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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참교육의 길 이오덕과 하이타니 겐지로는 닮은 점이 많다. 한국과 일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정한 교육자이자 문학가로 추앙받는 큰 나무라는 점이 같다. 동시대를 산 두 사람은 참교육의 표징이다. 어린이와 문학을 빼놓고선 얘기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의 생활 글을 높이 평가하고 확산시킨 것도 공통점의 하나다.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배운다는 교육철학도 흡사하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첫 장편소설 (양철북)는 참스승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를 눈시울이 뜨겁고 콧날이 찡하게 보여준다. ‘교사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1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작가의 체험과 따사로운 교육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명작이어서다. 이 작품은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아름다운 선생님들과.. 더보기
히말라야 14좌의 ‘희망과 고독’ 폴란드의 저명한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의 등반철학은 남다르다. 유명 산악인이 하나같이 히말라야 8000m급 정상에 도전하는 것과 달리 7925m의 가셔브룸 4봉에 오르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단지 8000m급 산이라고 하여 오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해발 8000m에서 불과 75m 모자라는 히말라야 봉우리라고 의미가 없느냐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14개나 품고 있지만 7000m급 산도 350여개나 거느리고 있다. 기실 지구상에 7000m 이상 솟아 있는 산은 모두 히말라야에 모여 있는 셈이어서 희소성이 떨어질 법도 하다. 쿠르티카는 1985년 11일간의 사투 끝에 가셔브롬 4봉 정상 바로 앞에 다가섰음에도 나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서쪽빙.. 더보기
한국은 어떤 민주주의입니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민주주의를 대놓고 빈정거리면서 비판한 것으로 이름 높다. ‘인간의 타락한 형식’이라거나 ‘동등한 권리와 요구를 주장하는 난장이짐승’ ‘겉으로만 보면 평화적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민주주의자들과 혁명주의자들’ 따위로 매도할 정도다. 특히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에서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의 평등의식을 비판하며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때린다. 그런 니체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들도 민주주의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면 뭐라고 할까.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자인 도라 비로 박사팀은 한 무리의 비둘기들에 위성항법장치(GPS)를 부착하고 15㎞ 정도 날아가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완벽하지는 않지만 순간순간 반드시 민주적 위계질서에 따른 집단의사결정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에 실린.. 더보기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유가의 공자·맹자와 도가의 장자는 책에 관한 생각도 차이를 드러내는 듯하다. 불가의 학승(學僧)과 선승(禪僧)의 차이와 흡사하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溫故知新)는 공자의 말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를 한마디로 간추려 놓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옛 사람들과도 벗이 될 수 있다’(讀書尙友)는 맹자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에 장자는 책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라고 은근히 경계한다. 중국 고전 에 나오는 임금과 수레바퀴 장인의 우화가 대표적인 예다. 마루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제나라 환공에게 마당에서 수레바퀴를 만들던 늙은 장인이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 환공이 “옛 성인의 말씀”이라고 하자, 장인은 “이미 죽은 성인들의 말씀이라면 그건 말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것(然則君之所讀者, 故人之糟魄已夫.. 더보기
우리 안의 악을 먼저 성찰해야 악을 이긴다 2010.03.19 17:12 본문 권위 있는 심리학자 닥터 톤은 이색적인 실험을 위해 참가자를 공개 모집한다. 2주일 동안 사람들을 임시 감옥에 가두어놓고 이들이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관한 실험이었다. 감옥 생활 경험이 없고, 엄밀한 심리테스트를 통해 뽑힌 스무 명은 각각 14일간 열두 명의 죄수와 여덟 명의 간수 역할을 한다. 즐겁게 시작한 실험에서 참여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짜 죄수와 간수처럼 변해간다. 차츰 험악해진 분위기는 마침내 금지됐던 폭력이 난무하고 끝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돌변한다. 교수가 잠시 자리를 비운 5일 뒤부터 이들은 실험 관리자들을 감금하고 고문까지 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죄수들은 다시 잡히지만 그 과정에서 죄수 한 명이 죽고 간수도 죽는다. 77번 죄수와 소령의 힘으로 .. 더보기
‘도둑’ 목민관에 경종을 울릴지니 2010.03.05 17:13 닌토쿠 일왕(仁德 日王)은 일본 역사상 백성을 가장 극진히 사랑한 군주로 칭송 받는다. 왕자 시절 스승이 백제의 왕인 박사였던 그는 즉위 후 어느 날 왕궁의 전각과 언덕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다 연기가 나는 집이 별로 없다는 걸 발견했다. 백성들이 밥을 짓지 못할 만큼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직감한 그는 3년 동안 단 한 푼의 세금도 거둬들이지 않았다. 덕분에 3년 뒤에는 온 나라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궁전 살림살이는 왕궁이 낡아 여기저기서 비가 샐 정도로 어려워졌다. 즉위 7년째 처음으로 왕궁 수리에 들어가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자진 참여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공사를 끝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서(正史書)인 에 나오는 일화다. 중종 .. 더보기
편견의 장막 걷어낸 아프리카 2010.02.19 17:40 본문 아프리카에는 흥미롭고 자기암시적인 속담이 전해온다. “사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해줄 역사학자를 갖기 전까지 사냥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사냥꾼을 찬양하는 일색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역사가 중심으로 쓰이고, 약하고 권력 없는 자는 언제나 역사에서 누락되거나 악역만 맡고 만다는 경구다. 그래선지 영국 역사학자 홉킨스는 이렇게 자성하는 듯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독립의 해인 1960년 이전 식민지시대 유럽인들의 아프리카관은 자연이나 인간의 낙원으로 보는 ‘메리 아프리카’와 원시적이고 미개하다고 보는 ‘프리미티브 아프리카’의 두 극단적 신화로 채색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는 아프리카인이 주체인 참된 의미의 역사는 쓰인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낭만적.. 더보기
호밀밭의 파수꾼’은 영원하리 2010.02.05 17:05 본문 미국의 저명한 출판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 1951년 6월2일자에 리틀 브라운 출판사 광고가 실렸다. “ ‘뉴요커’가 주목한 촉망받는 젊은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쓴 놀라운 신작소설 이 7월16일 출간됩니다. 몇 달 전부터 각종 지면에는 이 소설이 최근 몇 년간 발표된 소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하며 독창적이라고 평가하는 글들이 실렸습니다. ‘이 달의 책’ 북클럽의 여름휴가 추천목록에도 꼽힌 바 있습니다. 가격은 3달러이고, 보스턴의 리틀 브라운 출판사에서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때 나온 초판본은 현재 25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샐린저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인 (민음사)은 지금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출간될 때부터 곡절의 연속이었다... 더보기
소수뿐인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2010.01.22 17:15 본문 전쟁에서 지고 살아서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지고 죽어서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이기고 죽어 돌아온 장수.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가장 존경을 받을까. 상황에 따라 약간은 다를 수 있겠지만 네 번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인기 드라마 와 그 주연 배우 차인표의 아이티 지진피해 구호금 1억원 쾌척 등이 상징하듯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은 원래 전쟁에서 비롯됐다. 초기 로마의 귀족들은 솔선해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했으며, 2차 포에니 전쟁 때는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에서는 병역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었을 만큼 노블레스 오.. 더보기
조선은 자력근대화 가능했다 2010.01.08 17:01 본문 “문명국이라고 자처하는 서양인들이 자기들과 뻔질나게 교역을 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여전히 전래적인 운수방법인 인력거를 타고 관광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줄로 여겼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 국민은 서구의 신발명품을 거침없이 받아들여 서울시내 초가집 사이를 누비며 바람을 쫓는 속도로 달리는 전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구경할 수 있다니 어찌 놀랍고 부끄럽지 않으랴(서울에서 전차가 달린 것은 도쿄보다도 3년 앞선다).” “한국 사람들의 본성은 배타적이 아니다. 타협적이며 친절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부지런한 민족이다. 능력 있는 지도자들만 있다면 이른 시일 내에 현대 문명국가의 수준에 오를 희망이 있는 국민이다. 국왕 스스로도 외국인의 조언과 도움을 거리낌 없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