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오늘을 전하다
서방에서는 북한 하면 으레 ‘은둔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최근 비핵화 협상으로 북한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통제가 엄격한데다가 방문마저 자유롭지 않아 사회 전모를 제대로 알 수 없어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국제 사회의 엄혹한 제재로 경제 발전은 정체되고 인민들의 생활고도 극심하리라는 통념을 갖는다.
이 같은 고정관념과는 달리 진천규 기자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타커스)는 우리가 잘 몰랐던 ‘평양의 오늘’을 보여 준다. 그는 2017년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방북해, 40여 일간 북한 주민 250여 명을 만나고 취재한 내용과 사진을 이 책에 수록했다. 그래서 이 책은 북한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를 말해 준다.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 중 읽은 세 권의 책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북 관계가 단절되었던 지난 9년간 한국 언론인의 방북 취재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미국 영주권을 지닌 한국인 프리랜서 언론인인 진 기자는 북한 당국과 신뢰 관계를 구축해 평양은 물론 원산, 마식령 스키장, 묘향산, 남포 등지의 모습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자동차와 휴대전화
진 기자가 스스로 ‘평양 순회 특파원’이라고 칭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88년 언론 자유 수호 투쟁 해직 기자들이 주축이 되어 국민주 모금 형태로 창간된 「한겨레」 신문에 합류했던 그는 그해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회담 등을 취재하면서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때는 풀기자로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 손을 잡고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직접 찍기도 했다.
<진천규 기자가 찍은 평양 창천거리>
이후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 살던 그가 17년 만에 다시 찾은 북한에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여긴 것은 자동차와 휴대전화였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식당 옥류관 앞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10여 대가 늘 줄을 서 있었다. 택시는 외국인이나 고위 간부들만 탈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일반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차가 드물어 한산한 거리 한복판에서 교통 경찰이 수신호를 하던 평양에 신호등이 없으면 안 될 만큼 자동차 대수가 늘어난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죠. 평양 시내에만 6,000대 이상의 택시가 돌아다니고 택시 회사도 5~6개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가 택시를 타고 택시 기사인 운전원에게 물었더니, “택시는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이 없는 뒷골목까지 가려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개인 소유의 자동차가 없어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러시아워에는 약간의 교통 혼잡 현상도 일어난다고 한다.
또 하나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여전히 정보와 이동이 통제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휴대전화 사용자가 500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평양 시내에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이 더 이상 신기한 장면이 아니게 된 것이다.
진 기자가 평양 취재 중 더욱 놀란 사실은 예상보다 훨씬 개방적인 인터넷 환경이었다. 평양국제공항에서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그는 국제공항이라서 가능한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묵었던 평양호텔에서도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는데,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상황은 아니겠지 짐작하면서도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제가 원하는 자료를 바로 찾고, 미국이나 남한의 지인과 아무 때나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평양에서 서울로 이메일을 보내면 받는 사람들이 “북한에서 보내는 이메일이 맞느냐”며 깜짝 놀라곤 했단다. 한번은 업무 때문에 급하게 서울로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대방이 메일을 받고도 평양에서 보낸 게 맞는지, 행여 감시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해 답장을 안 했다는 것이다. 그의 책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도 평양에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와 이메일로 실시간 소통하며 출간 마무리 작업을 했다고 한다.
신뢰를 토대로 한 취재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그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평양 시내는 신축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과거에 비해 훨씬 화려해 보였다. 특히 창전(倉田)거리는 외국인들이 ‘평해튼(평양 맨해튼)’이나 ‘리틀 두바이’라고 부를 정도의 모습이었다. 또한 주로 과학자들이 거주하는 미래과학자 거리에는 고층 아파트와 고급 백화점이 들어서 있어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를 연상시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야심차게 개발했다는 신시가지 려명(黎明)거리의 빌딩숲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카퍼레이드 방송 화면에도 잡힌 바 있다.
진 기자는 평양에 피자 가게가 6개나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위한 식당이라고 한다. 만경대 구역 축전동에 있는 ‘이딸리아료리전문식당’은 2008년 평양에 처음 생긴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진 기자가 방문했을 때 300여 평이나 되는 넓은 공간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평양에서 찍은 사진들 가운데 가장 희귀한 것이 보통 시민들의 살림집 내부 모습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살림집이라 불리는 아파트를 취재할 기회가 생겼는데, 북한 관계자는 그에게 “외부인으로는 최초의 취재”라고 귀띔했다. 그가 방문한 곳은 고층 아파트들이 몰려 있는 려명거리 지역이었는데, 2017년 완공된 이 아파트는 재개발 이전에 살던 사람들에게 1순위로 입주 자격이 주어졌고, 근처에 근무하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진 기자가 방문한 집에는 침대, 가스레인지, 냉장고, 전기밥솥 등이 갖춰져 있었으며, 남한의 중산층 가정집과 비슷한 생활환경을 누리고 있었다. 미리 연락하고 찾아갔지만, 일부러 없던 물건을 갖다 놓거나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평양에서는 집의 크기를 평수가 아니라 서양처럼 방의 개수로 계산한다고 한다. 방 2개짜리 집, 3개짜리 집, 4개짜리 집 등으로 집의 크기를 구분 짓는 것이다. 방의 개수는 집주인의 권력 관계나 사회적 지위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양 가족의 숫자로 결정한다고 한다.
려명거리에 있는 아파트의 한 달 주택 사용료는 240원으로,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700원 정도다. 실제 가격이라고 하기보다는 상징적인 요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진 기자는 “고층 아파트의 경우 엘리베이터 관리자가 따로 있어 눈길을 끌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료는 받고, 수도료는 따로 없다고 한다.
그는 이번 방북 취재 기간 동안 자신을 담당하는 안내원이 있었지만, “평양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취재했고,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어떠한 검열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그에게 요구한 것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과 사진은 전체 모습이 온전히 나오게 해 달라. 건설 노동자와 남루한 노인 모습은 찍지 말아 달라”가 전부였다고 한다.
문화적 통일을 향한 노력
그동안 세상에 공개된 북한 관련 책과 사진은 주로 외국 기자가 취재한 것들이다. 그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진 기자는 그런 한계를 깨고 싶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감정과 생각까지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취재에 임했다.
<진천규 기자>
그는 “미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는 조금만 더 경제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곧 손들고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북녘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오판이란 판단이 들었다”고 말한다. 평양 사람들은 의식주를 단순히 해결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외부인들의 생각보다 다양한 소비 생활을 하고 있었다. 특히 진 기자는 북한핵 문제로 북한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지난해 10월에도 “평양이 전쟁 준비에 돌입했으리라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북한 취재에 각별한 사명감을 가진 그는 ‘경계인’으로서 “편견 없이 보고 전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런 얘기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평양의 특별한 일면을 북한 전체의 모습처럼 얘기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비판하지만, “남한에서 서울과 지방의 차이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얘기다.
평양 상주 특파원이 오랜 꿈이었던 그는 지금 2019년 개국할 계획인 ‘통일 TV’를 설립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가 준비위원장을 맡은 통일 TV는 남과 북이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역사물과 자연 다큐멘터리, 음식 관련 프로그램 등을 제작하고, 북측 영상물 저작권을 확보해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사다. 그는 통일 TV를 준비하고 있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남과 북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교류하며 동질성을 회복해 가는 것이 문화적 통일을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계간 KOREANA 2018년 가을호에 실린 것입니다.
Alternate Perspective
Kim Hak-soon Journalist and Visiting Professo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 Korea University
Ha Ji-kwon Photographer
Western media often describe North Korea as “reclusive,” a nod to its rigidly controlled accessibility. The limitation naturally inhibits a thorough understanding of its society. Consequently, outsiders are apt to believe that international sanctions are crippling the North’s economy and heaping hardship on its people.
“Pyongyang Time Flows with Seoul Time,” published by Takers in Seoul earlier this year, contradicts this conventional view. Written by Jin Chun-kyu, a U.S.-based freelance journalist, the book unveils an unfamiliar tapestry of today’s Pyongyang, thanks to relaxed restrictions on his visits. Starting in October 2017, Jin visited North Korea four times over the next nine months, staying a total of 40 days. His book, the result of meeting about 250 North Koreans and taking insightful photographs, describes how much the North has changed in recent years. Amid his efforts to unlock relations with Pyongyang,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included the book in his summer vacation reading.
Until the recent thaw, chilly cross-border relations blocked South Korean reporters from entering the North. But Jin has a permanent U.S. resident card, placing him in a different category than other South Koreans, and he has built-up trust with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His status allowed him to move around relatively freely, meeting North Koreans at the Masikryong Ski Resort and Mt. Myohyang as well as in Wonsan, Nampo and Pyongyang, and photographing moments of their lives.
Cars and Mobile Phones
Jin calls himself a “roving correspondent reporting from Pyongyang” for a reason. In 1988, he formed The Hankyoreh, a left-leaning South Korean newspaper, along with other journalists who were forced out of mainstream news media by military dictatorships. That year, Jin had a brush with the North when he covered a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meeting at the border truce village of Panmunjom. He then visited the North to cover high-level inter-Korean talks in 1992 and the first inter-Korean summit in 2000. At the latter, he photographed President Kim Dae-jung and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grinning and raising their hands after they signed the June 15 North-South Joint Declaration.
Jin e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in 2001. Sixteen years later, he revisited the North and was dumbstruck by the multitude of cars and proliferation of mobile phones that had transpired.
Taxis were everywhere, or queued up at hotspots. About 10 taxis always stood in front of Okryugwan, waiting for diners to leave the best restaurant in Pyongyang. Contrary to assumptions that only foreigners and senior officials took taxis, ordinary citizens tapped the taxi swarm. Where police officers’ whistles and hand signals were once enough on quiet streets, traffic lights had now become a necessity to maintain order.
Before, such traffic was “unimaginable,” Jin said in an interview. “I heard that more than 6,000 taxis are running around streets in Pyongyang alone and that there are five to six taxi companies there.”
One taxi driver said his cohorts mainly had passengers going to neighborhoods that lacked a subway station or bus stop. More and more people used taxis because they were unable to have a car. Even light traffic jams occurred during rush hours.
Jin’s next big surprise was to learn that as many as five million North Koreans were now using mobile phones, though information and movement were still controlled. Pyongyang pedestrians having a conversation on a mobile phone or taking a picture with it were no longer a novelty.
Another revelation that far exceeded expectations was Internet availability. At Pyongyang International Airport, Jin assumed his connection to a Wi-Fi network was simply a service for global travelers. Later, he discovered unfettered Internet access at his Pyongyang hotel as well. At first, it was hard for him to fathom, guessing that not everyone was allowed to log on.
“It was possible for me to find data I wanted immediately and exchange emails with my acquaintances i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anytime,” Jin recalled.
His email from Pyongyang to Seoul was met with skepticism; recipients asked, “Is this really an email you sent from the North?” One day Jin waited and waited in vain for a reply to his urgent email to Seoul. He later learned that the recipient doubted that the email was really sent from Pyongyang and feared that he was being watched by somebody. Jin put the finishing touches to “Pyongyang Time Flows with Seoul Time” while in Pyongyang, exchanging emails with the publishing house of his book in Seoul.
Trusted Outsider
Crisscrossing Pyongyang, Jin came upon streets lined with new high-rise buildings that looked fancier than in the past. Changjon Street is so gorgeous that even foreigners call it “Pyonghattan,” a portmanteau of Pyongyang and Manhattan, or “Little Dubai.” Mirae (Future) Scientists Street, where many scientists live, was so packed with high-rise apartment buildings and a high-end department store that it looked like a backdrop in a capitalist country. A complex of structures in Ryomyong New Town, a development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reportedly advocated vigorously, was shown by TV cameramen riding along President Moon’s motorcade during his visit to Pyongyang in September.
Jin learned that as many as six pizza parlors occupy the North Korean capital, catering to ordinary citizens, not foreign tourists, and in 2008, the first Italian restaurant opened in Chukjon-dong, Mangyongdae District. When he visited there, Jin found that the spacious 990-square-meter restaurant was packed with customers enjoying pizza or spaghetti.
The rarest pictures that Jin took in Pyongyang show the insides of ordinary citizens’ apartments. A guide told Jin that he was the first outsider to see the insides of Pyongyang residents’ apartments. He visited Ryomyong Street, which is flanked by year-old high-rise buildings staffed with elevator operators. The buildings’ residents are returnees to the neighborhood, who had to relocate when redevelopment began. Most residents there work nearby.
The homes Jin visited were furnished with beds, gas stoves, refrigerators and electric cookers. They resembled middle-income homes in South Korea. Although residents were informed of his visit, Jin did not have the impression that they had installed items that they did not own or decked their homes out purposefully.
North Koreans do not measure their apartments by pyeong (3.3 sq. meters) as done in South Korea, but by the number of rooms. Hence, there are apartments with two to four rooms. The number of family members, not social status and position, determines what apartment they occupy. Each family pays a monthly rent of 240 won (about 2,700 South Korean won) for their home on Ryomyong Street. It may not be a realistic price; it seems to be a symbolic rent, Jin said. North Koreans do not have water bills but are charged for electricity to encourage energy saving.
During his latest visit, Jin was escorted by a guide but did not experience interference. “I was able to freely talk with Pyongyang citizens. Nobody censored the pictures and videos I took,” he said.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only asked him to photograph statues of (the nation’s founder) Kim Il-sung and (former leader) Kim Jong-il in full length and not to take pictures of construction workers and elderly people in ragged clothes.
Efforts towards Cultural Unification
Most of the books and pictures about the North published so far are by non-Korean journalists. Not being native Korean speakers, they had to approach the North and its people from the observer’s point of view. Jin, however, was positioned to skirt the linguistic barrier. He wanted to record not only North Koreans’ appearance, but also their emotions and thinking.
“The outside world, including the United States, believes that North Korea will throw its hands up in the air and surrender soon if more economic sanctions are imposed. But it occurred to me, when I took a firsthand look at today’s North Korea, that such a belief is misguided,” he said.
Jin found Pyongyang residents enjoying diverse lives as consumers, far from simply fulfilling their basic needs as outsiders tend to think. Pyongyang people were leading their daily lives “in a calm way, contrary to widespread fears that North Korea was busy preparing for a war,” even in October 2017, when Pyongyang-Washington antagonism intensified over the North’s missile tests and continued development of nuclear weapons.
With a sense of mission, Jin said that he was determined to “see and report on everything without prejudice” as a “border rider.” Some people accuse him of wrongfully using unique aspects of Pyongyang to paint a revisionist portrait of North Korea. He disagrees. “It’s wise to accept it, as it is, as we accept the difference between Seoul and provincial regions, isn’t it?”
While dreaming about becoming a permanent correspondent in Pyongyang, Jin is currently absorbed in creating “Unification TV,” a cable network scheduled to launch in 2019. The content plan includes airing history programs, nature documentaries and food programs that people in the South and the North can enjoy, as well as North Korea-produced programs after obtaining their copyrights.
“I believe that both Koreas can play a big role in moving up the cultural unification of the nation by exchanging diverse cultural contents with each other and restoring homogeneity,” said Jin, who is chairing the Unification TV preparatory committ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