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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단순하게, 소박하게, 느리게… 그 텅빈 충만 2009.07.31 17:44 ‘생태 위기의 원죄는 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하는 에 죄를 뒤집어씌우다니 큰일 날 얘기가 아닌가. 서양의 생태근본주의자들은 창세기 1장 28절의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오늘날의 환경파괴와 생태계 위기를 낳았다고 서슴없이 비판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기독교적 가치관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서양에서 자연정복의 성서적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학자·인류학자인 린 화이트와 생태조경가 이안 맥하그는 현대의 생태 위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정복자나 지배자의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여기는 인간들의 잘못.. 더보기
정치산물 헌법, 개혁을 논하라 2009.07.17 17:36 Keyword Link | x 헌법은 별나게 재즈, 야구와 더불어 미국의 3대 발명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미국은 1776년의 독립선언문을 바탕으로 1787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문헌법을 만들었다. 미국 헌법은 시대 흐름에 맞춰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지만 200여년 동안 단 한 번도 헌정 중단 사태 같은 큰 굴곡 없이 작동하고 있다. 미국 독립의 기초를 닦은 정치사상가이자 작가인 토머스 페인은 헌법을 “자유의 문법이며 정치의 성서”라고 숭앙한다. 19세기의 한 미국인은 “헌법은 미쳤을 때 자살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맑은 정신이었을 때 스스로를 묶어 놓는 사슬”이라고 흥미롭게 비유했다. 사회철학자이자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표현도 유사하지만 가슴에 다가든다. .. 더보기
신분상승 욕망의 덧없음 2009.07.03 17:37 ‘서민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아버지의 땅을 물려받아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빈한했던 밀레가 절친한 친구인 화가 테오도르 루소의 지혜로운 도움을 받았던 우정의 일화는 눈물겹다. 밀레는 귀족중심의 장식적이고 기념비적인 초상이 주류였던 종전의 화풍에서 벗어나 서민 계층의 농부를 주로 그려 ‘농부화가’란 별명도 얻었다. ‘우유 짜는 여인’ ‘씨뿌리는 사람’ ‘저녁기도’ ‘이삭줍기’ ‘만종’ 등이 모두 그렇다. 이 같은 화풍은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비난까지 감수했을 만큼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민화가’ 박수근은 양구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12살 때 ‘만종’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박수근은 평생 동안 이름.. 더보기
정치에도 ‘스프레차투라’가 필요하다 2009.06.19 17:24 데코로, 스프레차투라, 그라지아. 이탈리아 음악가들은 17세기부터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야 감동적이고 장려한 연주가 완성된다고 여겼다. 데코로는 준비와 노력을 의미한다. 이는 연구, 확인, 리허설, 반복 같은 쓸데없어 보이기도 하는 힘든 작업을 통해 준비하는 외로운 과정이다. 스프레차투라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무척이나 쉬운 것처럼 세련되게 해내는 것을 뜻한다. 스프레차투라는 데코로 없이 불가능하다. 데코로와 스프레차투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게 우아한 아름다움인 그라지아다. 이 가운데 스프레차투라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이 높이 샀던 미덕이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탈리아 장인 정신의 뿌리다. 스프레차투라는 원래 ‘거만하게 굴다’ ‘경멸하다’ ‘싼 .. 더보기
역사를 알아야 난세 이긴다 2009.06.05 17:40 마오쩌둥이 장제스의 국민당을 패퇴시키고 베이징에 입성했을 때 그의 행낭에는 네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고난의 대장정 동안 침대 옆에 놔두고 틈날 때마다 지혜의 샘물을 마신 책들이다. 사마천의 , 사마광의 , 중국어휘사전인 , 어원사전인 이 그것이다. 공산주의자 마오쩌둥에게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의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것은 의외다. 그는 그 뒤에도 어딜 가든 와 을 거의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마오쩌둥에게 역사책은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었고 현재를 해석하는 거울이었다. 중국 근대 문학의 거장 루쉰(魯迅)은 를 “역사가의 절창이요, 운(韻)이 없는 이소(離騷)”라고 격찬했다. ‘이소’는 초나라 굴원이 쓴 중국 문학 요람기의 걸작시다. 중국 근대의 계몽사상가 량치.. 더보기
지금 필요한 건?… 관용 2009.05.22 17:34 서열이 분명한 늑대 무리에서는 우두머리를 가리기 위해 해마다 수컷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진다. 여러 수컷이 힘을 모아 우두머리에게 도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패자를 죽이지는 않는다. 승자가 송곳니로 패자의 목을 무는 시늉으로 싸움을 끝낸다. 거듭되는 싸움이 종족의 명맥을 끊을까봐 살육을 금지시킨 것이다. 식물과 동물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지만, 이처럼 더불어 살기 위해 욕심을 잠재우고 관용을 베풀 줄 안다. 인간은 다른 생물을 멸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프랑스 식물학자 장 마리 펠트가 쓴 (이끌리오)의 한 토막이다. ‘관용(톨레랑스)의 나라’다운 프랑스에서 전해오는 일화에는 이런 것도 있다.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가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 더보기
걸려라, 딱 한 사람만 2009.05.08 17:41 두 마리의 쥐를 배전망 위에 함께 올려놓고 전기충격을 가하면 서로를 공격한다는 실험결과가 있었다. 고통을 느끼는 쥐들이 상대방에게서 잘못을 찾으려는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전설적인 야구 영웅 요기 베라도 공이 잘 맞지 않을 때는 야구 방망이를 탓할 뿐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자기 실수로 망치를 손가락에 내리친 사람이 망치에 화풀이를 하듯이. “불행한 사건 이후에 사회는 희생양을 절실히 요구한다. 만인의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로 보낼 사람을 찾아 위안을 얻으려 한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여름 어느 날 뉴욕타임스는 이런 기사를 실었다. 북부군 사령관 조지 B 맥클레런이 ‘7일 전투’에서 패하자 불.. 더보기
이번엔 ‘폴라니’일까 2009.04.10 17:37 숙명적인 맞수였던 미국의 존 애덤스 2대 대통령과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처럼 특별한 인연도 드물다. 제퍼슨은 애덤스 밑에서 부통령으로 일했지만 도와주기는커녕 발목잡기 일쑤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2위를 한 후보가 부통령이 되는 제도였던 데다 애초부터 정책노선이 달랐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에선 애덤스와 대결해 당선됐다. 은퇴한 뒤에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애덤스는 죽는 순간에도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제퍼슨만 살아남는구먼.” 사실 제퍼슨은 이미 애덤스보다 몇 시간 전에 숨진 뒤였다. 독립 일등공신인 두 사람이 타계한 날은 공교롭게도 미국 독립선언 50주년이 되던 1826년 7월4일이었다. 세계적인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17세기 .. 더보기
‘속물’ 권장하는 사회 2009-03-27 18:01:09 고승에게 한 비구니가 찾아왔다.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이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승은 대답 대신 비구니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는 놀라 소리쳤다. “스님에게 이런 속물근성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고승이 미소를 지으며 되받았다. “비구니여, 속물근성은 그대가 가지고 있네.” 숱한 일화를 남긴 조주선사(趙州禪師)의 선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이다. 지레 이상한 눈으로 짐작하려는 것을 꼬집으며 순수하지 못한 사람은 가장 순수한 것까지 추하게 여기는 법이라는 깨달음을 전하려는 의도다. 채만식의 같은 작품들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속물형 인간군상에 대한 풍자와 반어가 압권이다. 특히 에서 순천 영감 김상준은 ‘젊은 계집의 부드럽고 다스한 살’만 추구하.. 더보기
권력의 편에 선 재판 2009.03.13 17:33 법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다는 사실을 거미줄과 그물에 비유한 선현들이 유독 많다. 성문법은 거미줄과 같아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감아 붙잡지만 부자와 강한 자는 그걸 쉽사리 찢고 나와 버린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나카르시스) 법률은 작은 파리만 잡는 거미집이다.(오노레 드 발자크) 법률과 경찰의 규칙은 거미줄에 비교할 수 있다. 큰 모기는 빠져나가게 두고 조그마한 모기들을 잡는다.(빌헬름 징크레프) 법의 그물은 하찮은 범죄자들만 잡도록 짜여졌다.(칼릴 지브란) 그런 가운데서도 공정 재판의 일화가 드물게나마 전해오는 것은 정의가 마냥 죽지 않았음을 확인해 준다. 19세기 초 미국 미주리 주 센트루이스 지방법원 판사였던 제임스 허킨스 페크는 특이한 습관으로 소문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