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인간성의 생태적 복원 역설

입력 : 2008-02-29 16:55:17수정 : 2008-02-29 16:55:29

2004년 3월9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재판이 열렸을 때였다. 송교수는 최후 진술에서 세계적인 석학의 탁월한 비유를 들며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위험사회니 보험사회니 하는 말처럼 위험이 항시적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이 둔화하기 때문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생태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조금씩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면 이 개구리는 끓는 물 속에서 그만 죽습니다. 그러나 끓는 물에 개구리를 바로 집어넣으면 이 개구리는 펄쩍 뛰어 밖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합니다. 이 비유는 분단 시대를 오래 살아온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진전에 따라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입국을 전후해서 생긴 소용돌이는 분명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중략) 그러한 충격은 우리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일종의 ‘정신생태학’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중략) 저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송교수가 언급한 ‘정신생태학’도 바로 베이트슨(1904~1980)의 명저 ‘마음의 생태학’(책세상)에서 따온 것이다. 송교수가 인용할 만큼 ‘마음의 생태학’은 서구문명비판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마음의 생태학’은 베이트슨을 일약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노작이다.

그는 74년 첫 출간된 이 책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학적 위기의 근원으로 세 가지를 지목했다. 과학기술의 발달, 인구 증가, 서구문화의 잘못된 기치관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서구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통탄한다. 베이트슨은 자연 생태계와 인간의 마음 생태계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그는 평생토록 인간과 자연에 대한 전체론적 이해를 궁구하며, 파괴된 마음 생태계의 복원을 역설했다.

그가 태안 앞바다 기름오염사건 소식을 접했다면 분기탱천하면서도 한국 국민들의 자발적인 진력은 높이 평가했을 게 분명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나 데이비드 구겐하임 감독의 ‘불편한 진실’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명성을 확장하는 결정적 전기가 되는 ‘이중구속이론(double-bind theory)’을 체계적으로 정립한다. 정신분열증의 병인론이자 증상론이기도 한 이 개념은 정신의학을 넘어 다양한 사회현상을 진단하는 도구로 쓰인다.

베이트슨은 ‘메타로그(metalogue)’라는 독특한 대화형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그가 만든 ‘메타로그’란 용어는 문젯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대화를 의미한다. 메타로그에서는 참가자들이 문제점을 논의해야 하며, 전체적인 대화 구조도 그 문제점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자기 딸과 나누는 메타로그가 여러 차례 나온다.

‘국화와 칼’로 두루 알려진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세 번째 남편이기도 했던 그는 인류학자로 출발했으나, 나중엔 진정한 전공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통섭한다. 생태학, 철학, 정신의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전략학, 생물학, 심리학, 종교학, 인종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끝 간 데를 모를 정도다. ‘마음의 생태학’도 베이트슨의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를 집대성한 역작이다.

‘겸손은 그저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과학의 요청’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드물게 보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여서 외경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