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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최다 ‘공시족’, 최악 공직기강, 박정희시대 공무원 교육

 저명한 네덜란드 언론인 카렐 반 월프런이 20여 년 전 일본사회의 최대 걸림돌은 공무원이라는 견해를 담은 책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에서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을 바탕삼아 일본을 해부한 ‘부자나라 가난한 국민 일본’(원제 The False realities of a politicized society)은 ‘문책에 응답할 의무가 없는 관료독재주의’에 궁극적인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의 관료독재주의가 민주주의라는 옷만 걸쳤을 뿐이지 실제로는 모든 것을 관료가 결정하는 권력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 관료들은 경제성장에 모든 걸 예속시켰다. 정부 관료가 중심이 되어 기업과 기업인 단체 대표, 검찰, 사법부, 대학 교수, 심지어 정치가들도 관리자로서 사회의 지배연합을 형성했다. 이 서양 언론인은 일본 검찰을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일본 관료독재주의가 얻은 세계적인 명성은 거품경제 붕괴와 ‘잃어버린 20년’이었다. 반 월프런은 일본이 바람직한 국가로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단언했다.


 일본따라하기에 급급했던 한국은 관료주도 경제성장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사회 구조가 일본과 흡사한 면이 너무나 많다. 관료들은 일본에서 그랬듯이 한때 국가발전의 견인차였다는 호평도 얻었지만, 이젠 ‘중진국 함정’에서 헤매는 원인제공자라는 꼬리표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정권이 바뀌면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살아남고, 퇴직 후에는 ‘~피아’로 누릴 건 다 누리는 게 관료다. 

                                                                               


 아직도 시대흐름을 역행하는 공직자들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남긴 유명한 말로 상징된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최근 각 분야의 공직자들이 부정부패, 갑질, 막말, 성매매, 면피행정 등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리·비행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것도 이런 사고가 기저에 깔렸기 때문이다. 공직기강 사령탑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자신의 수많은 비리 의혹에도 “이런 일로 공직자가 그만둬선 안 된다”며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레임덕을 우려하는 대통령의 측근 감싸기가 결정적인 요인인 것은 물론이다.   


 학생들에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공무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4분의 1에 이른다는 통계가 줄을 잇는다. 여성가족부가 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6년 청소년 통계’ 가운데 장래희망 1위가 공무원(23.7%)이고, 준공무원인 3위 공기업(18.1%)까지 합하면 무려 41.8%에 달한다. 지난주 통계청의 조사결과도 취업시험 준비생 중 40%가 일반직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최고치다.


 공무원의 철밥통과 갑질을 타파하려다 1년 반 만에 포기한 삼성그룹 출신 인사혁신처장의 탄식이 처연하게 다가온다. “삼성에 입사할 성적인데 왜 공무원을 하느냐는 질문에 단도직입적으로 ‘편하잖아요’ 하더라.”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공무원을 뽑을 때나 교육할 때도 박정희 시대에나 했을 법한 행태를 보인다. 5급 공무원 최종 면접시험에서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 ‘한강의 기적’,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사상 검증식 질문을 했다고 한다.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보라’는 주문에 맹목적인 충성과 전체주의를 연상하게 된다는 반응이 많을 수밖에 없다. 150만분의 1확률이라는 두드러기로 군복무 면제를 받은 황교안 국무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애국가 4절 완창’을 못하면 애국자가 못 된다는 생각으로 하급직원을 나무랐다.


 올 초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가운데 공직가치조항에는 황 총리의 지시로 민주성, 도덕성, 투명성, 공정성, 공익성, 다양성 등 6가지는 제외되고 애국심, 청렴성, 책임성만 남았다.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신입 5급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교육 교재에는 ‘국가는 시민을 통제한다’고 돼 있었다고 한다. “민중은 개·돼지”라던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생각과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경쟁률은 높아지고 자연스레 고급인력이 모이는 듯하지만, 공직자의 윤리는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