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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국가 브랜드가 정권 브랜드인가?

 

 박근혜 정부와 함께 사라질 목록 가운데 국가 브랜드가 추가될 듯하다. 지난 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새 국가브랜드가 표절·짝퉁 시비와 더불어 대통령 코드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어서다. 

 새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는 프랑스 산업 슬로건인 ‘크리에이티브 프랑스’(Creative France)의 슬로건과 로고, 색상을 모두 베낀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자 문화부는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미국, 아프리카에서도 ‘크리에이티브’를 로고로 만들어 쓴다는 사례를 들어 표절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표절 논란이 아니라 문화부의 해명이 방증하듯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한국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비난도 쏟아져 나온다. 새 국가 브랜드가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한 것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매력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인도 별로 없다.

                                                                                 

 

 누리꾼들은 하나같이 ‘창조경제’에 매달린 ‘대통령 마음읽기 선정’이라고 수군댄다. 국민이야 비판하든 말든 대통령만 좋아하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런 작품이 나올 리 없다는 뒷담화가 무성하다. 국민세금 35억 원이나 들여 1년 넘게 짜낸 아이디어가 기껏 창조경제 홍보용이나 다름없는 브랜드냐는 투다.

 

  게다가 막상 중요한 디자인의 완성도도 높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체 예산 가운데 디자인 값은 고작 2000만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국내외 여론조사 등에 썼다니 그럴 수밖에 없다. 9명의 국가브랜드 개발추진단 위원들도 “우린 사실상 들러리였고, 위에서 결정했다”고 볼멘소리만 한다. ‘디자인 결과물은 의뢰인(클라이언트)의 수준만큼 나오게 된다’는 명언이 그래서 나온 것 같다.


 국가 브랜드는 한 나라에 대한 호감도·신뢰도·인지도 같은 유·무형의 가치를 종합한 대외적 이미지를 일컫는다. 호평을 받는 다른 나라의 브랜드는 장기적 전략이나 철학, 슬로건의 완결성에 높은 점수가 매겨진다. 정권 냄새가 풍기는 국가 브랜드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국가 브랜드의 성공작 사례로는 인도와 말레이시아가 손꼽힌다. ‘믿어지지 않는 인도’(Incredible India)에는 긍정과 부정의 뉘앙스가 모두 담겼다. 극심한 빈곤과 고도의 정보기술(IT)이 혼재하는 신비한 느낌의 국가 이미지다. 인도가 IT 열망을 강렬하게 담아낸 ‘소프트웨어 인도’(Software India)를 국가 브랜드로 만들었다면 국제적인 반응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금방 해답이 나온다. ‘Incredible India’는 십 수 년 동안 장수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진정한 아시아’(Malaysia, Truly Asia)는 중국계, 인도계, 아랍계, 남방계 등 다양한 아시아계 인종이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만든 브랜드다. 말레시아는 이를 통해 관광객 유치에 엄청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독특한 싱가포르’(Uniquely Singapore), ‘놀라운 태국’(Amazing Thailand), 베트남의 ‘숨은 매력’(The Hidden Charm), ‘와우 필리핀(Wow Philippine) ‘100% 순수한 뉴질랜드’(100% pure New Zealand)같은 브랜드도 비슷한 맥락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국가 브랜드는 기업 광고와 달리 무조건 톡톡 튀고 기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한번 보고 들으면 기억할 만큼 쉬우면서도 국가의 핵심을 농축했다고 느낄 만큼의 재치는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국가 브랜드 슬로건이라는 것은 이루거나 되고 싶은 것을 자기 암시적 문구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져 왔던, 공감이 가는 정서를 로고와 심벌마크에 압축해 담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 브랜드를 둘러싸고 박근혜 정부처럼 극심한 논란과 혹평에 휩싸인 적은 없었다. 인도나 말레이시아처럼 국가 브랜드는 장기간 유지되면서 신뢰가 형성돼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공들여 홍보해야 할 국가 브랜드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뀔 수 있게 만들어진다면 단순히 예산낭비 차원을 넘어서는 불행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