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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권력기관 개혁은 선택 아닌 필수다

 국가정보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을 통칭하는 ‘4대 권력기관’이란 용어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고유명사나 다름없다. 네 기관은 개인이나 조직을 수사·조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녔다는 공통점 때문에 늘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국정원은 정권의 눈과 귀다. 검찰과 경찰은 정권의 손발에 해당한다. 국세청은 ‘경제 검찰’이라 불린다.


 정권이 바뀌면 4대 권력기관장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대 권력기관이 ‘정권의 시녀’로 불려온 이유도 흡사하다. 그 비중만큼이나 인사 때마다 최고 권력자와의 지연·학연 같은 달갑잖은 논담이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이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개혁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청와대가 어제(14일)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방안은 큰 틀에서 바른 방향을 잡았다는 평가를 할만하다. 핵심은 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와 경찰 수사권 부여, 검찰 권한 축소와 분산이다. 개혁 방향은 새로운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법무부와 국정원 등이 이미 발표한 내용의 종합판이다. 국세청 개혁은 오래 전 정치적 목적의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실천만 담보하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국정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해 대북·해외정보 업무에 전념토록 하는 것은 지난 정권에서 국내정치에 개입한 부작용이 엄청나서다. 국정원은 간첩을 조작해 인권을 유린하고, 국민을 불법적으로 사찰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불법선거운동과 정치개입도 일삼았던 과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같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대공수사 업무는 경찰에 안보수사처를 신설해 담당하게 하는 문제가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면 간첩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겠느냐며 반대해 왔다. 개혁안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한국당은 “국정원의 존재 이유인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는 것은 국정원을 해체하자는 것으로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빌미로 저지른 폐악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도 말이다.


 한국당은 한술 더 떠 “경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안 된 상황에서 대공수사권까지 갖게 되면 경찰공화국이 될 우려가 있다”며 경찰의 권력 집중을 또 다른 반대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런 우려를 감안해 자치경찰제 도입과 더불어 경찰의 기본기능을 수사경찰과 행정경찰로 분리해 권한 분산 방안이 추진된다. 이 경우 갑자기 커지는 경찰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보다 촘촘한 보완이 필요하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은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고 중립적 입장에서 고위공직자를 수사하기 위한 핵심과제다. 기소 독점주의 폐지는 상징적인 조치다. 한국당이 반대하는 공수처 신설은 국민의 80퍼센트 가량이 찬성한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에게 권력이 더욱 집중된다고 반발하지만, 국민의당 제안처럼 인사추천권을 제도적으로 야당에게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만하다.

 

  검찰 출신 한국당 의원들이 반대에 앞장서는 것은 검찰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심을 살만하다. 게다가 공수처 신설이 수사 대상인 국회의원들에게도 불리하다는 이기적 계산이 깔렸음직하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세계에 공수처 있는 나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척결기구로 공수처 신설에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반대 이유가 순수하지 않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대다수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배반이나 마찬가지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인 이들 권력기관에 대한 상호 견제와 권력남용 통제는 개혁의 고갱이가 돼야 한다. 적폐청산 작업의 하나로 권력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것이 요긴하다. 보수진영 대통령의 우상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권력 집중은 언제나 자유의 적”이라며 늘 경계했다. 착한 권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15일부터 본격화할 국회 사법개혁위원회의 권력기관 개혁 논의는 여야 간의 주고받기식 타협이 아니라 개혁 방향의 정합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입법이 필수인 권력기관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