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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진실의 여러 얼굴 진실은 하나지만 나타날 땐 여러 얼굴을 지니곤 한다. 약간 화장하는 정도를 넘어 가면을 쓴 얼굴을 드러낼 때도 없지 않다.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 법화경은 이를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로 가르친다. 같은 물을 두고 하늘에 사는 천인(天人)은 보석으로 장식된 연못으로 보고, 인간은 그냥 물로 보며,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여긴다는 뜻이다. 전설적인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 ‘라쇼몽’(羅生門)도 똑같은 사건을 4개의 다른 시선으로 ‘진실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1950년 흑백으로 처음 제작된 뒤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된 ‘라쇼몽’의 플롯은 단순하다. 사무라이가 말을 타고 아내와 함께 녹음이 우거진 숲속을 지나간다. 그늘에서 낮잠을 자.. 더보기
실종 신고! 미래와 창조를 찾습니다 실종 신고! 쌍둥이 미래와 창조. 법적 나이 8개월이 다 되어감. 실제론 더 일찍 태어나 나이에 비해 커 보임. 찾아주시는 분에게는 거액의 사례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엄마가 돌보지 않는 사이에 누가 두 아이를 훔쳐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돈을 요구하지 않는 걸 보면 유괴한 이가 몰래 키우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알 수 없습니다. 미래와 창조는 우리 집안의 소중한 희망입니다. 두 아이가 없으면 우리 가족은 살아갈 기력을 잃어버립니다. 사실 엄마는 두 아이를 우리 집을 포함해 가문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기둥으로 키우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워낙 원칙과 신뢰의 표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엄마는 잃어버린 쌍둥이를 찾을 생각이 없는 .. 더보기
공직자 윤리의 이중 잣대 미국 미시간 주 지방법원 레이먼드 보에트 판사는 재판 도중 휴대폰이 울리면 누구든 휴대폰을 압수한 뒤 벌금 25달러를 내야 돌려주는 규정을 만들어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판 진행에 방해 받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판 전에 이를 빠짐없이 알린다. 그는 지금까지 방청객은 물론 검사, 피고, 경찰관으로부터도 휴대폰을 압수한 적이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한 재판 때 검사가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었다. 보에트 판사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서 느닷없이 “명령어를 말씀하세요”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검사는 발언을 멈추고 판사를 쳐다봤다. 보에트 판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서둘러 휴대폰을 끄고 검사가 발언을 계속하도록 했다. 재판이 끝난 뒤 그는 자신에게 벌금 25달러를 부과했다. 이.. 더보기
역사교과서의 왜곡·편향·자존망대 미국에서 정직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자주 들려주는 일화의 하나가 ‘조지 워싱턴과 체리나무 이야기’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손도끼를 생일선물로 받았다. 워싱턴은 정원에서 손도끼를 가지고 놀다가 아버지가 아끼는 체리나무를 잘라버렸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의 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 “누가 체리나무를 베었느냐”며 범인색출에 나섰다. 한동안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워싱턴은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 “아버지, 제가 실수로 체리나무를 잘랐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워싱턴을 야단치기는커녕 칭찬했다. “조지, 내가 오늘 나무 한 그루를 잃었지만, 정직한 아들을 얻었구나. 네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나무 천 그루보다 더 소중하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에피소드를 활용한 실험 결과다.. 더보기
중국의 노량작제 전략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사성어 ‘노량작제’((魯梁作綈)는 오늘날 중국의 대외전략을 이해하는 열쇳말의 하나가 됨직하다. ‘노량작제’란 두꺼운 비단 옷감을 무기 삼아 노량 나라를 제나라 영토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참된 우정을 상징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관중(管仲)이 지은 책 ‘관자’(管子)에 나오는 일화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환공(桓公)은 이웃나라 노량 땅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환공은 어느 날 재상 관중(管仲)에게 비책을 물었다. 관중은 전쟁 없이 노량을 차지하는 계책을 세워 아뢰었다. “우선 공께서 먼저 제견(두꺼운 비단 옷)으로 갈아입으신 후 신하들도 모두 입게 하십시오. 그러면 백성들이 따라 입게 될 것입니다.” 제견은 노량에서만 나는 특산품이었다. 관중은 그.. 더보기
추축국 독일·일본·이탈리아의 국격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8년이 지난 지금 전범 추축국(樞軸國)인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역사인식과 국격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독일이 과거의 잘못을 맹성하며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반면, 일본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적반하장의 언행으로 피해자인 이웃나라들에게 끊임없이 패악질을 일삼는다. 이탈리아도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파시스트 독재의 유령을 불러내는 ‘거꾸로 시간여행’이 횡행한다. 세 나라의 모습은 그 나라의 품격과 민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으로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물론 자라나는 세대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지닐 수 있도록 반복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나치를 찬양하거나 유대인 같은 나치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행위에 대해.. 더보기
디트로이트 파산, 바다 건너 불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파산의 타산지석으로 꼽는 단골 모델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자동네 오렌지 카운티와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 시다. 유바리 시는 주력업종이던 탄광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겁 없는 시설투자를 하다 과도한 빚 때문에 2006년 6월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유바리 시가 파산한 까닭은 다섯 가지 정도가 꼽힌다. 지역 여건과 관광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물량위주의 사업을 벌인 게 첫 번째 원인이다. 둘째는 시민의 관심은 뒷전인 채 관주도로 개발 사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나카다 데츠지 시장의 24년 장기집권으로 행정의 통제와 수정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이 세 번째 이유다. 여기에 겉만 화려한 지역축제도 한몫했다. 유바리 영화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외화내빈의 영화제.. 더보기
숲이 아닌 나무만 보는 정부고위인사들 고위 정무직 인사에게 필수불가결한 자질과 덕목은 리더십, 종합적인 상황판단력, 도덕성, 전문성이 포함된다. 박근혜정부의 고위 각료와 핵심기관장 가운데는 냉철한 상황판단력과 리더십이 부족한 인사가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인사청문회과정에서 집권여당조차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하고 있을 뿐이다. 내각을 통할하는 정홍원 국무총리는 우선 존재감이 적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했던 ‘책임총리’는 아니더라도 첨예한 사회갈등이 수없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총리의 역할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진주의료원 폐쇄사건이나 밀양송전탑 문제처럼 국민의 삶과 밀접하면서도 민감한 현안에 총리가 주도적으로 나서 조정하거나 해법을 모색했다는 얘기가 없다. 그저 해당부처 장관과 공무원들에게 하는 의례.. 더보기
정부는 진정 필요악인가? 미국 독립운동의 아버지 토머스 페인은 “정부는 최상의 상태에서도 필요악일 뿐이며 최악의 상태에서는 견딜 수 없는 악”이라고 주장한다. 보통사람은 정부가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수 있다는 게 페인의 생각이다. 미국인의 80퍼센트 정도가 연방 정부를 필요악으로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1년 후보 시절에 한 얘기는 한층 강렬하다. “정부는 문제를 푸는 주체가 아니라 정부 자체가 문제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어서 정부가 없으면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될 개연성이 높아 정부를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정부가 필요한 까닭은 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사람들을 보살피고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 베.. 더보기
신도 악마도 디테일에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20세기 세계 최고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성공 비결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대답이다.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와 더불어 근대 건축의 개척자로 꼽히는 로에는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는 설계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무리 거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사소한 부분까지 최고의 품격을 지니지 않으면 결코 명작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도 흡사한 일화를 남겼다. “이 부분을 손 보았고, 저 부분도 약간 다듬었으며, 여여기는 약간 부드럽게 만들어 근육이 잘 드러나게 했습니다. 입 모양에 약간 표정을 살렸고, 갈빗대는 좀 더 힘이 느껴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