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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후안무치한 조작공화국

 

 악명 높은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에서 더욱 악랄한 대목은 증거날조 사실이 들통 나자 ‘애국적 조작’이라고 강변하는 순간이다.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가 간첩·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도록 증거를 조작한 수사책임자 위베르 앙리 중령은 진실을 털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로지 조국을 위해 그 일(조작)을 했습니다.” 우익보수단체 악시옹 프랑세즈 대표였던 시인 샤를 모라스는 증거서류 날조가 판명되자 “애국적 위조”라고 찬양했다.


 기시감이 드는 박근혜 정권의 조작 행위는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끊일 줄 모르고 속살이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증거조작이 탄로났지만, 반성의 낯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관련자의 변명도 드레퓌스 사건과 판박이다. 국정원 협력자는 재판에서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중국정부) 문서를 위조했다”고 뻔뻔한 주장을 펼쳤다.

 

  죄 없는 시민의 비극적인 운명과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대인 장교를 희생양으로 삼은 드레퓌스 사건과 흡사하게 화교 출신 공무원 유우성 씨는 끝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강제추방’이라는 굴레를 써야 했다. 보수성향의 네티즌들은 증거 조작을 해서라도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댓글을 써대는 비이성적인 행태를 보였다. 일부 보수언론은 애국몰이로 초점을 흐렸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유 씨를 두둔하는 사람들을 비애국자로 몰아세우며 자신들만 애국자인양 했다.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1호’가 된 박근혜표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때도 여론 수렴 과정에서 청와대, 국가정보원, 교육부가 조직적으로 증거를 조작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속칭 ‘차떼기 여론 조작’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잡고 검찰이 지난 주말 압수수색을 벌인 계기를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완용’ ‘박정희’ 이름까지 동원한 가짜 명단은 한 편의 풍자 개그를 보는 듯하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애국심 논쟁으로 몰고 갔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세월호 사건 상황보고 일지를 수정한 정황은 부실 대응의 책임을 면탈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기록을 조작한 범죄행위다. 역사의 기록 조작은 왕조시대의 왕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닌 것처럼 국가위기관리지침(훈령)을 불법적으로 조작한 정황까지 탄로가 났다. 해당 훈령은 법제처 심사와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야 수정할 수 있음에도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펜으로 빨간 줄을 그어 변경한 증거는 불법임이 명백하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기록까지 조작해 책임을 회피하려 했을까 싶기도 하다. 조그마한 기업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번듯한 나라의 최고 수뇌부에서 버젓이 저질러졌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이었던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가슴 아픈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치적 이용은 그만둬야 한다”고 호도에 급급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의견서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도 반성은커녕 반대의견서까지 철저히 수사해 줄 것을 검찰에 요구하는 물타기 전술로 대응한다.


 박근혜 정권의 조작 사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은 시민들이 만족도 조사에서 ‘매우 불만’이나 ‘미해결’을 표기할 경우 추가답변을 달도록 해 ‘만족도’를 조작하라는 지침을 각 부처에 내린 사실이 들통 난 적도 있다. 세 차례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점수를 조작해 노골적으로 특정기업 밀어주기를 자행한 증거도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 밝혀졌다. 청와대의 뜻이 작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숨길 게 많은 박근혜 정권의 진실 은폐를 위한 조작행위가 빙산의 일각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출하고 있다. 사법절차가 정치보복이라는 박근혜의 불순한 의도가 무척이나 적나라하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우리는 수구꼴통이 아니라 애국꼴통”이라고 우긴다. 기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이 ‘상징조작’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사건의 핵심물증 가운데 하나인 ‘최순실 태블릿 PC’가 조작이라고 아직도 우겨대는 상황은 조작공화국의 역설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