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뺄셈정치 속의 통일대박론  문득 가정법 질문 하나가 뇌리를 스쳐간다. 남북 통일이 이뤄지면 우리는 15년 안에 북한 출신 대통령(최고지도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동독 출신 정치인을 총리로 선택한 독일처럼 말이다. 통일의 낌새도 보이지 않는 터에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물음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는 한 나라의 관용성 척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통일독일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것은 통독 후 15년만의 일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미 통독 10년째 되던 2000년부터 보수야당이던 기독교민주당 당수를 맡아왔다. 최근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고한 메르켈 총리의 한마디는 매우 시사적이다. “(통일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을 만나게.. 더보기
푸들에게 진돗개 정신을? 푸들은 영리하고 애교만점인 반려견의 상징이지만 정치지도자나 고위공직자의 별명이 되면 달갑잖은 오명으로 표변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푸들 정치인이란 별명의 대표주자다. 이들은 하나같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잘도 따랐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유난스러울 정도였다. 그에게는 나라 안팎에서 ‘부시의 푸들’이라는 별명이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아 있다. 노동당에 우호적인 신문인 데일리 미러조차 노동당 출신 총리인 그를 ‘블레어 총리’(PM Blair)라는 표현 대신 ‘푸들 블레어’(Poodle Blair)라고 썼다. 블레어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당시 이를 의식한 부시가 적극 두둔하고 나섰지만 깊은 낙인이 사라질.. 더보기
인권과 진실보다 더 큰 국익은 없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대명사처럼 됐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조작의혹도 드레퓌스 사건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간첩혐의라는 본질적 성격은 물론 집권세력의 행태와 사회분위기가 모두 흡사하다. 우선 피고인인 유우성 씨가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탈북자다. 게다가 그는 화교출신이다. 군사 기밀을 독일에 넘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기피대상인 유대인이었던 점과 비슷하다. 단순히 간첩을 잡으려는 의도를 넘어 고도의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도 유사하다. 프랑스 군부는 진범인 페르디낭 에스테라지 소령 대신 드레퓌스를 처벌해 독일군의 관심을 돌리고 허위 정보를 유포하려는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유우성 씨 사건은 .. 더보기
‘안네의 일기’까지 테러하는 일본인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한국인이 잘 찾지 않는 곳에도 일본인들은 빼놓지 않고 몰려오는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한다. 직접 마주치지 않더라도 그들이 대거 다녀간 흔적은 어딜 가나 방명록에 빼곡하다. 예외가 하나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참혹하게 학살한 현장인 아우슈비츠(폴란드 이름 오시비엥침) 수용소가 그곳이다.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며 전율했을 만큼 그곳은 홀로코스트(대학살)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신이 있다면 어찌 이런 만행을 그대로 두고 보았단 말인가 하는 회의감으로 말미암아 신학자들조차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신학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정도다.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 근교에 자리한 이 역사의 현장을 가장 많.. 더보기
‘비정상의 정상화’는 인사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인사는 모두 실패였음이 속속 실증되고 있다.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두 인물의 어처구니없는 실패는 박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知人之鑑)이 새삼 채점 받는 계기가 됐다. 박 대통령은 윤진숙을 “모래밭에서 찾은 진주”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그는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동안 생뚱맞은 답변과 실없는 웃음 탓에 희화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자질과 업무 능력이 수준미달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보수·진보를 막론한 모든 언론과 야당, 심지어 여당조차 그의 임명 반대를 외쳤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쌓은 실력이 있다고 하니 지켜봐 달라”고 촉구한 뒤 임명을 강행해 버렸다.. 더보기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인들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일컫는 말은 선거 때 종종 등장한다. 후보자와 공약이 자기와 같은 편인지 판단하기 모호함을 비유하는 상징으로 안성맞춤이어서다. 해가 설핏 기울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언덕 너머 다가오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잘 분간하기 어렵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게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곧잘 은유한다. 기발하고 시적인 이 묘사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를 각각 개와 늑대에 비유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지혜로운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변증법과 소피스트의 궤변을 식별하는 게 어렵듯이 개와 늑대를 알아보는 일도 간단치 않다고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털어놓았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는 닮았으나 소크라테.. 더보기
박근혜와 옹정제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퇴근 후)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고 한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청나라 옹정 황제였다. 옹정제야말로 ‘보고서 통치의 대명사’다. 옹정은 밥 먹을 때조차 보고서를 곁에 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민심과 비밀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지방 관리들로부터 ‘주접’(奏摺)이라 일컫는 민정 보고서(상주문·上奏文)를 받았다. 보고서는 하루 평균 20∼30건, 많게는 60∼70건에 이르렀다. 하루에 8만자를 읽고 8천자씩 업무지시를 한 셈이다. 옹정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답글을 쓰는 데 밤 시간을 거의 다 보냈다. 제위 13년 내내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20시간 한결같이 일하면서 초인적인 정력을 과시했다. 역사상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옹정은 자.. 더보기
‘안녕들’이 못마땅한 사람들 역사의 물줄기는 종종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 하나 때문에 바뀌곤 한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2010년 12월 스물여섯 살의 청년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실자살이 촉발했다. 그의 분신자살은 ‘아랍의 봄’을 점화해 혁명의 물결을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를 거쳐 터키까지 확산시켰다. 1차 세계 대전도 세르비아 출신의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사라예보를 친선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에서 비롯됐다. 혁명적 현상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해 작은 성냥불 하나에도 활활 타오를 뿐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던 부아지지는 경찰의 노점상 과잉단속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이 사건은 억압받던 시민의 공분을 이끌어내면서 장기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는 재스민 혁명.. 더보기
이자스민 의원을 옹호하는 이유 한국은 터키가 ‘칸카르데쉬’(피로 맺어진 형제)라고 부르는 유일한 나라다. 터키는 6·25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견해 한국을 도왔기 때문이다. 터키는 1개 여단 1만4936명을 파병해 전사·실종자 896명, 부상자 2,147명을 낳았다. 반면에 한국은 오랫동안 터키의 은혜를 사실상 잊고 지냈다. 1982년 케난 에브렌 대통령이 터키 국가원수로는 사상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환영 분위기는 그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1986년 투르구트 외잘 총리가 방한했을 때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터키인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심어준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였다. 터키 선수단이 입장할 때 관중들의 호응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이와는 달리, 소련 선수단이 입장하자 스탠드에선 일제히 기.. 더보기
정권의 품격 얼마 전 핀란드 방문 후 내놓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은 여러 면에서 씁쓰레했다. 그 가운데 핀란드와 한국의 정치상황을 비교한 부분은 ‘적반하장’(賊反荷杖) ‘객반위주’(客反爲主) 같은 사자성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핀란드 방문 기회에 핀란드 국회의장으로부터 여야 합동으로 미래위원회를 구성해 30년 후 국가 미래를 논의한다는 말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 정 총리의 담화는 야당을 겨냥한 훈계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대목은 정 총리 자신을 포함해 정부와 새누리당에게 돌아가야 할 회초리다. 국가의 미래를 소홀히 한 채 30~40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건 바로 자신들이어서다. 핀란드 출신 방송인이자 번역가인 따루 살미넨 씨의 촌철살인 한마디가 이를 잘 방증한다. ‘미녀들의 수다’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