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의 ‘대화’ 그 참 가치를 돌아본다
이 일화를 들으면 자연스레 소크라테스가 먼저 떠오른다. 소크라테스에게 한 철학자가 찾아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왜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반대논증을 편 상호대화의 전범(典範)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스티븐 밀러의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대화의 역사>(부글북스)는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대화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며 대화의 참 가치를 깨우쳐준다. 대화를 필생의 주제로 잡고 연구해온 밀러가 “대화는 인간 존재와 다른 동물들을,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영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의 말로 책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밀러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다. 이 시기의 영국인들이 경제와 군사력은 물론 커피하우스와 클럽에서 대화의 기술도 갈고닦아 나라의 품격을 세계 수준으로 높였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프랑스의 살롱 문화도 마찬가지다.
지은이가 대화를 멸종위기로 만든 주범으로 꼽은 것은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사로잡은 ‘반체제문화’다. 분노와 적의로 가득 찬 ‘상스러운 말투의 제왕’인 미국 백인 래퍼 ‘에미넴’이 대표적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아이콘으로, 의회에서 상원의원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딕 체니 전 부통령도 주범의 하나다.
여기에다 저자가 ‘대화 회피장비’라고 이름 붙인 휴대폰, MP3, 비디오 게임, 컴퓨터의 범람은 대화의 문을 닫는 또 다른 주범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능력은 대화 회피장비들의 신호음과 노래, 호출, 윙윙거림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게다가 대화의 대용품조차 문자메시지, e메일 등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밀러가 내다보는 대화의 미래는 한층 더 우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상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잠깐씩 다른 사람과 교류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의 짧은 대화도 주로 무례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이뤄질 것이다.”
작금 대화의 위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대화의 부재로 가정이 위기에 몰리고 정치권과 사회도 대립과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남북한 간에도 어느덧 대화하는 법을 잊고 다툼에만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한동안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대화가 필요해’가 인기를 누렸던 것도 대화 부재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세밑에 더욱 걱정스러운 건 ‘잃어버린 대화의 품격’은 고사하고 ‘대화의 빈곤’ 자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