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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아름다운 죽음’ 입력 : 2009-02-27 17:28:29ㅣ수정 : 2009-02-27 17:28:31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크고 작은 여운으로 남아 쉼 없이 물결친다. 유언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남은 이의 광명을 찾아준 각막 기증. 소박한 유택. 검박했던 일상의 잔영. 거목으로서의 삶 못지않게 생애의 가장 거룩한 순간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준 인간 김수환. 그는 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사색과 성찰의 장을 열었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과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더 무거운 죽음도 있다”고 한 사마천의 명언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미국 작가 미치 앨봄의 의 주인공 모리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더보기
명성에 묻힌 지식인의 이중성 입력 : 2009-02-13 18:02:38ㅣ수정 : 2009-02-13 18:02:41 프랑스 리옹대학 교수이자 의 저자인 레지 드브레는 “과거의 지식인은 시대를 명료하게 해석해 주었지만 지금의 지식인은 시대의 어둠에 어둠을 더할 뿐”이라고 탄식했다. 드브레는 오늘날 지식인이 앓고 있는 중병 다섯가지를 든다. 여전히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선도한다고 확신하는 도덕적 자아도취증,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연구도 하지 않으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자신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을까 두려워 언론에 장단을 맞추고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 순간적 임기응변증, 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 내놓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 그의 진단은 한국에 대입해도 그리 틀리지 않.. 더보기
한민족 기질과 닮은 ‘소나무’ 입력 : 2009-02-06 17:31:27ㅣ수정 : 2009-02-06 17:31:29 조선 세조 때 시서화 삼절로 칭송받은 강희안은 에서 꽃과 나무를 9품계로 나눴다. 그 가운데 소나무는 대나무, 국화, 연꽃과 더불어 제1품계에 올라 있다. 솔의 빼어난 운치와 절품의 풍치를 높이 산 것이다. 하긴 일찍이 사마천이 에서 송백을 일러 ‘백목지장(百木之長)’이라 했으니 이보다 극찬이 또 있을까. 송(松)이라는 한자에는 진시황과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진시황이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나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자 이를 고맙게 여겨 공작의 벼슬을 내려주고 목공(木公)이라 불렀다. 나중에 두 글자가 합쳐져 송(松)자가 됐다는 후일담이 전해온다. 중국의 (幽夢影)에도 “하루의 계획으로 파초를 심고, 한.. 더보기
민주주의 추동력 ‘다원주의’ 입력 : 2009-01-16 17:34:38ㅣ수정 : 2009-01-16 17:34:40 나치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자부하는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제전범재판소 심문과정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돌프 히틀러가 하나의 국가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고, 당신 역시 하나의 민족사회주의를 갖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히틀러보다 내가 우월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신이 진정 그렇게 느꼈다는 말인가요? “정신적으로 무한히 우월합니다.” 이런 슈미트가 학문적으로, 그것도 전 세계에서 부활하고 있다면 일단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서구 정치사상 연구에서 슈미트의 지적 영향력은 가히 세계화 수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 더보기
다시 읽는 세계최초 추리소설 입력 : 2009-01-09 17:49:29ㅣ수정 : 2009-01-09 17:49:31 생일인 1월19일이면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웨스트민스터홀 교회에 있는 그의 무덤에 검은 옷을 입고 은장식 지팡이를 든 신비의 인물이 수십 년 동안 어김없이 나타나 반쯤 마신 코냑병과 세 송이의 붉은 장미를 헌정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 더욱 널리 알려진 작가 에드거 앨런 포. 전직 광고인인 90대 노옹이 그 옛날 교회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기획한 것이라고 2007년 여름에 고백하는 바람에 신비로움이 사라져 버렸지만 포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올해도 이 이벤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올해는 그의 사망 1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포는 보들레르를 낳고,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자들을 낳고, 상징주의자들.. 더보기
희망, 믿는 사람의 몫 입력 : 2009-01-02 17:33:03ㅣ수정 : 2009-01-02 17:33:05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 여행을 떠났다. 사막은 불 같이 뜨거웠고 떠나기 전에 가지고 갔던 물마저 어느새 다 떨어졌다. 먼저 지쳐버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투덜거렸다. “아버지, 목이 마르고 모래가 뜨거워 죽을 지경이에요.” 아버지는 아들을 다독거렸다. “얘야, 그렇지만 우리는 이 사막의 끝까지 가야하지 않겠니? 조금만 참아라. 이제 얼마 가지 않으면 사람이 사는 마을이 나올 거야.” 두 사람은 다시 걸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사막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무덤을 보자 아들이 또 푸념을 늘어놨다. “아버지 저 무덤을 좀 보세요. 저 사람도 우리처럼 목이 마르고 지쳐서 마침내 죽고 말았어요. 우리도 이.. 더보기
20대는 20㎞, 60대는 60㎞?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누구나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 가장 비싼 것”이라고 했던 소요학파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말을 절감할 것이다. 해서 사람들은 쏜살같은 시간에 관해 한마디씩 남겼다.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에센 바흐), “시간을 최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늘 불평하는 데 일인자다.”(장 드 라 브뤼에르) 시간을 낭비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썼다고 알려진 러시아 곤충분류학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라면 시간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주어진 모든 시간을 단 1분도 빠뜨리지 않고 시간통계를 기록한 노트를 남겼다니 징그러울 정도다. 그에게 문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 더보기
오해받는 ‘처음처럼’ 입력 : 2008-12-19 17:24:05ㅣ수정 : 2008-12-19 17:29:45 사실이 아니었으면 싶다. 이란 소주가 군 부대 일각에서 느닷없이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는 풍문 말이다. 그동안 멀쩡하게 잘 나가던 이 소주가 최근 들어 병 글씨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PX에 재고로 쌓여 자연히 주문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년 징역살이를 했던 신 교수의 이력에 대한 일부 군 장교들의 반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이란 신 교수의 글씨판을 새 정부 들어 경찰서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에 내걸려다 일부 보수집단의 반발이 있자 경찰 지휘부가 철회했던 아픈 기억이 아물지 않은 터이다. 경찰의 행태는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조차 과잉 충성이라고 비판했던 우행.. 더보기
‘베트남적 근대성’ 입력 : 2008-12-12 17:17:17ㅣ수정 : 2008-12-12 17:17:30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언젠가 한국의 대통령이 될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겁니다. 미국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듯이. 그런 상황이 오면 베트남 기자들이 한국 대선 취재에 대거 나서지 않을까요?” 연례 기자교환방문 계획에 따라 최근 베트남에 가서 기자가 던진 이 말에 그곳 언론인이나 정부 관료들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반응했다.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한국과 베트남은 어느덧 혈연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요즈음 우리 국민의 약 10%에 달하는 국제결혼인구 중 베트남 배우자가 가장 .. 더보기
강자의 편에 서 있는 인권 입력 : 2008-12-05 17:44:50ㅣ수정 : 2008-12-05 17:44:58 1948년 12월10일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장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과업으로 들떠 있었다. 숭엄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는 순간이었다. 세계인권선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잔혹한 만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갈망하는 전 세계인의 간절한 소원이 담겼다. 그런 세계인권선언문이 ‘세계 최고의 기밀서류’란 별명을 지녔던 것은 아이러니다. 이 선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그 사본을 본 사람은 더욱 드물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계인권선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장전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선언문은 몇 가지 이유에서 뜻깊다. 이 선언문은 사상 처음 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