은 그사이 틈틈이 ‘생명을 살리는 북한의 민간요법’(2003), ‘등산도 하고 산삼도 캐기’(2003), ‘김일성 장수건강법’(2004), ‘북한의 의료실태’(2006) 등 4권의 책도 펴냈다. ‘김일성 장수건강법’은 일본어로도 번역, 출판됐다. 늦었지만 박사학위까지 딸 계획이다. 그가 외부 의료봉사를 이어온 지도 어느덧 17년째가 됐다. 한의원을 개원한 지 2년 만인 2004년 다른 탈북 한의사 한 사람과 어르신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남한 국민 세금을 받고 남한 사회로부터 많은 배려를 받았습니다. 보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죠. 게다가 봉사를 하면 저 자신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냥 한없이 기분이 좋지요.” 

 

  ‘탈북의료인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봉사활동 조직은 2015년 ‘사단법인 하나사랑협회’로 확대 개편되었으나 석 원장이 줄곧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동안 탈북의료인수효가 늘어나고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봉사자와 후원자도 늘어났다. 한의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인력 30여 명을 포함해 모두 130여 명의 회원들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1호의 무게는 남다르다. 석 원장 역시 1호의 짐을 평생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 2021년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Tales of Two Koreas
KOREANA, 2021 SUMMER

Kim Hak-soon Journalist; Visiting Professo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 Korea University
Han Sang-mooh Photographer

REFUGEE DOCTOR’S CHARITABLE SERVICE

 To patients accustomed to acupuncture needles as thin as a strand of hair, the needles at Yeongdeungpo 100 Years Clinic can be intimidating. But patients from North Korea feel differently.
 Seok Yeong-hwan, 55, runs the clinic. Stacks of North Korean books on medicine, including “Koryo Medicine,” hint at his uniqueness. He is the first North Korean-born doctor licensed to practice traditional Korean medicine in South Korea
 Abandoning a promising career as an army medical officer, Seok fled to the South with his girlfriend, now his wife, in October 1998. Taking advantage of his military rank to elude checkpoints and hitch rides, they traveled from Pyongyang to Seoul across the DMZ, instead of via a third country as most refugees do ? in only three days.
 The dream behind his 100 Years Clinic is to help patients have one hundred years of a happy, healthy life. North Korean transplants call the infirmary a “clinic for refugees.” They can receive treatment and even get life advice there without any fear of burdensome bills. Since opening in 2002, Seok has not accepted a single won from financially strapped patients

Clinic for Refugees

 “Some refugees complain that they have difficulty making themselves understood by medical professionals at many other hospitals or clinics. Refugees say they can bare their hearts to me and thus feel at home, to some extent,” Seok said. “Anyway, I arrived in Seoul before they did and I had the same experience. It’s hard for me to ignore their predicament as I understand them better than anybody else.”
 The clinic also receives many KoreanChinese patients, who agree that medicines and treatments prescribed and administered by Seok are effective because their diet and lifestyle are similar to those of North Koreans.
 Even senior South Korean government officials were frequent visitors at Seok’s first location, near Gwanghwamun, the downtown section of Seoul. Skyrocketing rent forced him to close Gwanghwamun 100 Years Clinic in 2017, after 15 years in operation. His site in Yeongdeungpo District, located in southwestern Seoul, spans 661 square meters (double the size of his first clinic) at a lower price.
 Seok hails from Kapsan, a mountainous county in Ryanggang Province, North Korea. His family connections gave him a comfortable life. But after regime founder Kim Il-sung died in 1994, Seok began to feel disillusioned as he witnessed malnourished soldiers and heard other doctors recall their overseas experiences. He eventually yielded to these doubts and misgivings.
 When he fled the North, Seok was an army captain and surgeon serving as chief of emergency medical services at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s “Hospital 88.” Before that, he worked at the Research Center of Basic Medical Sciences in Pyongyang, also known as a “longevity research center.” It was one of the perks of being the son of a senior officer in the Supreme Guard Command, the equivalent of the Presidential Security Service in South Korea. Seok and his wife have since lost contact with their parents. Now, they have one son who is studying computer engineering at college, another son in high school and a daughter in middle school.
 Seok doesn’t know the whereabouts of his three brothers, either. “My relatives have vanished without a trace. People are saying that they’ve evaporated, literally,” he said.
 When Seok arrived in the South, there were no established standards for North Korean refugees to become medical doctors.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permitted him to sit for the licensing exam for traditional medicine based on the advice of the Society of Korean Medicine and other experts.

Starting Over

 Studying far into the night, Seok struggled with South Korea’s traditional medical textbooks, which are full of difficult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He had only learned basic Chinese characters in the North. Three years after resettling in South Korea, he passed the licensing exam, becoming the first person to obtain such a qualification in both Koreas. He went on to earn a master’s degree in traditional medicine from Kyung Hee University in Seoul, and is now considering pursuing a PhD.
 According to Seok, one major difference between the traditional medical practices of the two Koreas is found in acupuncture techniques. “In the South, doctors use thin and small needles to give patients less of a stinging sensation. But in the North, they use very thick needles,” he said. “People normally think thick needles will give them more of a stinging sensation, but it’s not true. Patients feel relaxed and refreshed after an acupuncture treatment with large needles. It’s one of the things that refugees miss most.”
 His clinic is famous for a unique North Korean style of acupuncture techniques, with “super-size” and “fire” needles, and even gold needles that normally would be used only to treat senior officials in North Korea. The gold needles are 0.6mm in diameter, much larger than typical acupuncture needles, which are 0.12mm to 0.3mm in diameter.
 Traditional Korean medicine is based on Dongeui Bogam (Exemplar of Korean Medicine), a text compiled in 1610 by Heo Jun (1539-1615), a Joseon-era royal physician. But the two Koreas have diverged in its application since their division.
 Therapeutic medicine has flourished in the North, where doctors treat patients based on the four-constitution (sasang) medicine developed by Yi Je-ma (1837-1900), a medical scholar of the late Joseon period. Under this system, patients with chronic diseases receive traditional treatment aimed at boosting their vitality and creating an immune response to fight disease.

Pride in ‘Koryo Medicine’

 Seok is very proud of Koryo medicine. He employs “Yusimhwan” and “Taegohwan,” traditional medicinal globules, making use of his experience as a cardiovascular and hematology specialist at the Research Center of Basic Medical Sciences back in Pyongyang. The two types of sphere-shaped medications are known to have been favorites of Kim Il-sung and his son, Jong-il, when they were alive. They are believed to be effective in treating stress disorders and preventing aging.
 Medical study in the North consists of six years in the classroom and six months of clinical training. Students of Koryo medicine attend classes in both Eastern and Western medical theory and practice. North Korean doctors normally use both Eastern and Western tests to examine a patient, but treatment is mainly based on Eastern medicine, according to Seok.
 The North also has an abundance of medicinal plants and a sound prescription service based on patients’ constitutional types, Seok explains. Patients’ own willpower to recover is most essential, and then followed by what medicines and treatment they receive from which doctor, he said.

Volunteer Healthcare

 Seok has published four books so far: “Life-Saving Folk Medicine in North Korea” (2003), “Climbing Mountains, Digging Wild Ginseng” (2003), “Kim Il-sung’s Ways to Stay Healthy and Live Longer” (2004) and “Healthcare in North Korea” (2006).
 He also provides volunteer medical care for elderly people, a service he began in 2004 with another traditional medical doctor from the North. “I received many benefits from South Korean society in the process of settling here. It’s natural that I should return the kindness. Volunteer work also makes me feel happier,” he said.
 Seok has been leading a volunteer group, initially called the “Federation of North Korean Refugees in Medical Profession,” which was then expanded and renamed as the “Hana Nanum Foundation” (hana meaning “one” and nanum meaning “sharing”), since its founding in 2015. The number of volunteers and supporters participating in the group has increased as the number of North Korean refugees in the medical profession and their sympathizers has grown. At present, the group has about 130 volunteers, including some 30 traditional medical doctors and physiotherapi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