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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신도 악마도 디테일에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20세기 세계 최고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성공 비결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대답이다.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와 더불어 근대 건축의 개척자로 꼽히는 로에는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는 설계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무리 거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사소한 부분까지 최고의 품격을 지니지 않으면 결코 명작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도 흡사한 일화를 남겼다. “이 부분을 손 보았고, 저 부분도 약간 다듬었으며, 여여기는 약간 부드럽게 만들어 근육이 잘 드러나게 했습니다. 입 모양에 약간 표정을 살렸고, 갈빗대는 좀 더 힘이 느껴지.. 더보기
더 큰 문제는 인사철학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 추락은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 여론조사 때마다 유권자들은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사람을 잘 못쓰는 것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인사청문회 단계에서 역대 최다 낙마를 기록한 일과 더불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워싱턴 스캔들이 이를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박대통령은 대다수가 기용에 반대한 윤 전대변인의 참담한 말로를 겪고 난 뒤에야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여론주도층은 박 대통령이 흔쾌하게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걸 여전히 미심쩍게 지켜본다. 새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과 대변인 임명부터 시험무대가 될 게 틀림없다... 더보기
개성공단, 대화의 끈은 남아 있다 개성공단의 주춧돌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이 놓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정 회장은 1998년 초여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소 1,001마리를 직접 몰고 북한을 방문했다. 이 ‘기상천외한 사건’에는 세계가 주목했다. 미국 뉴스 전문 채널 CNN은 트럭에 실려 휴전선을 넘는 소떼 모습을 생중계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이자 미래학자인 기 소르망은 이 장관을 보고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격찬했다. 영국의 권위지 인디펜던트는 “미국과 중국 간 핑퐁외교가 세계 최초의 스포츠 외교였다면 정 회장의 소떼몰이 방북은 세계 최초의 민간 황소 외교”라고 호평했다. 정 회장과 소떼 방북은 외환위기 직후 남북 경제협력과 교류에 ‘희망’을 안겨줬다. 그 해 11월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 더보기
박 대통령, 클린턴을 닮아라 불통·고집·독선 논란을 빚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초반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때와 닮은 점이 공교로울 정도로 많다. 필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할 당시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20년전 이 무렵에 썼던 기사와 취재노트를 들춰보면 박 대통령이 벤치마킹할만한 게 적지 않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1월20일 취임하자마자 연이은 두 명의 법무장관 지명자 낙마, 백악관 여행담당 직원교체 번복 파문을 일으킨다. 클린턴은 자신의 호화 이발 추문, 동성애자 군입대 허용 논란 같은 개인 스캔들과 정책적 반발을 거의 동시에 불러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사실패 사례만 보면 박 대통령은 클린턴과 비교조차할 수 없을 만큼 사상 최대의 낙마 사고를 겪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새 대통령과 언론 간의 전.. 더보기
아부, 혹은 충성심이란 이름의 마약 ‘아부에는 장사 없다’는 속언은 인간의 본성을 관통한다. ‘아부의 기술’이란 책을 쓴 미국 언론인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를 ‘정치인의 1차 무기’로 치부할 정도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살살 녹는 아부를 바친 것으로 알려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아부만큼 효과가 뛰어난 최음제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여왕을 알현할 때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야 한다”고 했다. 서양에도 왕의 트림을 오페라의 아리아보다 아름답다고 말한 아첨꾼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며 아부했다는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많은 지도자들이 아부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방증은 숱하.. 더보기
박근혜 정부 인사의 부정적 파장 시중에는 꽤 오래 전부터 대통령의 등급에 관한 유머가 나돈다. “1등급 : 국민이 좋아한다. 2등급 : 야당도 좋아한다. 3등급 : 여당만 좋아한다. 4등급 : 적국도 좋아한다.” 오늘(25일)로 취임 한달을 맞는 박근혜 대통령은 몇 등급에 해당할지 자못 궁금하다. 다수 국민과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위태위태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의 취임 초 지지율 가운데 최저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답변은 44%로 조사됐다. 취임 초 ‘고소영 내각’이란 멍에 때문에 지지율이 추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50% 이하는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건 대부분 낙제점 인사 탓이 크다. 이번 조사.. 더보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국방장관 후보자 “저는 일평생을 국가안보를 위해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무려 33가지 의혹을 받고 있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군 출신답게 당당했다. 안보만 걱정하고 산 김 후보자는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바로 다음날 일본으로 온천관광을 떠났다. 이 사건은 북한이 6·25 전쟁 휴전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해온 중차대한 국가안보위협이다.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죽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남북관계도 일촉즉발 위기상황이었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김 후보자는 5박6일 동안 나라밖에서 온천관광을 즐기면서 국가안보를 염려하고 있었을 게다. 예비역 4성장군인 그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국책자문위원회 국방분과위원장이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그는 그해 3월 천안함 폭.. 더보기
자책골 경계해야할 새 대통령 1987년 민주화 이후 박근혜 대통령만큼 유리한 정치지형을 지닌 대통령은 없었다. 박 대통령에겐 우선 가장 약체의 야당이 존재한다. 원내의석수에서도 소수지만 제1야당은 구심점이 없는 상태다. 진보정당들은 지난해 경선비리와 종북논란으로 분열된 데다 힘이 현격하게 떨어져 존재감을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여당 내에 견제세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에다, 야권엔 정치9단이라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모두 버티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야합’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3당 합당으로 난국을 돌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이라는 숙적이 잠시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곧 돌아왔다. 당내의 구 민정당계 중진들도 만만한 건 아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합정권에 성공했지만, 대선 .. 더보기
법조인의 병역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왜 고위공직자의 아들들은 죄다 신체적 결함들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은 궁금할 따름이다.” 이언주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이 최근 낙마한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의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졌을 때 내놓은 촌철살인의 논평이다. 좀 더 좁혀 보면, 고위 공직후보자로 발탁되는 법조인들의 아들들은 왜 멀쩡하던 신체에 이상이 생겨 군복무를 면제받거나 공익근무로 대체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한 개그 프로그램의 익살처럼 궁금하면 오백 원? 이젠 그걸 궁금해 하는 국민은 별로 없는 듯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홍원 새 총리 지명자의 아들도 첫 신체검사 때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몇 년 뒤 재검을 받아 디스크(수핵탈출증)로 5급 판정과 함께 병역 면제 처분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 정.. 더보기
탈북자 재입북 증가, 어떻게 볼 것인가 탈북자의 남한생활을 극도의 리얼리즘으로 묘사한 독립영화 ‘무산일기’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받은 16개 상이 입증할 만큼 복잡한 감정을 이입한다. 개성 있는 연출은 물론 탈북자에 대한 문제의식, 남한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실감나게 그렸기 때문이다. 병마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된 2008년 탈북자의 실화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전승철의 고향 함경북도 무산(茂山)은 ‘나무가 무성한 산’이라는 뜻이지만 이젠 민둥산으로 전락했고, 서울 역시 그에게는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무산’(無山)이다. 이 영화는 박정범 감독이 직접 주연하면서 대학시절 친구였던 탈북 청년 전승철 역을 소화해낸 특별한 영화다. 전승철은 영락없는 이방인의 모습이다. 우리와 똑같은 얼굴에다 같은 언어로 같은 공간을 살아가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