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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이태준의 옛집서 맛본 ‘수필의 진수’

입력 : 2008-03-07 17:11:58수정 : 2008-03-07 17:12:22


                                                           

번잡한 일상을 뒤로 하고, 풍진과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땐 이곳을 홀연히 찾아간다. 혼자서도 좋고, 두 셋이서도 괜찮다. ‘시에는 정지용, 소설에는 이태준’이라는 그 한마디로 평가가 끝나는 상허(尙虛) 이태준의 옛집 ‘수연산방(壽硯山房)’이다. 단아한 기품과 약간의 호사를 지닌 전형적인 이 ‘조선 기와집’을 정지용 시인이 질투할 정도였다니 새삼 덧붙일 말이 없겠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직접 집자해 팠다는 문향루(聞香樓)란 현판이 낯익은 듯 반긴다.
1946년 월북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살았던 서울 성북동의 이 고택 중에서도 생시에 글을 썼던 사랑방에 앉아 그가 바라보았을 북악산 자락을 올려다보면 무념이 절로 찾아든다. 상허가 1930년에 목수들과 더불어 손수 짓고 당호까지 붙인 그 ‘수연산방’이 지금은 전통찻집으로 바뀌어 후세인들의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당대 문장의 손때가 덧껴 묻은 고가(古家)는 다행스럽게도 외증손녀가 명맥을 이어간다.
죽순 인절미와 솔잎차 향기에 취해 그가 이곳에서 쓴 수필집 ‘무서록(범우사)’을 가져다 펼치면 금세 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마루에 비치해 놓은 그의 작품집 가운데 어느 걸 집어 들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지만 ‘무서록’이 아무래도 제격이다. 몇 번 읽어도, 언제 어디를 펼쳐도 그윽하고 은근한 게 ‘무서록’이다.
무서록(無序錄)은 뜻 그대로 풀면 ‘두서 없이 쓴 글’이다. 붓가는 대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쓴 글이라는 제목부터 겸손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신의 문장을 두고 ‘범재의 비애’라고 서러워했다는 게 그저 겸양만은 아닌 성싶다. 글도 주인과 집을 빼닮아 군살이 없고 간결하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깊이와 운치가 넉넉하다. 때로는 마치 갓 길어 올린 맑은 샘물을 마시는 듯 청량하다. 문장은 아름답지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한국 수필문학의 백미란 상찬이 무색하지 않다. 발표한 지 60년이 넘은 글인데도 담백한 맛과 고매한 취향이 오늘의 어떤 작가보다도 돋보인다. 화가이자 미술평론가로, 너나들이했다는 벗 김용준의 ‘근원수필’이 그렇듯 세련된 조각상마냥 전아하다.
 
이따금 1930년대 글 특유의 한문투 흔적이 나와 거슬릴 때도 더러 있지만, 고어투의 고루함이 아니다. 외려 서화 골동 취미를 한껏 누리던 그의 묵향이 느껴진다.
이태준은 ‘무서록’보다 1년 전에 출간한 그의 또 다른 명저 ‘문장강화’에서 나름의 수필관을 정의한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필이 흔히들 40대 이후의 문학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상허가 30대에 쓴 ‘무서록’은 인생과 사물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가 경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문장도 문장이려니와 30대에 세상을 관조하는 심오함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한국문학사에서 ‘단편소설의 완성자’ ‘조선의 모파상’이란 찬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허의 미작(美作)이다. ‘무서록’은 그의 나이 37세인 1941년에 처음 출간됐다. 월북 문학가의 작품이라 금서로 묶였다가 1993년에야 새로 발간되기 시작해 더욱 값지다. 수십년 전 수필가 박연구가 고서점에서 ‘무서록’을 무려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르고 산 뒤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기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명불허전 (名不虛傳)을 어찌 이보다 명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두서없이 쓴 글이라니 순서없이 읽어도 좋고, 거꾸로 읽은들 어떠리. 그의 친구 김용준의 ‘근원수필’을 더불어 읽으면 정말이지 금상첨화리라. 봄에는 문인(文人)들의 책, 여름에는 사서(史書), 가을에는 선철(先哲)들의 책, 겨울에는 경서(經書)를 읽는 것이 좋다고 한 린위탕(林語堂)의 권면을 받아들인다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